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은 If 설정 기반입니다. 거부감이 있으신분은 주의해주세요.
Bitter candy
03
written by Esoruen
무릎의 상처는 3일이 지나자 눌러도 별로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아물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딱지가 떨어지고, 도로 깨끗한 무릎으로 돌아갈 것이다. 예전 같으면 회복은 분명 기뻐할 일인데 어째서인지 지금의 하야마는 전혀 기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게 다 미야지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왜 하필 그는 양호선생일까. 아프지 않고 자연스럽게 양호실을 찾아갈 방법은 없을까. 아무 이유도 없이 찾아간다면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요즘 우울해 보이네, 코타로"
"응?"
수업시작 전 멍하니 창밖을 보는 하야마에게 말을 건 것은 미부치였다. 미부치와는 같은 반인데다가 눈치가 빨라서, 그는 늘 무언가를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숨길 수는 없지만, 말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절대로. 제 입으로 이런 간지러운 감정을 말할 정도로 하야마는 사랑에 익숙하지 않았다.
"다쳐서 그런 거야 다쳐서!"
"엄살은? 그 정도로 네가 아프다고 우울해 할리 없잖아"
입을 비죽 내민 미부치는 수상하다는 듯 하야마를 위 아래로 훑어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밝기만 한 것보단, 제 나이답게 사색에 잠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미부치의 생각은 그러했다.
"뭐 너무 축 쳐지진 마, 걱정되니까"
"하하 레오누님은 진짜 누나 같다니까! 그래서 좋지만!"
"얘는 낯간지럽게"
칭찬이 싫지 않은지 미부치는 여학생처럼 쿡쿡 웃곤 제 자리로 돌아갔다. 좋다는 이 말을 미부치에겐 이리도 가볍게 말 할 수 있는데 어째서 미야지에겐 찾아가기 조차 망설이는 걸까, 다시 머리가 복잡하진 하야마는 머리를 헝클였다. 두통이라도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통제라도 받으러 가 말 한마디라도 나누고 온다면 답답함이 풀릴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제 몸은 튼튼한 것인가 원망스러웠다.
소란스러운 교실이 잠잠해 지고 나서야 그는 수업이 시작되었음을 눈치 챘다. 일단은 수업을 듣자, 그리고 잠시라도 머릿속에서 양호선생의 생각을 지우자. 그리 마음먹고 하야마는 교과서를 폈다.
눈을 떴을 때는 교실은 다시 소란스러웠다. 자신이 존 것을 안 것도 지금이었다. 아무리 수학 수업이 지루하다고 해도 스스로 인식도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잠들다니. 하야마는 황당함에 웃으며 허리를 폈다. 뚜둑, 뼈마디가 내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학이란 건 정말 누가 만든 학문인지 원망스러웠다. 애초에 자기는 체육 특기생으로 갈 생각이니 공부는 대충 해도 됐지만, 잔소리를 하는 팀메이트에 적당히 성적이 나올 정도로 공부는 하고 있었다.
둘러보니 미부치는 어디 간 것인지 자리에 없었다. 아마도 1학년 교실로 제 주장을 만나러 간 것이거나 다른 반의 팀메이트를 만나러 간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 자신도 미야지가 보고 싶어졌다.
'몰래 보고 오는 건 괜찮지 않을까?'
발소리를 죽이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다. 오늘도 졸고 있다면 더 간단한 일일 것이다. 길게 고민하지 않고 그는 교실을 뛰쳐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어느 때 보다도 경쾌했다. 양호실이 있는 복도에 왔을 때는 얼굴에 흥분이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올라 있었다.
양호실의 문 앞에는 익숙한 사람이 서있었다. 미야지, 미야지 키요시. 제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양호선생님.
다만 그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이었다.
"늘 감사합니다, 선생님"
"뭘, 아프지 좀 마라 넌, 내 단골이냐?"
어느 때와는 다른 미야지의 말투와 미소에 하야마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렸다.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은 전에 자신이 뛰쳐나왔을 때 양호실로 들어간 안색 나쁜 소녀. 두 사람은 오래 알고 지낸 듯 기분 좋은 얼굴로 사이좋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질투를 느끼기도 전 느껴진 것은 절망감. 자신도 저렇게 가까워 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야마에게 미야지는 너무나도 먼 존재였다. 닿으면 도망갈까 멀리 있으면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질까 불안한 사람을, 저 여자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있다.
