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은 If 세계관을 바탕으로 창작한 것 입니다

 

 

매화, 소나기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보셔도 좋고 보시지 않고 읽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매화 바로가기 

▶소나기 바로가기

 

 

단풍

written by Esoruen

 

 

오늘은 후리하타의 다섯 번째 동화책이 나오는 날이었다. 벌써 다섯 번째나 되었는데도 그는 진정하지 못하고 이제까지 제 책이 나오는 날이면 시내의 대형 서점에 가 책의 전시상태나 얼마나 잘 팔리는지에 대해 보고오곤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책은 아동서적 코너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서점 직원에게 물어보니 벌써 몇 권정도 팔렸다는 대답도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에 한시름 놓은 후리하타는 제가 읽을 책 몇 권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은 참이었다.

자리에 앉아 사온 책 중 한권을 꺼내 든 코우키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꿋꿋이 책을 읽었다. 그가 고른 책은 평범한 소설책으로,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어서 집어든 것뿐인 별 의미 없는 선택의 책이었다. 동화와 소설은 조금 달랐지만, 일단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베스트셀러를 읽어두는 것이 나쁠 리가 없었다. 그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몰입해서 책을 읽자,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졌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읽는 것은 역시 무리였던 걸까. 어차피 곧 내려야 했던 후리하타는 책을 덮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로수들의 붉은 잎이 덮인 인도는, 평일 낮 치고는 꽤나 붐비고 있었다. 아마 내일이 휴일이니까 이런 것이겠지. 프리랜서인 후리하타에겐 평일과 휴일의 개념이 모호했지만,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두 정거장 뒤, 자신의 집 근처 정거장에서 내린 그는 괜히 싱숭생숭한 마음에 근처의 공원으로 향했다. 가을을 타는 것인가. 감수성이 예민한 그로서는 놀라운 일도 아니었지만 처량한 제 꼴에 헛웃음이 나왔다. 다 큰 어른이 청승맞게 혼자 공원이라니.

공원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의외로 사람은 많았다. 어린아이와 산책을 온 어머니부터, 한가해 보이는 어르신들, 데이트 중인 것 같은 대학생들과 실직자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괜히 왔나…”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고 싶었던 후리하타는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조금이라도 책을 읽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도로 책을 꺼냈다. 책갈피도 없이 덮어놓은 책이라, 읽은 부분이 어디까지인가 알 수 없었던 탓에 후리하타는 차분히 책을 뒤지며 제가 읽던 부분을 찾아 나섰다. 서너 번 책을 뒤적이던 그는 겨우 자신이 읽다 만 부분을 찾았다. 하지만 독서는 계속되지 못했다.

그를 방해한 것은 바지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 핸드폰의 알람이었다. 꺼내서 액정을 보니 제 연인의 이름이 떡하니 써져있었다.

 

“여보세요? 아카시?”

“어디야?”

“나? 잠깐 집 근처 공원에”

 

전화하자마자 장소를 묻는 것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코우키는 솔직하게 자신이 있는 곳을 말했다.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야?”

“에? 어, 글쎄?”

“내가 그쪽으로 갈까?”

 

‘지금?’ 그렇게 묻자 아카시는 단호하게 ‘지금’이라고 대답했다. 아카시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만나러 온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의 일이었기에, 후리하타는 흔쾌히 ‘기다리겠으니 이쪽으로 오라’고 말하고 통화를 끊었다. 혹시 나쁜 일이 있어 찾아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었지만, 오랜만에 연인의 얼굴을 본다는 사실에 그의 마음엔 기대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자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펼쳐 놓은 책을 눈으로는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글자는 전혀 머릿속으로 들어오질 않았다.

10분쯤 기다렸을까, 아카시는 쇼핑백 하나를 들고 금방 공원에 도착했다.

 

“코우키”

“아카시! 빨리 왔네?”

