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written by Esoruen
아스가르드는 늘 금빛으로 반짝이는 세계였다. 건물도 금빛, 왕좌도 금빛, 문지기의 갑옷도 금빛, 그것들을 반사하는 강도 금빛으로 빛나고, 공기까지 황금빛을 머금은 눈부신 곳. 그 수많은 금빛 중에서도 가장 찬란한 것 중 하나는 왕인 오딘의 첫째 왕자의 머리칼이었다. 하지만 펜드럴의 의견은 달랐다. 그가 이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 하는 것은 금빛이 아니었다.
펜드럴이 두 왕자를 처음 만난 것은, 왕자들도 자신도 지금의 키의 반 정도로 작았을 때였다. 성장이 빨랐던 펜드럴보다 조금 작았던 토르와 로키는, 왕자라는 신분의 무게를 자각하기엔 터무니없이 어렸었다. 오딘은 펜드럴에게 두 사람의 친구이자 대련상대가 되어 달라 말했고, 그는 제 위대한 왕의 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두 번째로 펜드럴이 두 왕자를 만난 것은 대련장에서 무기를 들고서였다. 레이피어가 특기였던 펜드럴은 내심 자신의 승리를 기대했지만 그는 토르에게 이길 수 없었다. 토르는 왕자에 걸맞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빠르게 파고드는 레이피어를 힘차게 쳐내며, 일격에 펜드럴을 벨 기세로 검을 목에 겨눈 토르에게 '대단해' 라며 인정의 말을 내뱉으며 펜드럴은 미련 없이 제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로키는 달랐다.
토르보다 몸집도 작고, 날렵하게 생긴 로키는 펜드럴의 레이피어를 피하는 것은 잘 했지만 공격은 형편없었다. 단도를 휘둘러도 펜드럴은 막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허공으로 크게 빗나가거나, 움직임이 눈에 보여 쉽게 피할 수 있었다. 분명 형제일 텐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사실 토르와 로키는 형제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닮지 않았었다. 보고만 있어도 눈이 부신 토르의 금발과 달리 로키는 새까만 흑발로 정반대되는 어두운 머리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 흑발은 토르뿐만이 아니라 오딘과 왕비 프리가와도 닮지 않았다. 마치 저 혼자 다른 세계의 존재인 듯, 금빛의 이 아스가르드에서 둘째 왕자 로키만이 새까만 색으로 빛을 삼키고 있었다. 그런 로키가 펜드럴은 싫지 않았다. 그는 신기한 것을 좋아했으니까.
대련 이후 두 왕자, 특히 토르와 펜드럴은 급속히 친해졌다. 서로를 전사로 인정하고, 다른 전사들의 무용담을 같이 듣고, 시간만 나면 대련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로키와는 그다지 친해지지 못했다.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로키는 인사도 하지 않고 달려 나가거나 입을 삐죽였다. 제 형과만 노는 것에 반감을 느낀 걸까 싶어 다가가 손을 잡으면, 로키는 스르륵 사라져 그 자리에서 없어지곤 했다. 이건 무슨 일인가 싶어 펜드럴이 당황하고 있으면, 그제야 킥킥거리는 소리와 함께 로키는 펜드럴의 뒤에서 나타나
“속았지? 힘만 센 바보”
라고 말하고 도망치곤 했다.
로키는 장난을 좋아했다. 특히 왕비에게 직접 배운 마법으로, 제 형이나 펜드럴, 그 외의 만만한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장난을 치길 좋아했다. 그것이 그와 로키가 친해지지 못한 계기가 된 것은 아니었다. 펜드럴은 로키의 장난에 당하면서 그다지 기분 나빠 하지는 않았으니까. 다만 토르와 있는 시간이 많은 탓에 그와 크게 친해질 일은 없었다.
토르가 펜드럴보다 키가 더 커지고, 세 사람이 전사로서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도 로키와 펜드럴의 사이는 그 이상 가까워 지지 않았다. 로키는 나이가 들면서 장난이 좀 줄었지만 줄은 양만큼 내용은 묘하게 더 짓궂어졌고, 형편없던 검술 실력은 그래도 평균 정도로 늘었다. 마법은 이제 프리가 왕비와 거의 맞먹을 수준으로 능숙해졌고, 여전히 펜드럴과 단 둘이 있다면 스르륵 사라지곤 했다.
