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ciousness
中
written by Esoruen
다음날, 학교에 등교한 나카무라는 1교시가 시작하기 전까지 종일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혹시나도 고개를 들면, 자신보다 늦게 등교하는 하야카와와 눈이 마주칠까봐, 그것이 걱정되어 졸리지도 않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나카무라는 어제 밤, 잠에 들기 전 까지 자신이 가지를 괴리감의 정체를 해부했다.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고, 어지간히도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지 그렇게 고민하다가 잠들었고 아침이 와 눈을 떴을 뿐. 개운한 기상은 되지 못했다.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피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 앞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카무라는 깨달을 필요가 있었다. 윤곽만 보이고, 흐릿한 그 답답함을.
목이 뻐근해 질 때 쯤, 수업종이 울렸다. 고개를 들자 저 멀리, 하야카와의 등이 보였다.
점심시간, 나카무라는 얼른 도시락을 먹고 하야카와와 함께 체육관으로 향하려고 했다. 하야카와와 싸운 것은 아니어서 어색하거나 서먹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가까이 있는 것은 불편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카무라 혼자의 감정이었다.
두 사람이서 나란히 교실을 나가려는 그때
“저어”
나카무라에게, 낮선 여학생이 다가왔다.
“네?”
“잠깐 시간 괜찮나요? 저, 10분, 아니 5분이면 되요!”
여학생의 얼굴을 가만히 보던 나카무라는,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 옆 반의 여학생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복도에서 몇 번 봤을 뿐, 이름도 모르는 관계였다. 나카무라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점심시간, 갑자기 불러내는 잘 모르는 여학생이 무엇을 할지는, 조금만 생각하면 눈치 챌 수 있었다.
“미안 하야카와, 먼저 가”
“응!”
하야카와는 여학생과 나카무라가 무슨 일이 있을지 생각도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걱정을 안 하는 것인지, 씩씩하게 대답을 하고 먼저 가버렸다. 여학생은 하야카와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지고 나서야, 나카무라를 데리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여학생을 예상대로, 나카무라에게 고백했다.
“저, 학기 초부터 보고 있었어요. 좋아해요”
얼굴이 빨개진 여학생은 대답을 기다리며 안절부절 땅만을 바라봤다. 하야카와의 고백과는, 사뭇 다른 수줍음에 나카무라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보통 고백이란, 이런 것이겠지. 어디에나 ‘보통’의 기준이란 애매하다는 것을 알면서, 나카무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미안해요, 전 농구랑 공부도 있고. 아직 누굴 사귈 마음은 없어요”
진부한 거절을 하며 나카무라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이미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야겠지만, 하야카와와의 연애는 알려져 봐야 피곤할 것이 뻔했기에 서로 비밀로 하기로 했었다. 사귀는 사람을 안 밝히고 연인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해도 ‘누군가와 사귀고 있다’는 것이 들통 나는 것이 싫었으니, 나카무라는 저런 거짓말과 진부함이 가득한 거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가요”
힘겹게 대답한 여학생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아무래도 정말로 자신을 좋아했던 것 같아, 나카무라는 어쩐지 미안해졌다.
“…이름이 뭐에요?”
“네?”
나카무라는 여학생의 이름을 알고 싶어졌다. 별 다른 의미는 없었다. 비록 고백은 차버렸지만, 기억 속에서 슥 지워버리기에는 여학생의 진심은 나카무라에게 무겁게 다가왔으니까.
“이름이요”
“요, 요코라고 해요. 이시다 요코”
이름을 물어준 것이 기쁜지, 여학생은 수줍게 웃으며 눈물을 닦았다. 아마 ‘학업도 농구도 안정되면 날 받아주지 않을까’ 같은 희망을 가진 걸 수도 있었다. 나카무라는 여학생이 울음을 그치자, 문득 묻고 싶어진 것을 물었다.
“이시다양은 내 어디가 좋아서 고백한 거예요?”
방금 차버린 상대에게 하기에는 조금 심한 질문인가.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이미 말이 뱉어진 후였다. 아차 싶었지만, 의외로 여학생은 기분 나빠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으음, 그거야. 나카무라군은 멋있고, 지적이게 생겼고, 선수로 뛸 정도로 운동도 잘 하니까요. 공부도 잘 하고…”
마치 질문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막힘없이 나오는 칭찬들에 나카무라는 귀가 빨개졌다. 자신은 이름도 몰랐는데, 상대방은 역시 좋아했던 입장인 만큼 이름은 물론이며 자잘한 것까지 알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것이, 이렇게 위대한 것이던가. 그런 마음이 들자 나카무라는 제 앞을 가로막던 답답함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가요, 고마워요”
무엇에 대해 고마운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 세상엔 모르는 게 더 나은 일이 잔뜩 있다는 것을, 나카무라는 알고 있었으니까.
체육관으로 가자 카사마츠는 ‘웬일로 네가 늦게 왔느냐’며 의외라는 듯 나카무라를 훑어보았다. 아무래도 하야카와가 ‘조금 늦는다’ 정도로만 설명하거나 아예 말을 안 한 것 같았다.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모르는 여학생에게 불려갔다 왔다’ 같은 말이 나돌아서 좋을 건 없었으니까. 늦어서 죄송하다고 카사마츠에게 인사를 한 후, 슈팅 연습을 위해 공을 잡았다.
“어디 갔다 왔어?”
“그냥요”
모리야마의 질문에도 대충 둘러댄 그는 자세를 잡고, 공을 던졌다. 공은 매끄럽게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모리야마는 공을 던지려다 말고 나카무라의 슛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걸, 나카무라”
“그런가요?”
“그래, 뭐 가끔 있잖아? 뭘 해도 잘 될 것 같은 날. 그런 날 아냐? 슛 폼이 좋은걸”
아니면 단순히 실력이 늘어난 걸 수도 있지만. 그런 말을 덧붙인 모리야마는 공을 던졌다. 모리야마의 슛도, 정확히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나카무라는 새로 공을 잡으며, 모리야마의 말을 곱씹었다.
뭘 해도 잘 될 것 같은 날이라.
나카무라의 손에, 평소보다 많은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