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거리
written by Esoruen
to. 쿠랄님
바스락. 간지러운 소리가 귀를 간질거렸다. 발 밑에 밟히는 낙옆의 감촉과 소리에 와카마츠는 새삼 가을이 왔음을 느꼈다. 토오 학원에는 유독 활엽수가 많았기에 가을이 오면 길엔 울긋불긋 화려한 치장을 하게 되었다. 텅 비어가는 나무는 어찌 보면 초라해 보였지만, 저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저것도 순간이니까. 봄이 오면 다시 초록빛 생명으로 제 몸을 에워쌀 것이니까. 모두 내려놔 버리는 가을이 없으면 나무는 겨울에 지고 마니까.
답지 않게 낯간지러운 생각을 한 것이 괜히 머쓱해져 와카마츠는 볼을 긁적였다. 이런 것이 반 여자아이들이 다 들리도록 시끄럽게 말한 '가을을 탄다'는 것인가. 고등학교 2학년생이 될 때 까지 알지도 못했던 감각이었지만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낙엽 같았다. 물든 듯이 화려하고, 간지러운 소리가 난다.
"앗"
신발장에 운동화를 넣고, 실내화를 꺼내 신은 후 계단으로 몸을 향하자 아는 사람이 눈에 밟혔다. 계단 구석에서 친구로 보이는 남학생과 편한 표정으로 수다를 떠는 남자는 다름 아닌 농구부의 선배. 그것도 스타팅 멤버인 스사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표정 변화가 적은 스사가 미소 짓고 있었다. 궁금하다. 이야기의 주제도, 이야기하고 있는 상대도, 그리고 왜 하필 이곳에 서서 이야기 하는지도. 단순하지만 강한 호기심, 그것에 이끌려 와카마츠는 무의식적으로 한 발을 내밀었다가 도로 물러섰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수상해 보일게 뻔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애초에, 왜 궁금해 하는 거야.
스스로 자문 해봐도 적당한 답은 나오질 않았다. 와카마츠에게 스사는 성격 좋고 실력 있는 선배, 그리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아오미네나 사쿠라이 쪽 보다는 가깝지만, 이마요시보단 조금 멀게 느껴지는. 같은 팀이란 테두리와 스타팅 멤버란 인연 외엔, 그다지 내세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가끔 나누는 대화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서 와카마츠는 그가 좋은 사람이라 느꼈고 그것은 호감이라고 단정 지어도 좋을만한 것이었다.
분명 사소한 관심일 것이다. 하지만 가을의 탓일까, 와카마츠는 짝사랑하는 여고생처럼 서선 그대로 시선만 스사에게 향했다.
지나갈까, 다가갈까, 아니면 이대로 멈춰 있을까. 등교중이란 것도 잊고 와카마츠는 고민했다. 선배와의 거리는 약 5m. 계단 위에 서 있는 스사는 아직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마른 침을 삼키고 멀리서 지켜보던 와카마츠는 결국 발을 떼지 못 했다.
이상하게도 다가갈 수가 없어.
언제나 그가, 스사에게 느끼던 감정이었다. 다가가려고 하면 누군가가 막고 있는 것도, 자신을 잡고 있는 것도 아닌데 다가갈 수 없다. 아니, 막고 있는 사람 정도는 있을 수도 있다. 주장. 스사와 늘 붙어있는 이마요시가 그에겐 마치 장벽같이 느껴졌다. 정작 이마요시는 와카마츠에게 후배와도 선배와도 잘 지내라며 스사와 연습 상대를 붙여 주거나 하기도 했지만 와카마츠 입장에선 그런 배려도 소용없었다.
스사라는 사람은 어려웠다. 한없이 사람 좋아 보이는가 하면, 시합중이나 후배를 혼낼 때는 냉정하고 엄하고, 전체적으로는 감정표현이 적은 사람이었다.
고슴도치 딜레마? 그런 거창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스사 외의 사람에겐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니까. 그럼 이 감정은 무엇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던 와카마츠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만 얼굴.
"…설마"
작게 중얼거린 와카마츠는 고개를 세게 저어 생각을 떨쳐내고 시간을 보았다. 조금 뒤면 아침조례 시간, 이렇게 서 있을 수많은 없었다. 심호흡을 한 와카마츠는 그 자리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소리쳤다.
"좋은 아침입니다 선배님!"
복도가 울릴 정도의 큰 목소리에 스사뿐만 아닌 다른 학생들도 와카마츠를 보았지만 정작 와카마츠의 얼굴엔 부끄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해 기운찬 인사를 한 후배를 응시한 스사는, 작게 웃어 보이고 손을 흔들었다.
"안녕 와카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