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곽 AU 설정입니다

 

 

 

修羅

03

written by Esoruen

 

 

 

미야지는 방금 완성한 비녀를 곱게 포장하고 가게를 나섰다. 아직 밤이 오지 않아 비교적 한가한 요시와라의 거리는, 유녀들이나 손님들 대신 어린 아이들이나 주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어차피 이곳에 사는 주민인 이상, 매춘과 조금이라도 얽히지 않은 사람은 그야말로 극소수였지만 미야지는 그들이 더럽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었다. 그런 논리라면, 자신도 더러운 사람이 될 테니까.

애초에, 매춘이 꼭 더러운 것일까.

이 세상에 모든 ‘파는 것’들은 수요가 있으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법. 파는 것이 더러운 무언가라면, 사는 사람도 더럽다는 뜻이 될 텐데, 가끔 그걸 모르고 ‘아무리 그래도 유녀들은 더럽다’며 삿대질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미야지는 코웃음을 쳤다. 그런 자신들도 그 유녀들을 사기 위해 왔으면서, 무슨 소릴 하는 걸까― 하고 말이다.

 

“실례합니다”

 

비녀의 주인을 찾아 온 그는 굳게 닫혀있는 가게 문을 두드렸다. 요시와라에서 가장 크고 잘나가는 이 가게는, 얼마 후 시집가는 오이란 때문에 낮인데도 꽤 분주해 보였다.

닫힌 문을 연 것은 가게의 하인이었다. 작은 키에, 어린 나이의 그 하인은, 삼백안을 껌빡이며 미야지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누구세요?”

“주인어른을 만나고 싶은데. 비녀 가게에서 왔어”

“네, 네!”

 

말을 심하게 더듬는 그 하인은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란 듯 손짓했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하인 치고는, 참으로 숫기가 없다고 미야지는 생각했다. 시끌시끌한 가게 안은 카무로들과 유녀들로 시끄러웠지만, 정작 혼례의 주인공인 오이란은 보이지 않았다.

하인을 따라 주인의 방까지 도착한 미야지는 품속의 비녀를 꺼내고 미닫이문을 열었다. 주인어른은 혼자 장기를 두고 있다가 미야지를 보곤 활짝 웃어보였다.

 

“아이고, 이게 누군가!”

“안녕하세요, 어르신”

“그래. 벌써 작업이 끝난 건가?”

 

구석의 방석을 끌어 미야지를 앉게 한 주인 어른은 장기판을 구석으로 밀어놓으려 하며 말을 붙였다. 미야지는 굳이 자신 때문에 주인어른의 유희가 중단되는 것을 원치 않는지, 장기판을 미는 주인의 손을 저지하며 비녀를 내밀었다.

 

“여기, 완성했습니다”

“호오, 어디 보자”

 

의뢰인이 물건을 처음 감상할 때. 이 순간, 미야지는 언제나 떨리고 숨이 막혔다. 그건 그가 처음 비녀를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 여부와 관계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제 상품이 당사자에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일 뿐. 그래서 미야지는 이렇게나 실력이 좋다는 소릴 듣는 지금도, 처음 제 비녀의 완성작을 보는 손님 앞에선 긴장하고 말았다.

유녀들도 아마 이런 기분일까. 미야지는 가볍게 추측해 보았다.

그녀들도 자신을 모르는, 혹은 겉만 아는 상대에게 매일 팔아야 하니까.

 

“맙소사”

 

포장을 푼 주인은, 황홀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지었다. 마음에 든다는 대표적인 반응이라, 미야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건 정말 걸작이군. 이 매끈한 모양새와 색과, 장식도 딱 그 아이에게 어울리겠어!”

“타마기쿠야의 오이란하면, 이런 장식이 어울릴 거라 생각했거든요”

 

사실 미야지는 타마기쿠야의 오이란을 본 적은 없었다. 굉장한 미녀라는 소리만 들었을 뿐, 얼굴도 피부색도 목소리도 아무것도 몰랐다. 즉 저 말은 거짓말. 하지만 완전히 거짓말은 아닌 것이, 그 나름 ‘오이란’의 이미지에 맞춰 만 듯 것이었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역시 요시와라에선 자네가 제일인 거 같군”

“과찬입니다. 아직 저희 아버지도 살아계시는걸요?”

“하하, 겸손한건 딱 아버지랑 똑같군!”

 

겸손한 것이 아니었다. 미야지는 정말로, 자신이 아직 아버지 보다는 제 실력이 못하다고 느꼈다. 그는 제 아버지가 만드는 비녀를 동경했다. 화려한 장식 없이도 은은한 색으로 난초 같은 아름다움을 뽐내는, 그런 비녀를 언젠가 자신도 만들겠다고 미야지는 늘 생각해 왔다.

