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배소년 총통조 디스티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258회 주제 : Why?
탈영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이야기
Why?
written by Esoruen
광인과 천재의 차이는 희미하다. 셀렌은 제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천재이자 가장 무서운 광인을 보면 늘 저 말이 떠올랐다. 이 세상엔 미치지 않은 천재도 존재하고, 미쳤지만 천재가 아닌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어느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사람은 어딘가가 이상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광인과 천재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마치 책의 첫 문장을 읊듯 입을 연 디스티는 피에 젖어 원래 색을 알아 볼 수 없는 가운과 수술 장갑을 아무렇게나 개어 구석에 던져놓았다. 진동하는 알코올과 피의 냄새. 바닥에서 올라오는 죽음의 냄새. 수술 성공률과는 별개로 언제나 불길함을 가득 떠오르게 하는 그의 수술대 위에는 방금 막 목숨을 건진 병사가 호흡만 하고 있다. 셀렌은 굳이 대꾸하지 않고 그가 말을 이어가길 기다렸다.
“역시 목적과 이유에 있지. 이게 없다면 그 어떤 천재도 단순한 광인이 되어버려.”
“그렇습니까?”
“그래. 아무 이유 없이 사용되는 재능이라니.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보는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아무리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밝고 진한 자주색. 절대 본인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 색은, 광인에 가까운 천재인 그의 시선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늘 감추어버린다.
이유와 목적이 없는 재능. 발휘되지 않는다면 그뿐이지만, 나쁜 쪽으로 쓰이게 되면 그건 정말 재앙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게 되겠지. 당장 눈앞의 그가 가진 재능만 해도 저 말에 딱 맞았다. 사람을 살리는 것도, 사람을 뜯어고쳐 완전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도 잘 하는 디스티는 반란군에 들어오기 전까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프로젝트에 참여되어 온갖 비인도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뭐, 결국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답답하다는 이유로 뛰쳐나온 사람이지만.’
그 따분함과 갑갑함이 여러 사람을, 그리고 반란군을 살리게 되다니. 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셀렌은 그리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의지가 들어있지 않은 행동이 바라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면 비극이겠지요.”
“잘 이해하고 있군. 자네라면 잘 알거라고 생각했지만.”
“비꼬는 것입니까?”
“그럴 리가. 아니, 만약 내가 비꼬는 의미로 이야기를 꺼냈다면 이런 식으로 말을 걸진 않았겠지. 안 그런가? 중위?”
디스티는 책상에 앉아, 제 쪽으로 와보라는 듯 손짓했다. ‘하아.’ 작게 한숨 쉰 그녀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그 앞으로 다가갔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그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제국을 떠나 반란군에 오기 전까지, 아니, 제 심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자신은 방금 제가 말한 나쁜 예시의 모든 것에 해당되는 삶을 살았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군사학교에 들어갔고, 살아남기 위해 군인이 되었다. 죽고 싶지 않았기에 적을 죽이고 살아남았고, 명령이 내려온다면 그대로 실행했다. 그저, 죽지 않기 위해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방아쇠를 당긴 삶. 목적과 이유는 그저 생존뿐이었던 자신은 어떻게도 그렇게 무언가를 쏴 맞추는 재능이 뛰어났던 걸까. 통탄할 노릇이었다.
“중위는 본인이 광인이라고 생각하나, 천재라고 생각하나?”
“어느 쪽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겸손인가?”
“전혀 아닙니다. 남들보다 잘 훈련된 우수한 군인이라는 자각은 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이해 범주 내라고 생각하니까요.”
아무리 멀리서 상대 대장의 머리를 정확히 쏘아 맞춰도, 몇 번 연습한 무기는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더라도, 결국 그 모든 것은 타인이 납득할 수 있는 선 안이다. 그에 비해 눈앞의 이 남자는 어떻던가. 결과물도, 행동 방식도, 과정도. 무엇 하나 납득이 가는 게 없다.
“그럼 질문을 바꾸지. 나는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는가?”
“대답을 알 것 같은 질문을 하시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오늘따라 하나하나에 이유를 찾아보는 시간이라도 가지기로 한 겁니까?”
“딱히 그런 건 아니다만, 방금 저 녀석의 배를 뒤적거리다가 문득 떠올랐거든. ‘왜?’ 같은 건 생각하지 않던 자네가 여기 와선 유독 이유를 찾지 않나 싶어서 말이야. 나는 아주 기뻐. 그 변화가 말이지.”
간단히 말하자면 예상치도 못했던 변수가 흥미로워 여러 실험을 해보고, 결론이나 많이 얻어가자는 걸까.
같이 있어온 생활이 꽤 긴 덕분일까. 그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간파한 셀렌이 어깨를 으쓱였다.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정말인가?”
“네. 동시에 광인이지요. 다만 군의관은 언제나 목적이 있었으니, 천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그 목적이 제 흥미라는 점이 가장 광인 같다는 게 문제였지만.
상대방이 가장 만족할만한 대답만 입 안에 숨겨둔 그녀는 아직은 어색한 반란군의 마크를 손끝으로 더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