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좌 합작에 참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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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육

written by Esoruen

 

 

 

'다음에 또 오세요!' 점원의 상냥한 목소리에 쿠로코는 웃으며 계산한 책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요즘 남고생답지 않게 독서가 취미인 쿠로코는 매일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신간을 구경하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특히 오늘같이 마음에 드는 책을 샀을 때는,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서점을 빠져나온 그가 다음으로 향하는 곳은 집이 아니었다. 그는 늘 책을 산 날은 서점 근처 놀이터에 앉아 구매한 책을 조금 읽고 가곤 했다. 본래 책이란 조용한 장소에서 읽어야 집중이 잘 되는 법이었지만, 그는 놀이터 벤치의 햇살과 온기를 좋아했다. 햇볕아래에선, 그 어떤 책도 숭고해 보였으니까.

오늘도 아이들로 시끄러운 놀이터에 발을 디딘 쿠로코는 비어있는 벤치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꺼냈다. 오늘 사온 책은 두 권. 한권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최근 잘 팔리는 에세이집이었다. 우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읽기로 한 그는 에세이집을 가방위에 올려두고 소설책의 표지를 열었다.

 

"야! 똑바로 안 해?"

 

아직은 앳된 목소리가 외치는 말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시선을 들어 확인해보니, 모래사장 쪽에서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애 한명이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말리는 편이 좋을까. 잠시 고민한 쿠로코였지만 아이들 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아니다 싶어 그는 도로 책에 집중했다.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책장이 몇 번이나 넘어갔지만 모래사장의 소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늘은 글렀군,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 작게 혀를 찬 쿠로코가 결국 책을 덮은 순간 날카로운 아픔이 그의 머리에 부딪혔다.

 

"윽"

 

다행이 피는 나지 않았지만, 부어오른 혹을 잡고 고개를 든 그는 모래사장서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분명 아이들을 괴롭히던 그 소년이었다. 제 발밑으로 툭 떨어진 돌을 보고 감히 추측하건데, 저 소년은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려고 했으나 실수를 하여 자신의 머리를 맞춘 것이라고 쿠로코는 생각했다.

책 두 권을 가방 안에 챙겨 넣은 그는 아무 말 없이 모래사장으로 다가갔다. 괴롭힘 당하던 아이들은 이때를 노린 것인지 다들 도망간 후였고, 괴롭히던 소년만이 어색한 표정으로 쿠로코를 보고 있었다.

 

“사람에게 돌을 던지면 안 된다는 건 학교에서 배우지 않습니까?”

 

자신보다 한참 어린 소년에게 존댓말을 하며 시선을 맞추는 그는 다른 사람이 보면 ‘상냥하게 충고하는 착한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보일지 몰랐지만, 정작 눈이 마주친 소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차가운 쿠로코의 눈빛을 보느니, 차라리 욕을 먹는 쪽이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자, 잘 못했어요”

“하이자키 쇼고”

“네?”

“하이자키 쇼고 라는 이름 입니까?”

 

쿠로코는 소년이 매고 있는 가방의 이름표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름을 불리자 정말로 혼나는 기분이 든 걸까. 하이자키는 시선을 푹 숙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어떻게 혼내야 할지 고민하는 듯, 쿠로코는 위축된 하이자키를 위 아래로 훑어보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단순히 아이들끼리의 싸움이었으면 자신이 이렇게 혼낼 일도 없었겠지만, 불행히도 소년은 자신을 건드렸다. 순해 보이는 인상의 쿠로코였지만, 맞고도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을 만큼 성인군자는 되지 못했다.

 

“내일 오후 6시”

“네?”

“내일 오후 6시에 여기로 다시 나오십시오. 안 그러면 방금 제가 본걸 여기저기 이야기 하고 다닐 거니까요. 이 근처의 초등학교라면 어딘지 뻔하고, 이지메 가해자 딱지가 그 나이부터 붙으면 곤란하겠죠? 하이자키 쇼고군”

 

생긋 웃으며 하이자키의 머리를 꾹 누른 그는 겁먹은 소년의 눈을 보고 속삭였다.

 

“걱정 마세요, 난 혼자 나올 거니까. 우르르 몰고나와 때리거나 하지 않을 거니 꼭 나오십시오. 알겠죠?”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쿠로코는 공원을 떠났다.

