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derosa

01

written by Esoruen

 

 

이 세상에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었다.

블래스터는 처음엔 그 말을 이해 할 수 없었지만, 겐트에 와 베릭트를 만난 후, 그 말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카르텔 출신이었지만 지금은 카르텔을 나와 겐트에 머무르는 그는, 아직 황도군에서도 꺼림칙한 존재였고 카르텔에 있어서는 엄청난 배신자였다. 양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상, 초조해지거나 불안하기 마련일 텐데 베릭트는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블래스터의 눈엔 그가 자유롭고, 여유로워 보였다.

황도군은 베릭트를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쫒아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가 주는 카르텔에 대한 정보나 조언을 받아가며 그를 이용했다.

 

“블래스터, 잠시 이리로”

 

젤딘은 군사들과 작전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블래스터를 불러 세웠다. 최근 지젤이 도망간 이후, 할트산의 패잔병들을 처리한 이후 도통 움직임이 없던 군이 드디어 움직이려는 것 같아 그는 기쁘기도 했지만, 그녀가 자신을 부를 때는 보통 영 까다로운 부탁들만 했던 탓에 블래스터는 마냥 웃음이 나오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베릭트에게 가서 무법지대에서 가장 카르텔의 세력이 약한 곳이 어딘지 알아봐 주겠어요? 아무래도 해상열차를 움직일 수 있을 거 같아서, 직접 놈들의 본거지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역시나 까다로운 부탁. 블래스터는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베릭트와 이야기 하는 것은 블래스터의 일이었다. 그것은 편견이 없고 사람 좋은 그가 베릭트를 차별하지 않는 것과, 다른 황도군들 중 그 누구도 베릭트에게 함부로 말을 걸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지금은 황도군의 편에 서있는 그라고 해도, 일단은 무법지대에선 전설이었던 베릭트를 무서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블래스터도 물론 베릭트가 무서웠지만, 알고 보면 훨씬 좋은 남자임을 알고 있었기에 두려움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겐트의 입구 근처, 언제나 혼자 앉아있는 베릭트에게 다가간 블래스터는 친근하게 그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베릭트씨, 안녕하세요?”

“응? 아아, 자네인가”

 

베릭트는 중후하게 늙은 얼굴로 웃어보였다. 저런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저 옆집 마음씨 좋은 영감님 같았지만, 그의 실상을 아는 블래스터로선 저 온화한 얼굴이 친근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물으러 온 거지?”

“…귀신이네요”

“젤딘이랑 이야기 하는걸 보았으니까. 아마 카르텔에 관한 일이겠지?”

 

서론을 이야기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은 환영할 일이었지만, 마치 머릿속을 그대로 읽힌 것 같은 이 상황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블래스터는 소리 없는 한숨을 쉬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경청하던 베릭트는 껄껄 웃더니,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하하, 글쎄. 지금 카르텔은 내 시절과 많이 바뀌어서 말이지. 세력이 약한 곳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조직화 된 이상 그런 곳이 없을 것 같다는 게 내 의견 이다만”

“그런가요?”

 

역시 베릭트라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살짝 실망하긴 했지만, 블래스터는 뭐라도 얻어가겠다는 생각을 접진 않았다.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베릭트 대신 담배 끝에 라이터를 가져가 불을 켜 준 블래스터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반대로 카르텔의 요충지가 있다면 어딜까요?”

 

성냥을 꺼내려던 베릭트는 발 빠른 블래스터의 행동에 못 이기겠다는 듯 입 꼬리를 올렸다. 깊게 불이 붙은 담배를 빨아들인 베릭트는, 니코틴으로 머릿속이 정리 된 후에야 입을 열었다.

 

“헤이즈”

“네?”

“안개도시 헤이즈. 거기라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름 꽤나 하던 놈들이 바글바글했지. 아마 지금도 가면, 카르텔 간부 한 두 놈쯤은 잡을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언제나”

 

정중한 블래스터에 인사에 베릭트는 얼른 가보라는 듯 손을 휘젓다가, 무언가가 생각난 듯 흔들던 손을 거두었다.

 

“아 맞아”

“네?”

“황도군은 무법지대의 지리, 전혀 모르지 않나?”

 

확실히 황도군이 아는 무법지대의 지리는 지도로 습득한 아주 기초적인 지리뿐이었다. 구체적인 길이나 마을의 규모, 그리고 위험요소에 대한 지식은 전무. 전투를 벌이기에는 여의치 않을 정도로 적었다.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그럼 내가 내 친구를 한명 보내주지. 나는 바빠서 무법지대까진 움직이지 못하니까. 그가 안내해 줄 거야”

 

베릭트의 과잉친절에 블래스터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나 황도군에 호의적이긴 했지만, 이렇게 까지 도움을 준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어지간히도 지금 카르텔이 못마땅하나 보네’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삼킨 블래스터가 환하게 웃었다.

