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글벨과 단팥죽
written by Esoruen
“있잖아, 신쨩은 언제부터 산타를 안 믿었어?”
타카오의 황당한 질문에 미도리마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은 질문이 너무나도 뜬금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언제부터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았는가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였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믿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떠오르는 장면은, 유치원생 시절 머리맡의 보따리에 담긴 크리스마스 선물을 풀어보며 ‘산타 할아버지가 왔다 가셨어!’ 라며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선물은 고급 학용품 세트로, 또래의 친구들에게 보여주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근사한 물건이었다.
초등학교 때의 기억은 흐릿하다. 고학년에는 이미 산타는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저학년 때는 무슨 선물을 받았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산타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면 그때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쯤”
“헤에, 꽤 빨리 알았네?”
“그러는 넌 언제 알았냐는 것이다”
호호 불어 마시지 않으면 뜨거운 캔 단팥죽을 마시며 미도리마는 반문했다. 아마 타카오라면 꽤 빨리 알아챘을 거라고 그는 짐작했다. 타카오는 눈치가 빨랐다. 어렸을 때는 어떤지 몰라도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다면 아마 그는 유치원생 때부터 저기서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는 누군가가 변장한 가짜라는 것을 알고 혼자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도리마의 예상은 틀리고 말았다.
“난 아직도 믿는데?”
“어?”
“믿는다고, 산타. 난 아직도 믿어”
저 발언이 정녕 남자 고등학생에게서 나온 것인가. 미도리마는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타카오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타카오의 표정은 뻔뻔했다. 오히려 믿지 않는다고 발언한 미도리마를 측은하게 보는 눈빛에, 미도리마는 시선을 돌렸다.
“네가 초등학생 이냐는 것이야”
“너무하네~! 산타는 있다고? 어제 소원도 빌었단 말이야”
심지어 소원까지 빌었다니. 이쯤 되면 순수한 건지 정말 어디서 제대로 속아서 세뇌라도 당한건지 의심스러워지는 미도리마였다. 그것보다, 어제라면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보통 산타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브와 크리스마스 사이 밤에 주고 가지 않던가. 이렇게 이야기를 꺼낸 것도 어쩌면 선물을 못 받아서 물어보는 것일까.
“무슨 소원?”
타카오는 무엇을 가지고 싶어 했을까, 궁금해진 미도리마는 슬쩍 물어보았다.
“궁금해?”
“그렇다면 알려줄 건가?”
“하하, 신쨩이 궁금하다면 알려줘야지!”
타카오는 그 질문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전혀 내빼지 않고 제 소원을 이야기 해 주었다.
“난 신쨩의 뽀뽀를 받고 싶다고 했지!”
“푸우웁!”
예상치 못한 발언에 미도리마의 입안으로 들어갔던 단팥죽은 불쌍하게도 전부 공중으로 뱉어졌다. 사래에 들려 쿨럭 거리면서도 미도리마는 방긋방긋 웃고 있는 타카오를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라 북적이는 시내의 벤치에 앉아서 하는 말이 ‘뽀뽀를 받고 싶다’ 라니. ‘넌 부끄러움도 모르느냐’고 소리를 지르려던 그는 타카오는 정말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법 따윌 모른다는 것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으아, 단팥죽 아깝네”
“네놈 때문이지”
“그렇게 놀랄 것 없지 않아? 우리 사귀는 사이고”
“아직 사귄지 100일도 안 되었지만 말이지”
한마디도지지 않고 말을 받아친 미도리마는 휴지로 입가를 닦았다. 실제로 두 사람은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사귄지는 50일을 조금 넘은 풋풋한 연인관계였다. 스킨십은 물론 손을 잡는 것에서 끝. 엄하게 자라온 탓일까, 미도리마는 스킨십이 낯설고 부끄러웠다. 타카오는 종종 야한 농담이나 손을 뻗는 것을 즐겨했지만, 미도리마는 그런 타카오의 공격을 모두 방어해냈다. ‘철벽이라니까!’ 타카오가 그렇게 한탄해도 미도리마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산타 같은 건 없으니 그 소원은 무효가 되겠군, 안 됐군. 타카오”
“그럴까 과연?”
타카오는 자신에게 비아냥거리는 말도 웃어넘기며 붕대로 감싸진 흰 손을 잡았다. 장갑조차 끼지 않은 미도리마의 손은 따뜻한 캔 단팥죽 덕분에 차갑지 않았지만 따뜻하다고도 할 수 없는 온도였다.
“신쨩 좀 있으면 7시야”
“그래서?”
자신은 보지도 않고 대답하는 미도리마가 야속했지만 타카오는 벤치에서 조금 떨어진 커다란 트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크고 작은 전구가 달린 대형트리는, 휘양 찬란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저기 있는 트리에서 캐럴송이 나올 거야. 그때 키스하자”
“싫다만”
“아니, 싫다고 해도 소용없어. 산타는 내 편이거든. 하게 될걸?”
자신감이 넘치는 말투, 그것에 압도되어 미도리마는 타카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타이밍 좋게도 두 사람이 눈이 맞았을 때, 트리 옆의 스피커에선 캐럴송이 흘러나왔고 타카오의 얼굴이 미도리마를 향해 돌진했다.
쪽. 가볍게 입술이 부딪히고 나서야 미도리마는 알았다. 처음부터 타카오는 이걸 노렸구나, 하고.
“봐, 했잖아”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타카오는 미도리마의 온기가 남아있는 제 입술을 핥았다.
“…타카오!!”
“하하, 첫 키스가 단팥죽 맛이라니. 되게 무드 없다, 그치?”
“시끄럽다는 것이야!!”
미도리마는 제 입술을 닦으려다가 멈칫했다. 어쩐지, 닦으면 굉장히 실례일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거리에서 입맞춤을 했다는 부끄러움보다도 눈앞의 연인에게 실례라고 생각하는 날이 오다니. 스스로도 놀라면서 미도리마는 손을 거두었다.
“하하. 늦었지만 저녁 먹으러 가자”
타카오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미도리마의 손목을 잡고 일어섰다. 미도리마는 아무 불평 없이 그를 따라 일어서고,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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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크리스마스 여러분
손목 아파서 소설 못쓴다고 했지만, 역시 크리스마스 연성을 뺄 순 없을 것 같아 써보았습니다.
애초에 게임한다고 삐끗한 손이니 괜찮아요 허허허허..허..ㅠㅠ
고녹은 언제 써도 즐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