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 이 구역 블래공 연성러는 나야 (아리 톤)
쓰라는 장문은 안 쓰고 또 조각글
사용한 연성 키워드는 이것들
01. 블래데페
그가 죽었다.
병사가 전해준 비보를 듣고도 블래스터는 아무 표정도 지어보이지 않았다. 슬퍼하지도, 아쉬워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무표정. 수많은 동료의 죽음을 경험한 그가 언제나 지어보이던 무표정은, 애인의 죽음에도 똑같았다.
“아무래도 카르텔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것 같습니다. 무법지대에 있는 황도로 향하는 해상열차 역에서…”
“지금 어디 있는데?”
그가 묻는 것은 아마도 시체의 위치일 것이다. 병사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그… 시신의 훼손이 심해 수습하지 못하고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말을 마치지 못한 병사는 흐르는 식은땀을 닦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저것은 미안함의 표시일까, 아니면 처참하게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그를 본 공포의 표출일까. 어느 쪽이든 블래스터는 그를 이해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블래스터는 중화기를 둘러메고 고개를 까딱였다.
“안내해”
“네…”
병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블래스터의 앞을 걸어갔다. 뒤에서 들리는 블래스터의 발자국 소리가 무거웠다. 어째서 자신은 제 3자일뿐인데도, 상관의 슬픔이 이렇게나 저릿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무 표정도, 아무 통곡도 하지 않는데도. 그는 블래스터가 마음속 깊이 절망하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루프트 하펜으로 와, 무법지대로 향하는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도 블래스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은 그저 허공에 두고, 입을 꾹 다문 그는 무법지대에 도착하고 나서야 감정의 동요를 보였다.
“데스페라도”
상태가 나쁜 시체에, 조용히 말을 거는 블래스터의 목소리가 떨렸다. 검게 굳은 피로 더러워진 은발,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구분하기 힘든 몸, 그리고 서서히 부패되어가는 피부까지. 살아있을 때의 모습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의 눈에는 데스페라도가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시신을 안아든 블래스터는 소리죽여 울었다.
“블래스터…”
부하는 가늘게 떨리는 그의 넓은 등을 향해 말을 던졌지만, 이미 블래스터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난감해 하던 부하는 다시 한 번 용기 내어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시신을 수습해 황도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잠깐만…”
겨우 울음을 삼키며 입을 연 블래스터의 목소리가 애처로웠다.
“잠깐만… 아주 잠깐만… 이러고 있게 해 줘”
부하는 간절한 그 부탁에 결국 두 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블래스터는 입술을 알아 볼 수 없는 데스페라도의 얼굴에 키스하며 중얼거렸다. 잠깐만, 아주 잠깐만 이러고 있을 테니 용서해 달라고. 끝없이, 끝나지 않을 듯이, 그는 중얼거렸다.
02. 블래제널
“결국 이렇게 될 거였다면, 조금 더 일찍 죽는 게 좋았을 거야”
농담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블래스터는 웃었다. 퇴로가 막힌 전선, 몰려들어오는 적군의 수는 줄지도 않았다. 최전방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별 감흥도 없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최후방인 이곳마저 적의 탄환이 빗발치고 있었다. 중화기는 이미 부서졌고, 총에 맞은 곳도 한두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블래스터는 웃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울 것 같은 제너럴을 위해.
“너는 아직 어리니까, 죽는 게 더 아쉬워”
“본인의 죽음 보다 제 죽음을 걱정하다니. 블래스터는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다”
독설을 하는 제너럴은 저격당해 피를 흘리는 제 왼팔을 끌어안았다. 팔을 맞은 것 정도로 죽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몰려오는 적군을 봐서는 분명 자신들은 죽을 것이었다.
“군인이니까, 언제든지 죽을 각오는 되어 있었습니다”
다짐을 이야기 하는 목소리는 올곧았다. 진심이라는 뜻이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블래스터를 슬프게 했다. 무엇이 이 어린 청년에게 죽음을 각오하게 만든 것일까. 전쟁 그 자체일까, 아니면 황도군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은 피에 젖어 본래의 색을 잃은 저 군복 때문일까.
“내일 아침밥은 못 먹겠네!”
“태평하네요, 엄청”
“죽을 때마저 초초해 하고 싶지 않아”
전장에선 언제나 초초했던 그들이었으니까, 제너럴은 블래스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이젠 끝이었다. 차라리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제너럴도 조금 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겁먹지 마, 제너럴”
“겁먹은 적 없습니다”
“끝까지 장군님 자존심 세울 필요 없어”
떨리는 제너럴의 손을 잡은 블래스터는 여유롭게 웃어보였다.
“내가 손잡아 줄 테니까. 무서워하지 마”
능숙한 위로에 제너럴은 서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몇 번 입을 뻐끔거리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그는 푹 고개를 숙였다.
03. 블래마이
“나, 지젤이 젊었을 때를 보고 왔어”
충격적인 소식에 마이스터는 조립하던 메카마저 놓쳐버리고 고개를 돌렸다.
“진짜?”
“그래, 시간의 문을 건너서 말이야”
“그 빌어먹을 영감, 죽여 버리지 그랬어?”
진심을 담은 경멸, 마이스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같은 마이스터이자 천계인으로서 지젤은 확실히 공공의 적이 아닐 수 없었다. 단순한 질투심으로 인해 황도를 버리고 카르텔에 붙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그를 마이스터는 진심으로 혐오했다.
잔뜩 구겨진 마이스터의 표정을 본 블래스터는 피식 웃더니 굴곡진 그의 미간을 꾹 눌렀다.
“죽였지”
“그래?”
“어차피, 시간의 틈이라 지금의 지젤이 죽은 건 아니지만”
“그건 그렇지만, 적어도 속은 시원하네!”
떨어뜨린 메카를 도로 주워 든 마이스터는 십자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이다가 문득 중요한 사실이 떠올라 고개를 들었다.
“잠깐, 왜 혼자 간 거야?! 같이 갔어야지!”
“왜? 내가 위험해 질까 걱정 되는 거야?”
“그런 것도 있고, 나도 그 시간의 문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다고! 연구 가치가 있어, 그건”
마이스터는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었다. 한번 호기심이 생긴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냈으며, 개발하기로 한 것은 몇 년의 시간을 들여서라도 완성했다. 그런 그의 최근 가장 큰 관심사는 시란과 그가 여는 시간의 틈이었고, 그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도 타임머신과 비슷한 물건이었다.
“으음, 데려가려고 했는데. 네가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그냥 지켜 볼 수 밖에 없더라고”
“아”
어제 잠시 철야 중 잠들었었는데, 그때 들렀던 거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마이스터는 자책하며 제 머리를 긁적였다. 평소에는 철야 중에 자라고 해도 자지 않는 자신이, 어쩌다 한번 쪽잠을 잤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지만, 가장 먼저 앞서는 감정은 아쉬움 이었다.
“나도 아쉽긴 마찬가지였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응?”
“네 귀여운 자는 얼굴을 두고 던전을 가야했다니, 아아, 지금 생각해도 불쌍한 과거의 나”
장난스럽게 한숨을 쉬며 마이스터의 등에 기댄 블래스터는 새빨개진 마이스터의 얼굴을 보고 웃었다. ‘뭐라는 거야’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린 마이스터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일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