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임버스(소울메이트) 기반 AU 입니다
고리
03
written by Esoruen
미야지 키요시.
자신의 이름을 검색창에 친 미야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Enter키를 눌렀다. '미야지 키요시'에 대한 검색결과는 백건이 넘었다. 이 세상에 자신이 아닌 다른 '미야지 키요시'는 이렇게 많다는 것이었다. 기분이 나빠진 미야지는 검색결과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창을 꺼버렸다.
'반려 검색 시스템' 그것은 미야지가 방금 들어간 사이트의 이름이었다.
사이트의 이용법은 간단했다. 사이트에서 유일한 기능인 검색창에 이름을 쓰면, 그 이름을 쓰는 일본인의 사는 곳과 나이, 성별 등이 검색되어 나왔다. 그야말로 반려의 이름과 성이 다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이트인 그곳은, 미야지가 평생 들어갈 일이 없을 거라 확신했던 곳이었다. 이름이나 성은커녕, 아무것도 없는 그에겐 저 반려 검색 시스템은 기분 나쁜 차별의 온상같이 느껴졌다.
하야마와 데이트를 한 날로부터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미야지는 아직도 혼란스러운 나날을 반복되고 있었다. 그렇게나 싫어하던 반려 검색 시스템으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거나, 하야마의 이름을 검색하거나 하며 미야지는 혼자서 혼란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이런 걸 검색해 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았지만, 미야지는 자신을 상처 입히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그는 너무나 불안했으니까.
지이잉. 핸드폰이 진동하는 소리. 컴퓨터에서 떨어져 침대에 드러누운 미야지는 떨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신규 메시지 1개. 발신자는 하야마였다.
'미야지씨! 저녁 먹었어?'
어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적인 문자에 미야지는 답장을 주지 않았다.
“생각 없는 녀석”
미야지는 하야마가 자신이 이름 없는 아이라는 것을 밝혔을 때의 반응을 떠올렸다.
왜 하야마는 안심 한 것일까. 미야지로선 이해 할 수 없었다.
이름이 없다는 뜻은, 자신의 반려가 하야마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은 이것이 이렇게나 불안한데, 하야마는 그걸 간단히 넘기고 안심할 수 있다니. 미야지로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만약 수많은 ‘미야지 키요시’중, 자신처럼 반려의 이름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던 미야지는 베개에 머리를 처박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오늘도 자신의 문자에 돌아오는 답장은 없었다. 하야마는 이젠 익숙할 때도 되었는데 미야지의 무심함에 입을 비죽였다. 미야지는 정말 자신이 싫은 것일까. 애매한 태도만을 보이는 그에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만큼 하야마는 섬세하지 않았다.
커다란 소파에 기대앉은 하야마는 처음 미야지를 만난 그 순간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어렸을 때부터 기대해 온 자신의 반려자는 기대 이상으로 멋있었다. 키도 크고 얼굴도 준수한, 정말 저 사람이 제 반려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완벽한 사람. 물론 경기를 하며 본 그의 성격으로 ‘역시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의 눈에는 미야지의 까칠한 성격마저도 매력으로 보였다.
단도직입 적으로 말해, 하야마는 미야지에게 첫눈에 반했었다.
첫 데이트를 했을 때는 더없이 기뻤다. 한 번도 애인을 사귀어 본 적도 없는 하야마로선 솔직히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과 다름없는 데이트였지만, 그 두근거림은 제가 살아서 처음 겪는 감정이라고 해도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미야지가 ‘이름 없는 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솔직히 기뻤다.
아직 미야지의 몸에 써진 이름을 알지 못한 하야마로선 첫 데이트 날 갑자기 그가 ‘내 몸에 써진 이름은 네가 아니다’ 라며 자신을 밀어낼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는 이름이 없었고, 자신이 거절당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기뻤다. 자신의 이름은 없지만, 아무 이름도 없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또 데이트 하고 싶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하야마는 쿠션을 끌어안았다. 쿠션은 진한 벌꿀 색으로, 마치 미야지의 머리색과 닮아 있었다.
미야지는 오늘도 공부 하다 말고 책상에 엎어져 물에 젖은 빨래처럼 축 들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대학 떨어진다?’ 라며 오오츠보가 핀잔을 주긴 했지만, 미야지는 들리지도 않는 다는 듯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키무라는 채점을 마친 문제집을 덮고 자는 것처럼 조용한 미야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안 풀려?”
“나 너보다 성적 좋다”
“너나 나나 비슷하거든? 그리고 공부 이야기 하는 거 아냐”
사실 미야지도 키무라가 문제집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아마 하야마와의 연애가 잘 풀리느냐 안 풀리느냐 물은 것이겠지. 알고는 있었지만 미야지는 그 대답을 회피하고 싶어 모른 척을 했을 뿐이었다. 뻔하고 비참한, 그 나름의 도피 행위였다.
“그녀석 별로야?”
“아니”
“그럼 왜 그래? 역시 남자라서 그러냐?”
“나 호모포비아 아니야 인마”
“그럼 왜?”
왜, 라는 질문은 언제나 어려웠다. 제 생각을 남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 만큼 말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생각을 말하는 자체가 불편하기도 했다. 미야지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키무라와 눈을 맞추었다. 미야지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너는 만약 네 애인의 ‘키무라’가 네가 아니면 어쩔 거야?”
“어?”
“그러니까 너 말고 다른 키무라 아무개가 네 애인의 이름이 새겨져있다면 어떨 거 같냐고”
키무라도 키무라의 애인도, 서로 성과 풀 네임이 아닌 이름이나 성 중 하나뿐이었으니, 키무라 본인도 저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야지가 이런 민감한 문제를 물어올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미야지는 하야마의 일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상관없어”
“허?”
“나랑 에리카는 정말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도 괜찮아. 에리카의 풀 네임이 새겨져 있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일단 우린 서로 사랑하니까 그런 건 생각 안 하기로 했어”
그러니까 너도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키무라가 덧붙인 말은 미야지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