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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
written by Esoruen
지끈거리는 고통에 눈을 뜨면 새까만 천장만이 그의 기상을 반겨주었다. 또 악몽인가, 작게 중얼거려 보아도 그 목소리 외에 들리는 것은 시계의 초침소리 뿐이었다.
어렴풋이 확인한 시간은 4시. 그야말로 애매한 시간에 일어난 히무로는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누군가가 머리를 발로 차는 것 같은 강한 고통, 비명이 나올 정도로 아픈 머리였지만 의외로 히무로는 침착하게 서랍을 뒤져 약을 꺼냈다. 아스피린을 한 움큼. 제 손에 가득 찰 때 까지 들이부은 그는 새하얀 알약 무더기를 증오스럽게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선 이 약들을 모조리 제 입안으로 털어 넣고 싶지만, 자신은 죽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 아픔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
알약 하나를 입에 넣은 히무로는 겨우 부엌으로 가 냉수와 함께 약을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정신이 조금 들자 고통은 덜해졌지만 방금 꾼 꿈의 내용이 선명하게 살아났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건 어린 자신은 무언가에 쫒기며 도망가고 있었고 울고 있었다는 것. 마치 7살 어린애 같은 악몽이었지만, 히무로는 이 꿈을 처음 꾸는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부터 계속 찾아오는 이 악몽은 지독한 두통을 가져왔고 히무로는 불면증이 올 정도로 잠자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약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괜찮아 타츠야?"
소리에 깬 것일까, 같이 사는 룸메이트이자 연인인 카가미가 제 방의 문을 열고 나왔다. 히무로는 카가미의 얼굴을 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아 난 괜찮아"
"하여간 그놈의 꿈이 뭔지, 내일 회사 갈 수 있겠어? 하루 쉬어도 좋을 텐데"
"그럴 순 없지"
히무로는 질색하는 표정을 짓고 고개를 흔들었다. 또 무리하고 있네. 들으라는 듯 중얼거린 카가미가 머리를 헝클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히무로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와 졸업한 후 도쿄의 대기업 회사에 취직했다. 성공했다면 성공한 인생이겠지만, 농구를 그만둔 그가 카가미는 별로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카가미는 아직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체육대학에, 농구는 프로에서도 졸업 후 스카우트 1순위로 떠오를 만큼 잘했다. 카가미는 제 인생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제가 성공한 체육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열은 안 나?"
살며시 히무로를 일으켜 세운 카가미는 자신보다 작은 히무로를 끌어안았다. 식은땀에 젖어 눅눅한 히무로의 잠옷은, 새벽공기와 마주 닿아 차가웠다.
카가미에게 최고 행복은 바로 히무로와 사는 것 이었다.
본래는 혼자 지내던 집에, 카가미는 히무로를 불러들였다. 대학도 멀지 않고 기숙사보단 나을 거란 설득에, 히무로는 어렵지 않게 카가미의 말에 수긍했고 졸업 후 취업한 후 까지 히무로는 이곳에 살고 있었다.
그것이 행복했다. 히무로가 제 품에 있다는 것이.
"타이가"
"응?"
"미안한데 방까지 부축 해 줄 수 있겠어? 어지러워서, 걷기가 조금 힘드네."
히무로는 금방이라도 사그라질 것 같은 목소리로 카가미에게 부탁했다. 얼마나 아프면 스스로 걷기조차 힘든 걸까. 카가미의 인상이 구겨졌다.
"응"
히무로가 걱정할까봐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인 그는 능숙하게 히무로를 안고 그의 침대로 데려갔다. 아무렇게나 놓인 약병을 치우고 다시 히무로를 침대에 눕힌 카가미는 새하얀 이마에 손을 얹었다. 다행스럽게도 열은 없었다.
"역시 병원에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괜찮아, 한숨 자고 나면 나을 거야"
"그 한숨도 악몽 때문에 잘 못자면서"
카가미의 반박에, 히무로는 입을 다물고 웃어 보일 뿐이었다.
"아프지 마 타츠야"
진심이 담긴 한마디, 카가미는 그것밖에 히무로에게 줄 것이 없었다.
"미안해"
"사과 들으려고 한 말 아냐"
"알아"
"그런데 왜 사과하는 거야"
"타이가가 좋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히무로에, 카가미는 살짝 얼굴이 빨개졌다. 이런 상황에서 마저 포커페이스라니. 살짝 약이 올라 입을 맞추자 그때서야 히무로의 볼도 불그스름해졌다.
"같이 자 줄게. 자자"
"응"
나란히 누워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두통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