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
written by Esoruen
무라사키바라가 제 가방에서 낮선 물건을 발견한 것은 이미 기숙사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에에, 이거”
제 손의 반 정도 크기 밖에 안 되는 작은 스틱. 어디선가 본 화장품 브랜드 로고가 박혀있는 그것은 누가 봐도 남학생의 가방에서 나오기엔 어색한 물건이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을까. 립스틱을 만지작거리며 과거를 회상하던 그는 지난 주말에 자신의 누나가 제 가방을 빌려간 사실을 떠올렸다.
자신의 배낭은 세탁중이라며 다짜고짜 무라사키바라의 가방을 빌린 누나는 토요일 캠핑을 가 일요일 오후에야 돌아왔다. 당장 기차를 타러 가야 했던 무라사키바라는 누나가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낚아채 내용물을 비우고 제 짐을 넣어 집을 나왔었다.
그때 미처 빼지 못한 누나의 짐이었구나. 어쩐지 누나에게 미안해진 그는 문자로 누나에게 립스틱의 행방을 알려줬다. 누나는 ‘나중에 집에 오면 돌려줘’ 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장했다. 별로 화나지 않은 것 같은 그녀의 태도에 안심한 무라사키바라는 앙증맞은 립스틱의 뚜껑을 열었다.
“우와~”
아찔한 핑크색, 그 도발적임에 무라사키바라는 절로 감탄을 내뱉었다. 평소 누나가 화장한 모습을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이런 노골적인 색의 립스틱을 바른 것을 본 적은 없었는데. 혹시 이번 캠핑은 친구가 아니라 남자친구랑 간 것일까. 묘한 기분이 든 그는 슬쩍 손등에 립스틱을 그어보았다. 반짝반짝 펄이 들어간 핑크빛은, 마치 중학교 동창의 머리색 같이 밝았다.
“그게 뭐야, 아츠시”
침대에 누워 책을 읽던 히무로는 혼자서 감탄사를 내뱉는 그가 재밌어 보인 것인지 립스틱에 흥미를 보였다.
“아, 이거. S브랜드 신제품이네”
“에? 무로칭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요즘 광고 많이 하니까”
아무리 광고를 한다고 해도 보통 남자가 화장품 같은걸 기억 할 리 없잖아. 그렇게 반박하려던 무라사키바라는 ‘히무로 타츠야라면 그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에 입을 닫았다. 과연 여자에게 인기 있는 남자답다고 할까, 섬세하다고 할까. 히무로는 의외로 이런 것에 민감했다.
“누나 거야? 설마 아츠시 거?”
“내거일 리가 없고”
“왜? 아츠시가 안 발라도 누군가를 위해 샀을 수도 있지”
“그거, 무로칭에게 선물해 달라는 거?”
“에?”
히무로는 허를 찔린 것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라사키바라를 보다가 생긋 웃었다.
“나한테 이런 걸 선물 하고 싶은 거야?”
“그런 건…”
‘아닌데’ 라고 대답하려던 무라사키바라는 말을 멈추고 립스틱과 히무로를 번갈아 보았다. 얇고 색조 없는 히무로의 입술과 인공적인 분홍빛, 대비되는 두 물체를 바라보던 그는 히무로에게 다가가더니 무방비한 그 어깨를 덥석 잡았다.
“무로칭 가만히 있어봐”
“아, 아츠시?”
“가만히 안 있으면 비뚤어지고~”
히무로는 지금 무슨 일어날지를 바로 감지했지만 피할 수 없었다. 무라사키바라는 자신보다 이미 아득히 덩치가 크기도 했고, 평소보다 어깨에 가해져 오는 힘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아츠시 제발!”
“왜~? 나중에 지우면 되잖아”
“그럼 아츠시가 바르는 건 어때?”
“재미없으니까 싫어”
“아츠시!!”
“아, 정말, 조용히 해라니까 무로칭”
결국 어깨의 손으로 히무로의 얼굴을 잡은 그는 강제로 히무로의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버렸다. 분명 웃길 줄 알고 바른 것이었는데, 막상 립스틱을 바른 히무로의 입술은 여고생 같이 귀여워 무라사키바라는 살짝 김이 새고 말았다.
“에 뭐야, 안 웃기고”
“아츠시…”
한숨을 푹 내쉰 히무로는 거울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갑자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어, 아츠시, 여기 잘못 발랐잖아. 삐져나왔어”
“에? 거봐 무로칭이 바동거려서 그런 거잖아. 다시 바르자”
이번에는 좀 더 진하게 발라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숙여 히무로의 얼굴에 다가간 무라사키바라는 갑작스러운 히무로의 키스에 굳어버렸다.
히무로는 가볍게 무라사키바라의 입에 입 맞추고 볼과 목, 그리고 옷에까지 키스를 해 입술자국을 남겼다.
“무로칭…?!”
“하하, 이거 잘 안 지워질걸. 특히 옷에 묻은 건 말이야”
“이리 와! 지워졌으니 다시 발라 줄 거고!”
“잡아보지 그래?”
히무로는 입술을 슥 닦고 기숙사 방을 뛰쳐나왔다. 무라사키바라는 지금 자신의 꼴은 생각도 못하고 히무로를 쫒아 뛰쳐나갔고, 두 사람의 소란스러운 추격전에 기숙생들은 모두 복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로칭!!”
“하하, 난 안 잡힐 거야~”
그리고 다음 날, 남자기숙사에서 립스틱을 바르는 변태와 키스마크를 달고 뛰어다니는 변태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리고 나서야 무라사키바라는 제 행동을 후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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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로 쓴 무라히무
아 립스틱 바른 히무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