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written by Esoruen

 

 

미야지는 하야마 같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시끄럽고, 분위기 파악도 잘 못하며, 지나치게 솔직하기까지 한 하야마가 미야지는 늘 부담스러웠다. ‘어쩌다 이런 녀석하고 사귀게 된 거야!’ 자주 그렇게 한탄하는 미야지였지만 고등학교 동창인 오오츠보나 키무라는 오히려 웃으며 반박했다. ‘그래서 사귀는 것 아니냐’ 라고.

사실을 말하자면, 두 사람의 대답은 정확한 정답이었다. 미야지가 하야마와 사귀게 된 것은, 하야마의 끈질긴 고백을 승낙함으로서 이루어 진 것이니까.

요즘 세상에 한사람만 바라보는 남자는 흔하지 않아. 오오츠보는 두 사람이 사귀게 된 날, 익살스럽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었다. 키무라는 ‘커플이 되었으니 더 이상 파인애플을 빌려주진 않을거야’ 라는 농담을 하며 미야지를 축하해줬다.

하지만 미야지는 아직도 제 연애가 그리 축하받을 만한 일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올해 11월은 유난히도 추웠다. 벌써 영하로 기온이 떨어진 곳도 있다는 뉴스에, 미야지는 강의를 위해 자취방을 나서려다가 입고 있던 겉옷을 좀 더 두꺼운 것으로 바꿔 입었다. 겨울은 미야지에게 별로 좋은 기억을 불러오지 못했다. 특히 작년의 윈터컵 패배를 생각하면, 길을 걷다가도 우뚝 멈춰 설 정도였다.

이제는 마지막 경기를 아쉽게 졌다는 분노보단, 그 마지막 경기에서 만난 사람하고 사귀고 있단 아이러니함이 미야지를 아프게 했지만 말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학교 정문을 들어섰을 때 쯤 핸드폰에 진동이 느껴졌다. 발신인이 누구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미야지는 통화버튼을 눌러 뺨에 핸드폰을 밀착시켰다.

 

“여보세요”

“나야, 미야지”

 

하야마였다. 미야지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연인끼리 통화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단지 지금은 수업중일 텐데 어떻게 전화가 온 건지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굳이 그걸 캐물을 정도로 미야지는 그에게 집요하질 못했다.

 

“오늘 강의 4시에 끝나는 거 맞지?”

“그래”

 

하야마는 미야지의 강의 시간표를 꽤나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저 몇 번 들은 것만으로, 당사자인 미야지처럼 정확히 기억해 내는 것을 미야지는 신기해했다. 이것도 다 관심이고 애정이라는 것을 잘 알았지만 미야지는 정작 하야마의 연습 시간이 끝날 때가 언제인지, 언제 연습을 쉬고 언제 연습을 시작하는지 어림짐작으로 알 뿐, 정확한 시간을 몰랐다.

 

“그런데 그건 왜?”

“아니, 그냥 물어본 거야. 해 질 때쯤이니까 옷 따뜻하게 입고나갔나 해서”

“내가 너냐. 옷 얇게 입었다가 감기나 걸려서 올 거 같아?”

 

당연히 아니지. 하야마는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자신을 무시하는 말에도 하야마는 늘 화 한번 내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을 좋아해서 라는 것을 미야지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독설을 하는 것이니 이용한다 말해도 반박할 수 없었다.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제 독설은 하야마에게 하는 하나의 애정표현이었다. 멈출 생각은 없었다.

 

“그럼, 강의 잘 들어! 사랑해!”

 

하야마는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성격이 급한 것은 알아줘야 한다며 미야지는 한숨을 쉬었지만, 건강해 보이는 목소리에 만족하기로 했다. 장거리 연애라서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잘 없었지만, 두 사람은 통화로도 충분히 서로가 건강한지, 어디 마음상한 곳은 없는지 알 수 있었다.

