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임버스(소울메이트) 기반 AU 입니다

 

고리

02

written By Esoruen

 

 

연애란 어떤 걸까. 미야지에게는 그 질문은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졌다. 그것은 미야지가 아직까지 연애를 해 본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기도 했고, 연애를 한다는 상상을 해보지 못해서 이기도 했다. 이름 없이 태어난 미야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절부터 무의식 적으로 연애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 살았다. 짝을 알 수 없는 자신이, 이름도 모르는 미래의 상대를 사랑하는 상상을 하는 것은 비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미야지는 첫 데이트 문자를 받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미야지씨, 나 도쿄에 갈 건데 데이트 해줄래?’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제안. 하야마답다면 하야마답지만, 겨우 한번 만난 사람에게 하는 데이트 제안 치고는 살짝 건방진 느낌도 없지 않았다. 미야지는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를 30분 넘게 고민하다가, 결국 키무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야, 키무라. 너 데이트 해 본적 있지?”

 

미야지의 질문에 키무라는 무슨 당연한 걸 묻느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그도 미야지가 왜 이런 질문을 해오는지 몰랐으니 그런 것이었지만, 이내 하야마의 문자와 미야지의 고뇌에 찬 상담을 듣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뭐야 그런 거였어? 푸핫!”

“웃을 일 아니다. 나 진지하다고!! 뭐라고 답장해야 되는 거야, 이거?!”

“그거야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는 거지. 뭘 어렵게 생각하는 거야”

 

키무라의 말은 반박 할 수 없이 정확했다. 하지만 미야지는 그것을 몰라 키무라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 아니었다. 미야지는 지금 자신이 이 데이트를 받아도 좋을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정말로 하야마의 데이트 신청이 귀찮았다면, 미야지 성격에 그 자리에서 ‘꺼져’ 라고 답장을 보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미야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무어라 답장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망설이고 있었다.

딱히 하야마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 것일까. 미야지는 스스로가 한심스러워 입술을 깨물었다.

 

“아, 나도 몰라!”

 

미야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답장을 보냈다. 순식간에 써 내려간 문자는 다음과 같았다.

‘언제 몇 시에 올 건지 정확히 정해서 문자 넣어’

 

“뭐라고 보냈어? 수락했어?”

“몰라, 몇 시에 오는지 보고 시간 안 되면 안 갈 거야”

 

투덜거리며 핸드폰을 집어넣은 미야지는 제 자리로 돌아가 책상에 엎어졌다. 말은 저렇게 해도, 분명 기대하고 있겠지. 미야지와 친한 키무라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단지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호감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저러고 있을 뿐, 하야마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되어야 할 텐데’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가지는 동정이라고 할까. 이름이 새겨진 채 태어난 키무라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사랑할 사람을 모르고 태어난다는 공포와 실망감은 조금만 상상해도 그에겐 끔찍했다. 그렇기에 자신에겐 가장 친한 친구인 미야지의 짝이 나타났다고 했을 땐, 마치 제 일처럼 기뻤다.

키무라는 부디 미야지의 첫 데이트가 웃으며 끝나기를 빌었다.

 

 

 

 

 

데이트는 문자가 온 주의 토요일로 정해졌다. 데이트 당일, 미야지는 평소보다 조금 차려입고 역에서 하야마를 기다렸다. 사실 차려입었다고 해도 평소와 비교해서 일 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깔끔한 캐주얼 정도의 복장이었다.

긴장 탓에 약속시간 보다 20분 정도 일찍 나온 미야지는 거리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보고,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보고, 길거리의 사람들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데이트는 처음이어서 무엇을 할지는 생각해 보고 나오지 않았지만, 평소 친구들과 놀던 식으로 놀면 되겠다는 막연한 계획 정도는 있었다.

 

“미야지씨~! 많이 기다렸어?”

 

약속시간 5분 전, 예정보다 열차가 일찍 도착한 것인지 하야마가 기운찬 목소리로 인사하며 나타났다. 미야지는 대충 손을 들어 인사에 화답하더니, 다짜고짜 하야마의 손목을 잡아 소매를 걷었다.

미야지 키요시.

손목에는 여전히 새빨간 글씨로 제 이름이 써져 있었다. 반려의 표시, 자신에겐 없는 것. 이름을 빤히 내려다 본 미야지는 ‘역시나’ 라고 중얼거리고 한숨을 내뱉었다.

 

“뻥이길 바랬는데”

“에에?! 뭐야 그거!? 뭐가 뻥이길 바란 거야??”

 

물론 뻥이길 바란 것은 이름에 관한 것이었다. 미야지로선 제 짝이 나타난 것은 역시 기쁜 일이긴 했지만, 미야지는 아직 이것저것 실감가지 않는 것이 많았다. 제 짝이 남자인 것은 이제 체념했다. 애초에 호모포비아도 아니었고, 제 친척 중에서도 동성반려를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까. 단지 이 천방지축인 남자가, 경기에선 얄미울 정도로 잘 하던 이 남자가 제 짝인 것이 그에겐 아무리 납득하려 해도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점심은 먹었냐?”

