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2시' 소설의 외전격 소설입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2시를 읽을시 심각한 네타가 있습니다.
2시, 그 5시간 전
written by Esoruen
유서.
이런 걸 쓰게 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역시 삶이란건 살아봐야 아는건가 싶다. 혹시나 싶어 시작부터 유서라고 써놨지만 아마도 이걸 처음 읽는 건 경찰이거나 병원 관계자겠지.
우선 이걸 쓰고 있는 나는 이마요시 쇼이치, 토오 학원 3학년이니까 내가 죽고 나서 신원 조회하는데 시간 뺐기지 않기를, 유서를 쓰는 이유는 역시 '나 자살합니다' 라고 티를 내야 운전자가 피해를 입지 않을 테니까.
죽는 이유를 쓰자면, 도망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걸 쓰고 있는 지금도 옆에 놓아둔 항우울제와 수면제들이 보기만 해도 울렁거린다. 이런걸 먹어야 잘 수 있는 생이란,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소용없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농구하고 싶다. 후배 녀석들은 나 없이도 잘 하겠지만, 역시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다. (글씨가 번져 알아보기 힘들다) 같이 수험공부를 하던 스사도, 대학과 윈터컵 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나한테까지 신경쓴다고 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하다. 내가 죽음으로서 바뀌는 것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어차피 농구부는 훌륭한 차기주장이 있고, 부모님께는 백번 사과해도 죄송하지만 언젠가는 이 못난 아들을 잊어주는 날이 오기를. 내 몸뚱이와 부딪힐 차와, 운전자에게도 심심한 사과를 적는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해. 미안해. (글씨가 심하게 번져있다) 그리고 이 유서는 농구부 레귤러 외엔 공개하지 않았음 한다. 그리고 이 편지를 읽은 레귤러 멤버, 너희들은 이 내용을 절대 발설해 주지 않았으면 한다. 부모님께도 말이다. 절대, 너희끼리만 알고 있기를 바란다.
미안하다. 미안해. 이기지 못해 미안하고 결국 이렇게 먼저 가버려서 미안하다. 아오미네는 연습 좀 나오고, 스사는 좋은 대학 들어가길 빌고, 사쿠라이는 사과 좀 그만 하고 자신감을 가져라. 그리고 차기주장인 와카마츠, 네겐 많이 (피 얼룩이 묻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너라면 잘할 거라고 믿는다.
글이 길어졌구만. 그럼, 나는 모두가 잠든 시간 도로로 뛰어들기 위해 준비를 해야겠다.
잘 있어라.
경찰 관계자는 유서를 읽고 가볍게 혀를 찼다. 비록 시체일 때 싸늘하고 엉망이 된 얼굴부터 보았지만 분명 준수한 얼굴에 성적도 좋고 농구부 주장까지 한 우등생이 자살하다니, 인재가 아까운 노릇이었다. 그리고 유서에는 정확한 자살 이유도 없었다. 울면서 쓴 것인지 유서는 중간 중간 번져있었고, 심지어 사고중 튄 피로 중간의 세줄정도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이 유서의 의미는 무엇일까. 명확한 죽음의 이유도, 동기도 적혀있지 않다. 나타나 있는 것은 소년의 불안정한 심리와 속죄 뿐.운전사는 이 유서 덕에 사고 혐의는 벗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분명 뛰어든 건 소년이었지만, 운전자도 음주운전 상태였으니까.
"형사님"
병원 로비서 사건의 진상과 사고 당시상황을 듣고 있던 형사에게 간호사 한명이 다가왔다. 그녀는 거의 죽어있던 이마요시를 이송했던 응급차에 타고 있던 간호사중 한명이었다. 어차피 자살사건에 많은 증언은 필요 없는데, 작게 중얼거린 형사는 무뚝뚝한 얼굴로 간호사에게 물었다.
"왜 그러시죠?"
"저, 그게…"
무언가를 망설이듯 초조하게 양 손을 포개 만지작 거리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형사의 따분해 죽겠다는 얼굴은 점점 생기를 찾더니 이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사는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병원 밖을 나갔다.
체육관은 무서울 정도로 아무 소리도 없었다. 옛 주장의 죽음, 그것도 자살에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그 누구도 울지도, 오열하지도 않았다. 그저 넋이 나간 얼굴로, 연습도 않고, 모여서 묵념하듯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감독은 교무실로 불려가서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모모이는 울먹이다가 뛰쳐나간 이후 돌아오질 않았다.
"실례합니다"
체육관의 문 너머로 낮선 목소리가 찾아왔다. 처음 보는 중년 남자는 축 처져있는 선수들을 슥 둘러보곤 체육관에 다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와카마츠 코스케라는 학생, 있습니까?"
선수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쏠렸다. 울음을 겨우 참고 있는 사쿠라이를 안고 토닥이던 와카마츠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조용히 일어섰다. 이마요시와 가장 마지막에 만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분명 형사가 이것저것 물으러 온 것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조용히 손을 들고 남자에게 다가가자, 남자는 와카마츠를 데리고 체육관 밖으로 나갔다.
경찰 뱃지를 보여주며 자신을 형사라 소개한 남자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시선을 맞춰왔다.
"그래 학생이 와카마츠인가?"
"네"
잠긴 목소리로 겨우 대답한 와카마츠는 시선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좋을지, 이마요시의 죽음을 자신이 막지 못한것은 아닐지, 여러가지 생각이 동시에 뇌 속에서 차올라서 호흡이 가빠왔다. 잔뜩 긴장한 와카마츠에게 형사가 내민 첫마디는, 예상외의 것이었다.
"혹시 이마요시 쇼이치군과 트러블이 있었나?"
"…네?"
"예를 들면, 그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거나"
"…아뇨 전혀… 그건 왜…"
와카마츠는 고개를 들고 가볍게 좌우로 저었다. 그래? 가벼운 추임새를 한 형사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제대로 그가 현실을 인지하기도 전, 형사는 조금은 맥 빠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구급차 간호사가 그러더군, 이마요시군이 죽기 직전까지 '미안하다 와카마츠' 라고 중얼거렸다고. 그래서 난 두 사람이 싸운 것에서 뭔가 원인이 있을까 했는데, 아니었나"
툭. 이야기를 듣던 와카마츠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체육관 벽에 등을 기대었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차오르는 눈물이, 도저히 제어가 되질 않았다. 귓가에서 그 다정한 목소리가, 특유의 사투리로 미안하다고 하는 환청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아, 그리고 이건 유서이네. 자네에게 주지, 농구부 레귤러지?"
자신 앞으로 내밀어진 구겨진 공책조각을 받아든 와카마츠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반듯한 글씨체, 중간 중간 번져있는 글씨, 그리고 이젠 변색되어 버린 검은 핏자국. 아찔해지는 감각에 와카마츠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도저히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솟구치는 눈물이, 유서위로 떨어졌다.
"뭐가 미안하다는 거예요…"
자신에게만 들릴 정도로 중얼거리던 와카마츠가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다. 처음엔 흐느끼던 정도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서글픈 오열로 바뀌었다. 형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조용히 자리를 떴다.
뭐가 미안하노.
자신이 어젯밤, 미안하다고 했을 때의 그가 했던 말. 지금은 자신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그에게 하고 싶은 말.
"뭐가 그렇게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