 

아카시의 집에서 공원까지는 빨라도 30분은 걸리는 거리였다. 그런데 10분 만에 오다니, 아카시가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후리하타는 저절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타난 아카시는, 환하게 웃는 그를 보곤 저절로 따라 웃어보였다.

 

“사실은 코우키의 집에 가던 길이었거든”

“에? 우리 집에? 왜? 연락 주고 오지”

“그래서 방금 도착하기 전 연락을 준거야. 집이 아니라고 해서 이쪽으로 온 것뿐이고”

 

그의 궁금증은 금방 해소되었다. 충분히 납득한 후리하타는 고개를 끄덕이고 벤치의 옆으로 자리를 내어 아카시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아카시는 후리하타의 옆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앉더니, 제 연인의 손에 들린 책을 바라보았다.

 

“그건?”

“아, 오늘 사온 책이야”

“흐음, 어떤 내용?”

“다 읽어보진 않았어. 그냥 연애소설이야”

 

제가 연애소설을 읽는다는 사실을 들킨 것이 부끄러운 것일까, 후리하타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정작 아카시는, 후리하타가 읽는 책이 연애소설이라는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온 거야? 손에 그건 뭐고?”

 

후리하타는 분위기를 전환시킬 겸 이번엔 자신이 질문을 건넸다. 아카시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조금 놀란 표정으로 후리하타를 빤히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오늘 무슨 날인지 모르는 거야, 코우키?”

 

무슨 날? 아카시의 질문에 코우키는 당황하여 오늘의 날짜를 되새겼다. 11월 8일. 제 다섯 번째 책이 나오는 날, 목요일, 그런 것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짚이는 것은 책이 나오는 날이라는 것 뿐. 그렇다면 아카시는, 제 다섯 번째 작품을 축하해 주러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그, 내 책 나오는 날?”

 

하지만 후리하타의 대답은 오답이었는지, 아카시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아뿔싸. 실수한 기분에 후리하타는 안절부절 하지 못했지만 아카시의 표정은 화가 났다던가 기분이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황당해 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정말 모르는 거야?”

“그, 미, 미안해!”

“미안해 할 일은 아니지만. 흐음. 코우키답다고 할까”

 

웃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소리죽여 웃은 아카시는 제 쇼핑백에서 상자 두 개를 꺼냈다. 한 상자는 수수한 포장지로 포장 된 중간 크기의 상자였고, 나머지 하나는 커다란 직사각형 박스였다. 그 박스에는 유명 제과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후리하타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잡지에도 자주 나오는, 맛있기로 소문난 제과점의 롤케이크 상자였다.

 

“생일 축하해. 코우키”

“어?”

“어? 가 아니잖아. 오늘, 생일이잖아?”

 

그 말에 후리하타의 얼굴은 아까 전 아카시의 얼굴같이 황당한 표정으로 변했다. 제 책이 나오는 날이라는 사실에 긴장해서, 자기가 태어난 날이란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시트콤에나 나올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었다. 아카시는 도로 상자들을 쇼핑백에 넣더니, 후리하타의 품에 쇼핑백을 안겨주었다.

 

“선물은 집에 가서 열어보자. 일단 코우키의 집으로 갈까?”

“아, 으응! 그, 고마워!”

 

돌아가기 위해 들고 있던 책을 접으려던 후리하타는 자신이 책갈피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잠시 망설였다. 아카시는 망설이는 그를 보더니, 무엇이 문제인지를 한 번에 간파하고 바닥에서 낙엽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가 주워든 것은, 근처 단풍나무에서 떨어진 커다랗고 새빨간 단풍잎이었다.

아직은 촉촉한 단풍잎을 책 사이에 끼워 넣어준 아카시는 직접 두 손으로 책을 덮어주었다.

 

“이러면 되지?”

 

후리하타는 대답 대신, 책을 덮은 아카시의 손을 꼭 잡았다.

 

 

+

 

후리하타 생일 축하 겸, 강적강 IF 시리즈 가을 편이었습니다.

생일 축하해 후리하타 :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