“응? 아니! 나 배고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미야지씨!”

 

단순히 대화의 화제를 돌린 것만으로도, 하야마는 아까 전 제가 묻던 것을 잊어버리고 미야지의 팔을 잡아당기며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쳤다. 단순해서 좋군. 미야지는 처음으로 하야마의 심플한 행동양식에 마음속으로 찬사를 날리고 시끄럽게 떠드는 그에게 말했다.

 

“일단 입부터 다물어 봐! 음, 뭐 좋아 하냐?”

“나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어!”

“좋아, 그럼 내가 좋아하는 걸 먹지. 분명 넌 아무거나 괜찮다고 했으니까”

 

제멋대로인 미야지의 결정에 하야마는 토를 달지 않았다. 미야지는 겨우 입을 다문 하야마를 데리고 근처의 피자집으로 향했다. 피자집은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지만, 두 사람이 앉을 자리 정도는 금방 나왔기에 둘은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하야마의 말대로 그는 정말 가리는 것이 없어보였다. 피자도 피클도 잘 먹는 하야마를 보고 있다 보면, 미야지는 어쩐지 자신이 굉장히 깨작깨작 먹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해졌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게 먹는다고 할까. 복스럽게 먹는다고 할까. 조금 과장하자면,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맛있냐?”

“응? 응!”

“많이 먹어라, 기껏 여기까지 왔으니까”

 

교토에서 도쿄까지는 분명 가깝다고 할 수 없는 거리였으니까 미야지는 자신과 노는 것의 재미는 보장할 수 없더라도 최대한 하야마의 배라도 불려 돌려보내고 싶었다.

하야마는 피자를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학교 이야기, 기차를 타고 오면서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피자의 맛까지. 한시라도 떠들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는 하야마는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미야지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다가 문득, 제가 입을 열었다.

 

“이봐”

“응?”

“떠드는 중 미안하지만, 하나 물어봐도 되냐?”

“뭔데?”

“넌 반려가 나인 거, 불만 없냐?”

 

꽤나 직설적인 질문에 하야마는 먹던 것도 그만두고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미야지를 바라보았다.

 

“없는데”

“허?”

“뭐라고 할까, 미야지씨 우리 팀에 지긴 했지만 농구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겼잖아. 난 오히려 이런 미남이 반려라 지금 무지 기쁜데!”

 

자신을 칭찬하는 말에 미야지는 쑥스러운지 아무 대답도 없이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 그는 미남이었다. 친한 친구인 키무라와 오오츠보도 ‘솔직히 우리 중에선 얼굴 마담은 너지’ 라고 농담 삼아 말했고, 반의 여학생들도 ‘미야지군은 잘생겼으니까’ 라고 평가하는 일이 많았다. 미야지 본인도 자신이 못생기진 않았다 생각지만, 막상 하야마에게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게다가 농구를 잘한다는 칭찬은 또 무엇인가. 어째서 오관의 무장인 그가 겨우 자신을 ‘농구를 잘한다’ 라고 칭찬한단 말인가. 처음엔 놀리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하야마의 눈을 보면 분명히 진심이었다.

 

“뭐, 고맙네. 음”

“고맙긴! 나야말로 나타나줘서 고마워!”

 

하야마는 제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나, 무지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거든. 이 이름의 주인이 어떻게 생겼을까. 이름을 봐선 남자 같은데,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윈터컵서 만나서 기뻐!”

“…그러냐?”

“응! 어어, 맞아 이제야 물어보는 건 좀 이상한데. 미야지 반려는, 그, 나겠지 역시?”

 

하야마는 슬쩍 미야지를 훑어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차. 미야지는 그제야 자신이 하야마에게 아직 자신에 대해 아무 말을 안 해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난 ‘이름이 없는 사람’이거든”

 

특이한 케이스기는 했지만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닌데, 미야지는 늘 이 사실을 말할 때면 이유 없는 위축감이 들었다.

 

“그래서, 난 내 반려가 누군지 몰라”

“에, 그렇구나. 으음”

“왜, 실망이냐?”

“아니! 오히려 기쁜 걸? 미야지 몸에 새겨진 반려가 내가 아니면 어쩌나 걱정했으니까”

 

하긴, 미야지 키요시라는 이름이 세상에 한명만 있을 리는 없으니까. 하야마의 걱정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만약 미야지가 이름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불안해하지도 하야마를 의심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름이 맞는다면 받아들이고, 아니라면 그 자리서 ‘아무래도 반려를 잘 못 찾아온 거 같다’며 내쳤을 것이다.

결국 미야지는 이름이 없기에, 지금 이렇게 미묘한 기분으로 하야마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미야지는 문득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기뻐하는 하야마를 보고는 조금 마음이 누그러졌다.

 

‘뭐, 이런 식으로 천천히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 미야지는 피자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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