“그럼, 전 가볼게요 선생님”
“얼른 들어가, 수업 시작한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여학생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본 하야마는 도망치듯 내려온 계단을 도로 뛰어올라갔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누군가를 이렇게 밉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이 양호선생을 향한 감정인지 저 여학생에 대한 감정인지를 그는 알 수 없었다.
“…있지 코타로, 너 정말 무슨 일 있지?!”
양호실을 갔다 온 이후 책상에 엎드려 일어나질 않는 하야마가 걱정되어 미치겠다는 듯, 미부치는 그 옆에 앉아 계속 말을 걸었다. 물론 하야마는 고개를 들지도 듣는 척도 하지 않았지만, 이런 그를 처음 보는 미부치로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코타로, 코타로!”
“나 괜찮으니까 가 레오누님”
“그러니까 안 괜찮아 보인데도!”
미부치는 발끈해서 그대로 쉬는 시간 동안 쭉 훈계를 해버렸지만 그래도 하야마는 그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의지고, 어떻게 보면 참으로 끈질긴 행동이었다. 결국 세 번의 쉬는 시간을 통한 설득을 포기한 미부치는 ‘그래도 연습은 나와’ 라는 한마디만을 하고 제 자리로 영원히 돌아가 버렸다.
정규 수업이 다 끝나고 부 활동을 가야 할 시간이었지만 하야마의 몸은 움직이질 않았다. 미부치는 네부야와 함께 먼저 체육관으로 가버렸고, 교실은 주번들 밖에 없었다. 주번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었으니 일단 가방을 챙겨들고 계단을 내려갔지만, 머릿속이 멍해 지금 자기가 어디로 걸어가는지 조차 애매모호하기만 했다.
그런데.
“!”
텅 빈 계단 앞. 어디서 본 여학생이, 혼자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 여자다. 하야마는 금방 눈치 채고 말았다. 미야지와 다정히 이야기 하던, 그 여학생이었다. 속이 메스꺼워진 하야마는 그대로 발을 멈추고 증오스러운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화가 났다. 짜증이 났다. 눈앞의 저 아이를, 저 아이를 없애고 싶다는 그 생각만이 흐리멍덩하던 뇌 속에서 난동을 부렸다.
소리를 죽여 한발 한발, 그 여학생의 뒤로 따라 내려간 하야마는, 자신도 모르게 그 등으로 손을 뻗었다.
“꺄악!”
우당탕.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여학생의 몸은 계단 아래로 볼품없이 굴러 떨어졌다. 꽤 높은 곳에서 굴러 떨어진 탓인지 소녀는 꿈틀거리며 계속 누워있을 뿐, 일어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한 일에 제자신이 놀란 하야마는 발소리를 죽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소녀를 지나쳐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1층에 도착해서야 멈춘 그는 가쁜 숨을 고르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방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여자아이는 괜찮을까. 그런 생각보다 가장 먼저 든 것은 다름 아닌 ‘성취감’
“안 일어나도 좋을 텐데”
독한 말이라는 생각도 없었다. 정말로 진심이었으니까. 이 학교에서 그 여학생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그는 바라고 있었다. 아무도 제가 사랑하는 미야지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아니면 적어도 그보다 친한 사람이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어처구니없는 이런 욕구조차도, 하야마에겐 공포가 경외감이 아닌 신비로 느껴졌다. 이것이 진짜 독점욕인가, 사랑이란 이런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노랫말에서나 들어온 사랑은 모두 질릴 정도로 달콤했는데, 왜 자신은 그렇지 못하단 말인가.
숨을 다 고른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신발장으로 갔다. 위층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그는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
- 말 했습니다 전, 이건 달달물이 아니라고요 (도주한다)
- 3편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4편은 더 늦어질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지만요..
- 오늘 일찍 강의를 마쳐준 교수님께 리스펙트, 덕분에 업뎃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