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NF 제너럴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254회 주제 : 무너지다
무너지다
written by Esoruen
격식 있다는 말은 주로 딱딱하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대표적으로, 제너럴에 대한 인상도 그러했다. 철두철미한 일처리, 간결한 말투, 예의바르고 군더더기 없는 행동. 군인의 귀감이라 불러도 좋은 그는 부하들 앞에선 언제나 윗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는 모범적인 남자였다.
“저, 제너럴.”
“네, 무슨 일이십니까?”
아. 분명 아직 아무 말도 안 꺼냈는데 벌써 긴장된다.
젤딘의 명령 때문에 제너럴을 만나러 온 그 신병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손에 든 서류를 꽉 쥐었다. ‘가서 작전 보고서만 넘겨주고 오면 됩니다. 하나도 어려울 일 없어요.’ 젤딘은 단호하게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보냈지만, 이제 막 전쟁 때문에 총을 든 신병에게 높으신 분을 뵈는 게 쉬운 일일리가 있겠는가.
“젤딘 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그, 작전 보고서가….”
“작전 보고서요? 아. 그러고 보니…. 감사합니다.”
너무 할 일이 많아 잊고 있었던 건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제너럴이라면 무리도 아니지. 신병은 읽어보던 서류를 잠시 내려두고 제 손에서 작전 보고서를 받아가는 그를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렇게 일하다가 죽는 거 아닐까.’ ‘총 맞아 죽는 것도 아니고, 과로사로 죽으면 억울할 것 같은데.’ 참견과 걱정 사이를 오가는 생각들을 용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그는 피곤할 와중에도 전혀 군기가 풀어지지 않은 제너럴이 너무나도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
“제너럴!”
그가 경례를 하고 나가려는 순간, 문이 열리며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찾아왔다. 블랙로즈 단원은 아닌 것 같은데. 경험은 적지만 반사 신경 하나만큼은 좋은 신병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가 굳어버렸다. 제너럴을 찾아온 사람은 군복을 입고 있지도, 경례를 하고 있지도 않았다.
“저 왔어요. 마이스터가…, 어라. 손님?”
“아, 그. 저는.”
‘세상에.’ 신병은 자신에게 서슴없이 말을 거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무법지대의 악몽. 카르텔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방아쇠를 당기는 카르텔 사냥꾼. 지금은 황도군과 함께 카르텔과 싸우지만, 기본적으론 무법지대를 벗어나는 일이 잘 없는….
“저는 금방 나갑니다, 그러니까, 그!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로시스 님!”
“아 그래요? 아니, 그것보다 ‘님’까지야. 그냥 ‘씨’정도로 괜찮은데.”
“시, 시정하겠습니다!”
상사도 같은 군인도 아닌 상대에게 이렇게 까지 예를 갖추게 되는 건 역시 ‘무서워서’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무법지대에선 영웅이거나 저승사자 취급 받는 여자다. 밉보였다가 총이라도 맞으면,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골로 갈게 뻔했다.
‘그러고 보니, 제너럴 앞에서 이렇게 편하게 굴 수 있는 외부인도 로시스 씨 정도뿐인가?’
제너럴은 자신도 예의를 갖추는 만큼 상대도 예의를 갖추길 바라는 분류인데, 저거 괜찮을까. 신병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제너럴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그의 고뇌는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엔, 오셨나요? 늦어서 걱정했어요.”
서류를 소리 나지 않게, 하지만 재빨리 내려놓은 제너럴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편하게 웃고 있었다. ‘세에상에.’ 속으로 감탄한 그는 한방에 무너져 내린 제너럴의 딱딱함이 믿기지 않는지 얼빠진 얼굴로 두 사람을 계속 번갈아 보았다.
“미안해요! 마이스터가 일하는 중이라 조금 기다렸다가 받아왔거든요. 아, 해독본은 로잔나에게 줬어요.”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로잔나에게 나중에 받아볼게요. 그것보다 식사는 하셨나요? 슬슬 점심시간인데.”
아아. 화기애애하다. 그 제너럴이 저런 얼굴로 저런 사적인 대화를 하다니. 제 머릿속도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다.
사이좋은 두 사람의 대화를 잠깐 지켜보던 신병은 눈치를 보다가 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자신도 숙소에 가서 여자 친구에게 편지나 써야겠다. 시린 옆구리를 슬쩍 문지른 신병의 얼굴에 헛웃음이 넘쳐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