다음날, 쿠로코가 6시 10분 전에 공원에 도착하자 하이자키는 이미 도착해있었다. 늦으면 더 혼날 것이란 것을 어린 그도 알고 있었던 걸까. 쿠로코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하는 하이자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일찍 오다니, 생각보다 성실하네요. 어린 애들한테 돌이나 던지는 것 치고는 말이죠”

“그, 잘 못했어요”

“그렇습니까. 우선 이것 마시고 긴장 푸세요. 덜덜 떠는 거 다 보이니까요”

 

쿠로코가 가방에서 꺼내 내민 것은 물이었다. 미지근한 물을 받아든 하이자키는 처음엔 이게 뭔가 경계를 했지만 살짝 뚜껑을 열어 맛을 보자, 아무 이상도 없는 것 같아 의심도 않고 꿀꺽꿀꺽 받아든 물을 마셨다.

 

“다 마시세요”

 

어린 아이가 마시기에는 제법 많은 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쿠로코는 물병의 끝을 기울여 하이자키가 물을 다 마실 때 까지 물병을 내려놓지 않게 했다. 배가 불러와서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거슬렀다간 좋은 꼴을 보지 못함을 알고 있는 하이자키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전부 마시고 나서야 입을 뗄 수 있었다.

 

“다 마셨어?”

 

쿠로코의 질문에 하이자키는 빈 물병을 내밀었다. 텅텅 빈 물병을 확인한 쿠로코는 그제야 물병을 도로 가져가더니 하이자키를 공원의 철봉으로 끌고 갔다.

 

“뭐, 뭐하는 거예요 형!”

“벌을 조금 줄 겁니다. 잘못 했으니 벌을 받아야죠?”

 

벌이라는 단어에 하이자키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역시 때리는 걸까, 아니면 설교를 늘어놓을까. 무섭긴 했지만 사고뭉치 하이자키에게 체벌이란 익숙한 것이었다. 익숙하다고 공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낮선 것 보단 나았다.

그런데 생각도 못한 체벌방법에, 하이자키는 당황하고 말았다.

 

“읏챠”

 

하이자키를 번쩍 들어 올린 쿠로코는 하이자키를 철봉에 강제로 매달았다.

 

“벌 줄 거라고 했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거 참 시끄러운 애새끼네요”

 

방긋 웃으며 하이자키의 입을 막은 쿠로코는 물로 빵빵해진 하이자키의 배를 눌렀다.

 

“욱!”

“언제부터 그렇게 말썽쟁이였습니까? 하이자키군은”

“자, 잠깐, 배는”

“윗사람이 말하면 대답을 해야죠?”

 

꾹꾹. 마치 푹신한 쿠션 같은 어린아이 배의 감촉은 쿠로코에게는 기분 좋았지만 당하는 하이자키에겐 고통스러운 압박이었다. 미지근한 물로 가득찬 배가, 금방이라도 커질 것 같은 괴로움에 하이자키는 거칠게 반항했다.

 

“놔! 이, 이거 놔!”

“반말하지 마세요”

“놔라니까!!”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반말을 하는 하이자키는 필사적으로 철봉에서 내려오려고 했지만, 자신보다 훨씬 큰 고등학생의 힘을 이겨낼 순 없었다. 한손으론 하이자키의 다리를 잡고, 한손으론 배를 매만지며 쿠로코는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이지메 하는 건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듣고 있나요 하이자키군? 괴롭나요? 너에게 괴롭힘 당한 그 아이들도 이런 고통을 겪었을 거라고요”

“자, 잘못, 잘못했…”

“잘 안들리는데요”

“잘못했습…”

 

우욱. 배에 느껴지는 압박에 결국 하이자키는 마신 물을 모두 토해내고 말았다. 주르륵 쏟아진 토사물은 대부분 땅으로 직행했지만, 하이자키의 옷에도 제법 튀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옷이 더러워졌네요?”

 

그제야 하이자키를 철봉에서 내려준 쿠로코는 투명한 토사물로 젖은 하이자키의 옷을 보았다. 그 모습이 조금 불쌍해 보였는지, 쿠로코는 손수건으로 하이자키의 옷을 닦아주고 귀에 속삭였다.

 

“어디 가서 이 일에 대해 말하면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알겠죠?”

“ㄴ, 네”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진이라도 찍어둘까요?”

 

제 멋대로 결정한 쿠로코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하이자키와 찰싹 달라붙어 사진을 찍었다. 찍힌 사진에는 울기 직전인 하이자키와, 즐겁게 웃고 있는 쿠로코가 있었다.

 

“잘 나왔네요. 그럼, 나쁘게 살지 마세요, 하이자키군”

 

방금 전까지의 체벌과는 다르게, 따뜻한 손길로 하이자키를 쓰다듬은 쿠로코는 먼저 공원을 빠져나갔다. 돌아가는 길, 쿠로코는 방금 전 찍은 사진을 핸드폰 배경으로 저장하고 빙긋 웃었다.

‘좀 지나쳤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나쁘지 않았던 기분에 쿠로코는 후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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