강의실에 들어선 미야지는 전공 책을 펴고, 교수가 들어오기를 멍하게 기다렸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교수님은 느릿느릿 걸어 들어와 언제나처럼 수업을 시작했다. 미야지는 차분히 수업을 따라가면서도, 아까 전 하야마와의 통화를 곱씹었다.

 

‘보통은 이쪽이 먼저 끊기까지 기다렸는데’

 

무엇이 그렇게 급했을까. 그걸 생각하면 교수의 강의는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어려운 전공수업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다. 미야지는 필사적으로 하야마에 대한 생각을 넣어두고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오늘의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강의실을 나오던 미야지는 몰려오는 피곤에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오늘도 과제는 산더미고, 집에 돌아가 봐야 기다려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다. 고등학교 때가 좋았는데. 허무한 신세한탄을 하며 교문을 나섰을 때, 묵직한 무게감이 등에서부터 느껴졌다.

 

“미야지!”

 

제 어깨 위로 뻗어져 나와, 목을 안는 팔은 익숙한 교복차림. 미야지는 황당함에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자신을 덥석 안은 것은, 아까 전 황급히 전화를 끊은 제 애인이었다.

상황 파악이 덜 된 미야지는 하야마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 반응이 없었다. 교토에서 수업을 듣고 연습을 나가야 할 사람이 왜 도쿄의 대학교 앞에 있는 것인지, 미야지는 단시간에 추리해 낼 수 없었다.

 

“미야지? 왜 그래? 그렇게 놀랐어? 헤헤!”

“너, 어떻게 여기 있는거야?”

“학교, 오늘 쉬었거든. 아프다고 하고 말이야. 미야지 보러 오려고!”

 

이런 황당한 경우가. 미야지는 한숨도 내쉬지 못하고 이마를 짚었다. 이 세상에 제 애인을 보러 오겠다며 학교까지 빼먹는 고등학교 3학년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이없어 하는 미야지를 하야마는 신경 쓰지 않았다. 혼날만한 짓임을 본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왜 온 거야?”

“그거야, 오늘 11일이잖아?”

“하?”

“이거, 주러왔어”

 

미야지에게서 떨어진 하야마는 배낭에서 커다란 빼빼로 상자를 꺼냈다. 이 시기면 편의점이나 대형 마트에 흔하게 전시 되어 있는, 오늘을 위한 선물용 빼빼로였다. 분명 저 정도 크기면 약간 비싸지만 고등학생 용돈 정도면 살 수 있는 물건이었다. 무리하지는 않으면서, 성의는 보이는 선물. 미야지는 인사보다도 먼저 빼빼로를 받았다.

 

“소포로 보낼까 하다가, 역시 직접 주려고!”

“그래? …고마워”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잊고 있던 미야지는 뜻밖의 선물에 웃어보였다. 학교를 빠진 것은 괘씸하지만, 이런 짓은 귀여웠으니까.

 

“어쩌냐? 난 빼빼로 준비 못했다만”

“그럴 거 같았어. 오늘 무슨 날인지 모르는 거 같았으니까”

 

실망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그것은 곧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과도 같아 미야지는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하야마에게 자신은 그 정도의 연인이었나.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은 가끔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하야마에게 자신의 성의를 보여주고 싶어졌다.

 

“대신, 저녁은 차려줄 수 있어”

 

미야지의 말에 하야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자취방에서 저녁을 먹자는 말을, 미야지가 스스로 하다니. 그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미야지의 목을 다시 끌어안았다.

 

“고마워 미야지!!”

“대신, 별로 먹을 만 한 건 없을 거야”

“괜찮아!”

 

네가 안 괜찮은 게 어디 있겠어. 가볍게 대꾸한 미야지는 웃어보였다.

입김이 나올 정도의 날씨였는데도, 미야지는 어쩐지 얼굴이 뜨거워 겉옷을 벗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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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 데이니까 빼빼로 게임이나 하렴 엽궁아..

오랜만에 엽궁소설이네요, 바보커플 하미야는 지금당장 결혼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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