 

“저희야 그럼 감사하죠!”

“그럼 언제 출정할 건지 젤딘과 이야기하고 내게 전해주게”

“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베릭트의 친구라면 역시 같은 무법지대 출신 인걸까. 지금의 그와도 친하다는 것은 일단 카르텔은 아니라는 의미겠지만, 블래스터는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나이는 너무 많지 않아야 전투에 짐이 되지 않을 텐데. 성격이 더러우면 안 될 텐데. 자잘한 고민을 한 그는 ‘어떻게든 되겠지’ 라며 젤딘에게 가서 베릭트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젤딘은 대놓고 그의 호의를 꺼림칙해 했지만, 말 그대로 좋은 기회였기에 거절하지는 않았다. 지형도 모르는 전투 보다는, 조금 찝찝하더라도 베릭트가 말하는 친구라는 사람의 안내를 따르는 편이 나았으니까. 그리고 상대는 한명, 허튼 수를 부리면 수 백, 수천 명의 황도군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그럼, 출정은 3일 뒤 아침으로 하죠. 그렇게 전해주세요”

“어디로 나오라고 할까요?”

“뭐, 해상열차에서 합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요? 어차피 전 겐트를 지킬 거고, 무법지대로 가는 건 당신이 될 테니 블래스터 마음대로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3일 뒤 보지요”

 

블래스터는 그길로 베릭트에게 결정된 사항을 알려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요 며칠간은 전투가 없어 한가했지만, 내일부터는 무법지대로 갈 군사들과 물자들을 챙겨야 하니 다시 바빠질 것이었다. 다른 병사라면 질색을 했겠지만, 블래스터는 바쁜 것이 싫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잡생각이 들었으니까.

 

 

 

헤이즈로 가는 그 날의 아침은, 유래가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깔려었다. 병사들은 별로 좋지 않은 조짐 아니냐며 수근 거렸지만, 블래스터는 태연하게 ‘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죽으면 다 똑같이 보여’ 라며 병사들의 말에 일침을 가했다.

베릭트의 친구라는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인지, 주변에 수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블래스터, 출발예정시간 10분 전입니다”

“알아”

“역시, 안 오는 걸까요?”

 

병사는 불안해 보이는 얼굴로 물었다. 블래스터는 그럴 리가 없다며 애써 웃어보였지만, 사실 자신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베릭트와 자신은 친하긴 했지만, 친한 것과 신뢰는 다른 문제. 그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블래스터는 베릭트를 완전히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다. 굳이 멋없이 설명하자면 불신 반, 신뢰 반 정도일까.

 

“이봐”

 

그때, 안개 너머에서 낮선 얼굴이 다가왔다.

 

“그쪽이 블래스터인가?”

 

금방이라도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인상을 구긴 남자는 블래스터를 향해 물었다. 블래스터의 또래 정도로 보이는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잘근잘근 씹다가 바닥에 뱉었다. 무례한 태도이긴 했지만, 병사도 블래스터도 함부로 그의 행동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누구?”

“베릭트가 보내서 왔어.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지휘하는 군이라니. 황도군도 많이 변했군. 말세야”

 

영감님 같은 말을 늘어놓으며 남자는 비뚤어진 페도라를 고쳐 썼다. 블래스터는 제가 생각한 안내인과 전혀 다른 그의 모습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동자를 위 아래로 굴렸다.

아무리 봐도 자신 또래로 보인다.

동안이라 나이가 많다고 해도, 자신보고 ‘새파랗게 어리다’라고 할 정도로 나이가 많을 걸론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황당함을 애써 감춘 블래스터는 병사에게 귓속말로 해상열차에 모두를 실어라는 명령을 내린 후 대화를 이어갔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름이?”

“데스페라도라고 불러. 얼른 가자고.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말이야 젊은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그렇게 말한 데스페라도는 블래스터를 지나쳐 해상열차로 향했다.

‘지금 나랑 농담하자는 건가?’ 젊은이라는 부름에 블래스터가 생각한 것은 이 말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저쪽도 젊은데. 자신을 우습게 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렇게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 베릭트랑 친구라니. 베릭트는 생각보다 성격이 더 관대할지 모른다는 이상한 결론까지 도출해낸 블래스터는 일단 시간에 맞추기 위해 의문을 접어두고 해상열차에 올랐다.

 

 

+

 

 

 

진단 메이커 기반 글 입니다.

하이랜더 증후군은 현실엔 없는 가상의 증후군입니다. 마치 카잔 증후군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