霜 서리
written by Esoruen
발바닥에 느껴지는 대청마루는 건조하고 차가웠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때 마다 내 뒤엔 체온의 발자국이 생겨날 정도로 한 겨울의 킨코우 사원은 추웠다. 입김도 얼어버릴 것 같은 겨울날, 바보같이도 쉔은 감기에 걸렸다.
제 몸 관리는 가장 철저히 하던 놈이 감기라니, 도장의 멍청이들은 모두 쉔의 병세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나는 달랐다. 난 언젠간 그녀석이 감기에 걸릴 걸 알고 있었다.
쉔의 방은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했다. 정확하게는 나와 쉔의 방인 이곳은 볕이 잘 드는 만큼 바람도 잘 들었다. 밤에 문을 제대로 닫고 자지 않으면, 칼같이 서늘한 바람이 창문 사이로 파고드는 이런 곳에서 자면 감기에 안 걸리는 쪽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내 기척을 느낀 쉔은 마른 입술로 웃어보였다.
“수련은?”
“땡땡이 쳤다”
제 몸 걱정이나 할 것이지, 작게 혀를 차며 그 옆에 앉자 쉔은 새하얗게 질린 손을 내 쪽으로 뻗었다. 평소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는 답지 않게 구는 일이 많았던 녀석이었지만, 이렇게 손을 내민 것은 또 얼마만이던가. 아프지만 않았다면 징그럽다며 치워라 했겠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내 얼굴께로 다가온 손을 낚아채듯 잡자 열기가 훅 풍겨왔다.
뜨거운 물에 삶은 것처럼 쉔의 손은 뜨거웠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온도, 바깥의 얼어붙은 마루와 비교하자면 녀석의 손은 이 사원을 다 녹여버릴 듯 뜨거웠다.
“못난 수련생이네”
“아파서 빠진 너도 그다지 좋은 수련생은 아니지”
“그렇지”
잠시 잡고 있었던 것뿐인데도 마주 잡은 손 사이에는 땀이 흥건히 차올랐다. 그것은 내 땀이 아닌 쉔의 식은땀이었다. 기분 나빠. 하지만 놓기에는 눈앞의 얼굴이 너무나도 가여웠다. 주워온 고아자식이 사부의 아들이자 킨코우의 다음 후계자를 가여워 하는 게 웃기긴 했지만, 내 눈에는 적어도 이 녀석이 가여워 보였다.
애비라는 자는 자식이 아프다는데 얼굴도 보이지 않고, 친구들도 모두 수련에 바빠 오지 않는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킨코우에선 당연한 것일지 몰라도, 나는 별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혼자 있으니 심심하겠군”
“괜찮아”
“괜찮기는”
저 괜찮다는 몸과 마음 중 어느 쪽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어차피 이 녀석은 거짓말쟁이니까 괜찮다는 말도 다 거짓말일 것이다. 이 녀석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들은 언제나 내가 보기엔 괜찮지 않은 것이었고,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것들도 모두 그리 사소한 것들이 아니었다.
“간호하러 온 건가?”
“웃기고 있네, 땡땡이 쳐서 방으로 온 것뿐이야”
“그럼 옮을지 모르니 떨어져 있는 걸 권하지”
내 손에서 빠져나간 쉔의 손은 이불 속으로 숨어버렸다. 뜨거운 온도가 사라진 빈손에 남은 식은땀은 끈적끈적하고 서늘했다.
녀석의 말을 들을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멀리 떨어지는 대신 그 옆에 바로 천장을 향해 누웠다. 귓가에서 들리는 쉔의 숨소리는 마치 평소의 녀석의 발걸음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느렸다.
“감기 옮아”
“알게 뭐야. 옮으면 네 녀석에게 책임을 묻도록 하지”
“간병이라도 시킬 건가?”
“간병 해 줄 건가?”
천장을 향했던 몸을 돌려 녀석을 바라보자, 샛노란 눈동자가 이쪽을 향해 놀라움을 표하고 있었다.
“그런 걸 원하는 건가? 제드”
“그건 아니지만 네 녀석이 먼저 말을 꺼냈으니까”
“원한다면”
“정말 약속 할 수 있나?”
내 물음에 눈앞의 마른 입술이 달싹였다. 녀석은 쉽게 약속하는 일이 없었다. 내 뱉은 말은 지키는, 꽉 막힌 멍청이. 그게 쉔이었다. 잠시 고민하며 입술만 움직이던 쉔은 슬며시 웃어보였다.
“물론이지”
“그래?”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에 조금 놀라고 말았다. 이 녀석이 누군가를 간호해 주는 모습 같은건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언젠가 한번 봐 둔다면 나쁠 것도 없겠지.
“기대하지, 날 실망시키지 마”
“마치 감기에 걸려서 오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착각이다. 잠이나 자”
날 바라보는 두 눈동자가 싫어, 나는 녀석의 얼굴을 내 손으로 덮어버렸다.
뜨거운 한숨이 손바닥에서 느껴졌지만, 손을 거둘 생각은 이상하게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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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한 소재는 이것입니다
15~16살 정도의 제드쉔을 망상해보았습니다
그냥 둘이 사귀면 좋겠습니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