별로 달라진 것도 없었는데, 펜드럴의 마음은 변했다. 사춘기가 든 소년처럼, 저 혼자 튀는 로키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아이는 전사치곤 너무 섬세하지"
토르는 제 동생을 변호하려는 들 호탕하게 웃으며 펜드럴의 등을 두드렸다. 그렇지. 대충 대답하면서도 펜드럴은 심드렁한 표정을 거둘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싸움을 좋아하는 호전적인 전사인 토르도, 마냥 어른으로 보이진 않았으니까. 어차피 자신도 어른의 눈에서 보면 아직 어린애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두 왕자를 어린애 취급 했다. 그것이 그의 오만한 자부심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로키에 호감을 가지게 된 일이 있었다.
그것은 펜드럴이 이젠 자신도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연회장에서도 술에 입을 데기 시작한 무렵의 일이었다. 아직 너에겐 이르다는 다른 어른들의 말을 무시하고, 분위기에 취해 자신보다 연상인 여인들에게 달콤한 말을 건네며 먹고 즐기던 그는, 취기가 느껴지자 슬쩍 자리에서 빠져나와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어른들이란 왜 이런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린 그는 길고 긴 복도를 돌아다니며 눈부신 아스가르드의 야경을 눈에 담았다.
빛이 없어도 빛나는 거리. 황금빛으로 눈이 부신, 숨 쉴 때마다 그 빛을 마실 것 같은 야경. 하늘조차도 별빛으로 눈부신 아스가르드의 밤.
그런데 그 빛나는 복도에, 새까만 어둠이 불쑥 튀어나왔다.
펜드럴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의 끝에서 나타난, 새까만 머리칼의 소녀는 펜드럴을 보더니 묘한 웃음을 흘리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 나갔다. 처음에는 차분히, 발소리도 내지 않고 소녀를 쫒던 펜드럴은 자기도 모르게 조급해져 점점 속도를 올려, 거의 뛰듯이 소녀를 쫒았다. 연회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미녀에, 괜히 호기심이 들었던 것도 있지만 어쩐지 쫒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눈부신 곳에서, 저 혼자 빛나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아름답단 말인가.
소녀의 푸른 옷자락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펜드럴은 있는 힘껏 달려, 소녀의 새하얀 손목을 낚아챘다.
그때
“경이 그렇게 뛰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군”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소녀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낮은 미성 이였다. 게다가 낯설지 않은 그 목소리에 펜드럴은 혹시 제가 너무 많이 취한 것이 아닐까 했지만, 그가 느낀 목소리의 익숙함은 잘못되지 않았다.
“로키”
이름을 부르자 소녀는 모습을 바꿔, 아스가르드의 둘째 왕자로 변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조금 장난 친 것뿐이니까”
여인에게 이토록 관심이 많다니, 경은 어른이 다 되었나 보군. 그런 말까지 덧붙인 로키는 조롱하듯이 웃고 제 손목을 잡은 손을 뿌리쳤다. 마치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을 다 들킨 기분이 된 펜드럴은, 허탈함에 저 멀리 사라지는 로키의 뒷모습만을 바라 볼 뿐이었다.
이런 장난을 당했는데도, 어쩐지 그는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것이 술에 취해 한껏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당한 일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반짝반짝 빛나지는 않지만 은은한 윤기를 내는 로키의 머리칼에, 분노가 다 녹아버려서 그런 것인지 아직 어린 그는 알 수 없었다.
펜드럴은 수염이 나고 목소리가 굵어진 지금도 가끔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이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 하는 것은 금빛이 아니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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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2 완전 재밌네요 ㅠㅠㅠ 흡... 토르1, 어벤져스 봐도 연성은 안한 저였는데 토르2는 정말.. ㅠㅠ
로키 너무 예뻐요 왕자님 저에요 쾅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