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환

written by Esoruen

 

 

올해 초겨울의 파워스테이션은 유난히도 추웠다. 그것은 무법지대에서 자라온 데스페라도에게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던가, 잠자리가 지나치게 푹신하다던가 하는 사소한 문제와 달랐다. 군사들의 말에 따르면, 작년까지는 난방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 오히려 천계에서 가장 따뜻했던 곳이 파워스테이션이었다고 하지만, 안톤 전이 이후 에너지를 빼앗긴 지금은 난방 같은 것을 할 여유가 없어져 이렇게 추워졌다고 한다.

‘무법지대의 겨울도 춥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담뱃불의 미약한 온기를 느끼며 데스페라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파워스테이션의 매연에 비하면, 그에게 담배연기는 꿀처럼 달콤한 것이었다.

 

“데스페라도”

 

잠깐의 휴식인데도 제너럴은 일을 놓지 않고 있는 건지, 급하게 데스페라도를 찾아오더니 무언가 빼곡히 적힌 서류를 내밀었다. 조밀하게 모인 활자의 뭉치, 그걸 보자마자 데스페라도는 인상을 쓰더니 손을 내저었다.

 

“뭔가 굉장히 길고 복잡해 보이는데 이런 건 황도군 내에서 해결하면 안 되나? 난 도와주러 온 거지 입대하러 온 게 아니거든”

“그러지 말고 읽어두세요. 다 작전에 관한 거니까”

 

작전이라는 말에 데스페라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어차피 전투는 자신 있고, 싸우기 위해 온 데스페라도였지만 이렇게 쉬는데 일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든 싫어하기 마련이었다.

 

“그냥 네가 요약해 줘. 뭔데?”

 

데스페라도의 건방지기까지 한 행동에 제너럴은 화를 내지 않았다. ‘저 사람은 언제나 저런 식이니까’ 제너럴의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하고 납득하면 그만이었다. 이런 걸로 일일이 화를 내기엔, 그는 데스페라도에게 고마운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카르텔 토벌 때부터 자신과 황도군에게 도움을 준 데스페라도는 자신의 은인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내일 아침 발전소로 들어가, 안톤이 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하게 순차적으로 발전기를 파괴할 예정입니다. 이건 그 루트로, 코레 발전소부터 진입할 예정입니다”

“그런가. 거봐, 말로 하니까 훨씬 빨리 전하면서 이런 건 왜 가져와?”

 

검지로 보고서를 툭툭 치며 살짝 웃은 데스페라도는 심각해 보이는 제너럴의 표정에 입가의 미소를 거두었다. 원래 뼛속부터 진지한 인물이긴 했지만, 저렇게 까지 표정을 굳힌 제너럴은 또 오랜만이라 데스페라도는 괜히 불안해져왔다.

 

“표정이 왜 그래? 고민이라도 있나?”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반응은 가볍지 않았다. 제너럴은 아무 대답도 않고 보고서와 데스페라도를 번갈아 보더니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한숨은 새하얀 입김이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지만, 제너럴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이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수색 나갔다가?”

 

제너럴의 고개가 느리게 움직였다.

 

“그래서 그렇게 죽을상이었냐? 죽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너도 슬슬 죽음에 익숙해져야 하잖아. 군에서 몇 년을 썩어놓고 그런 걸로…”

“그런 게 아닙니다”

 

딱 잘라 데스페라도의 말을 자른 제너럴은 보고서를 데스페라도의 품에 던지듯 강제로 떠안기고 설교하듯 말을 이었다.

 

“그만큼 위험한 일이니까 제대로 봐두세요, 제발. 아무리 강한 당신이라도, 모르고 갔다가 죽어서 돌아오면 저는, 어떻게 해라는 겁니까?”

 

초반에는 분명 충고 같은 말투였는데, 말의 끝은 절박한 한탄과 같았다. 잔뜩 인상을 쓴 제너럴의 얼굴에서, 데스페라도는 처음 그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몇 년 전, 전장에서 스쳐지나가듯 처음 만난 제너럴은 감정을 꾹 누르고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있었었다. 괴로울 정도로 억눌린 무표정, 그것이 안타까워 데스페라도는 감정을 어떻게든 표현하게 해주려고 언제나 살벌한 농담으로 제너럴을 웃기려고도 해 보거나, 화나게 만들어 본 적도 있었다.

‘이제는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알구나’

어쩐지 부모라도 된 마냥 뿌듯해진 데스페라도는 푹 숙인 제너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내가 널 어리광쟁이로 만든 기분이군”

“…어린애 취급 하지 마세요”

“애잖아, 아직. 걱정 마. 널 위해서라도 절대 살아 돌아올 테니까. 부하 앞에선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알겠지?”

“절 정말로 뭐로 보는 겁니까? 당연히 다른 사람 앞에선…”

“그거, 내 앞에서만 이런다는 뜻이네?”

 

아. 짧은 탄식과 함께 제너럴의 입이 멈추었다. ‘정답이군?’ 입모양만으로 중얼거린 데스페라도가 얄밉게 웃어보였다. 제너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뒷걸음질만 쳤다. 한 걸음, 두 걸음, 조금씩 거리를 두다가 획 돌아서 가는 제너럴의 걸음은 힘찼다. 아무래도 데스페라도가 자신을 놀린 것 같아 기분이 상한 것 같았지만, 데스페라도는 개의치 않았다.

 

“귀염성 없는 녀석”

 

그런 면이 좋은 거지만 데스페라도는 그렇게 불평했다. 좋든 싫든 보고서를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그는 결국 귀찮단 표정으로 담배를 끄고 종이 위 글자들에 집중했다.

보고서의 중간까지를 읽었을까, 저 멀리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꽤 거리가 있어서 놀랄 만큼 큰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모두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필 소리 정도는 되었기에 데스페라도도 잠시 읽는 것을 멈추고 소리가 들린 발전소 쪽을 보았다.

폭죽 마냥 튀는 불꽃들, 지독한 단백질의 타는 냄새. 죽음의, 냄새들.

 

“그 녀석이 그런 걱정을 할 만한 곳이긴 하나 보군”

 

내일 당장 직면해야 할 위험에 데스페라도는 겁내지 않았다. 오히려 만족스럽단 표정으로 보고서로 다시 눈을 돌릴 뿐이었다. 다만, 아까보다는 더 자세히 보고서를 읽고 머릿속에 내용을 기억해 두었다.

제너럴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방금 더더욱 커져버렸으니까.

 

 

+

 

 

갑자기 엄청 데페제널이 보고싶어서 연성한 단문

사용한 연성 키워드는 이것입니다... 펜치는 결국 못 나왔네요 미안해 펜치야 넌 좋은 공구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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