하지만 세상의 반응은 생각과는 달랐다. 그의 아버지의 청초한 비녀를 좋아하는 사람도 물론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미야지가 만든 화려한 비녀를 더 좋아했고 그건 여기 타마기쿠야의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돈은 여기 있네, 다음에 또 보세!”

“다음에 또 뵙죠. 아,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주인어른이 내민 주머니는 묵직했다. 두 손으로 돈을 받아든 미야지는 정중하게 인사하고 가게를 나왔다. 이대로 돌아가서, 또 다른 비녀를 만든다. 이것 까지는 언제 나와 똑같은 일상이지만, 딱 하나 다른 것이 있었다. 이번에 만든 비녀는, 그 무엇보다 신경 써야 한다는 것.

 

‘그거보다 예쁜 비녀를 만들 수 있다면, 사고 싶은데’

 

미야지는 그 건방진 말을 하던 면상을 떠올렸다.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난 철부지 도련님 주제에, 마치 자수성가한 장사꾼 마냥 으스대던 하야마의 얼굴은 몇 번을 떠올려도 얄밉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만약 가게를 물려받게 된다면 주요 고객이 될 사람이니, 차마 막말을 하거나 화를 내진 못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면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가게로 들어가기 전, 텐라쿠야 근처에서 잠시 멈춘 미야지는 문을 뚫을 기세로 가게의 출입문을 노려보았다.

 

‘그 건방진 면상이 주눅들게 해주지’

 

제 나름 각오를 다진 미야지는 가볍게 두 손으로 제 뺨을 치고 아버지가 기다리는 가게로 돌아갔다.

 

 

 

“이게 뭐에요! 도련님!!”

 

하야마는 유녀의 호통에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얌전히 앉아있었다. 보통이라면 능청을 떨거나 ‘그 정도로 화를 내면 얼굴이 쭈글쭈글해 진다’며 약을 올렸을 그가, 이렇게 얌전히 혼나기만 하고 있는 것은 이번 장난은 명백히 그가 도를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하야마는 몸단장 중인 유녀들을 골려먹기 위해 가게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제 장난의 희생양이 될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목욕 후 머리를 새로 올리고 있는 유녀들이었다.

거울을 보며 몸단장에 집중하는 그녀들을 놀리기 위해, 하야마는 언젠가 축제 때 샀던 오니의 탈을 쓰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리고 거울에 비치도록, 저 멀리서 불쑥 나타나 거울을 보는 유녀들을 놀래켜 주었다.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유녀들은 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나타난 새빨간 오니의 얼굴에 자지러지게 소리를 질렀고, 울어버린 유녀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났다면, 하야마는 혼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 놀란 유녀들이 허둥지둥 거리다가 한 유녀의 비녀 장신구가 뚝 부러진 것이었다.

그 유녀는 가게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잘 팔리는 아이’였는데, 기가 세고, 외모가 수려해 하야마네 양친도 아주 아끼는 유녀였다. 그런데 그런 유녀의 비녀가 부러지다니. 하야마로썬 할 말이 없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심한 장난을 치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도 어쩔 수 없었다.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을 어찌 하겠는가. 하야마는 반성하는 것 같지 않은 표정으로 앉아 깊이 반성하고 있었다.

 

“미, 미안해 카요. 응? 내가 일부러 부수려고 한 게 아니니까. 응?”

“안돼요! 이건 주인 어르신께 말할 거니까 그리 알아둬요!”

 

헉. 하야마는 순식간에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다른 장난 같았으면 ‘그 아이가 개구쟁이잖니?’ 라며 자신의 편을 들어줄 부모였지만, 금전적 손해가 얽힌 문제엔 분명 어느정도 꾸짖음이 돌아올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 그러지 말고!! 내가 다른 걸로 하나 사 줄게! 응?”

“…정말요?”

“그래! 어, 대신 시간이 좀 걸려, 대신 그만큼 예쁠 거야. 그동안은 다른 비녀 쓸 수 있지? 어차피 손님들에게 받은 거 많잖아!”

 

하야마의 제안에 카요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물어주시기만 한다면야”

“고마워! 그럼, 난 이만…”

 

멋쩍은 웃음만 남기고 슥 빠져나간 하야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비녀가 필요한 날이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이야. 그는 얼마 전 미야지에게 했던 주문을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그때 비녀를 만들어 보라고 했던 건, 순전 미야지의 비녀가 아름다워서였다. 이런 비녀를 더 보고 싶다, 그런 욕심에 ‘만들어 보라’고 한 것이었지만 막상 미야지가 만들고 자신이 그걸 사도 하야마에게는 그걸 쓸 곳이 없어서 난감했던 참이었다.

 

‘전화위복이란 이런 건가?’

 

최대한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 그는 오늘은 더 이상의 사고를 치지 말자고 다짐하며 제 방으로 돌아갔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가게 일을 도운 후, 날이 밝으면 미야지를 찾아간다. 미래의 일까지 제대로 계획한 그는, 이불도 펴지 않은 맨 바닥에 드러누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