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녹 웨딩 합작에 제출한 글입니다.
스데키한 합작 링크는 → http://study52.wix.com/chariwedding
honeymoon trouble
written by Esoruen
“…야단났네, 진짜”
타카오는 커다란 분수 앞에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전부 피부가 희고 머리색이 밝은 외국인 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타카오는 신혼여행을 스페인으로 가자고 한 자신을 슬쩍 원망했다.
‘신혼여행은 유럽이 좋다는 것이야’ 미도리마가 한 말을 들은 그는 결혼 몇 달 전부터 유럽의 모든 명승지를 찾아보며 달콤한 신혼여행을 꿈꿔왔다. 사실 결혼도, 두 사람끼리 약식으로 치르는 조촐한 결혼식이었던 만큼 적어도 신혼여행이라도 멋지고 로맨틱하게 보내고 싶었던데 타카오의 바램이었지만…
“어딜 간 거야 진짜!”
그 바램은, 어제 첫 신혼여행 밤 와장창 부서지고 말았다.
첫날 오전까지는 그야말로 완벽한 신혼여행이었다. 아침 일찍 도착한 두 사람은 이곳저곳을 구경한 후, 맛있는 것을 먹고, 호텔 방에서 쉬었다. 문제는 저녁이었다. 갑자기 일 관련 전화가 결려온 미도리마는, 한창 분위기를 잡던 타카오를 두고 방을 나와 전화를 받았었다. 그는 의사니까 바쁠 수도 있다고 생각한 타카오였지만,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법. 전화가 끝나고 온 미도리마에게 타카오는 은근슬쩍 서운한 기색을 비추었다.
“무슨 일이기에 서방님을 두고 나갔다 왔어~”
“누가 서방님이란 것이야. 잠시 양도해둔 수술에 문제가 생겨서, 그래도 어떻게든 해결 되었지만”
“많이 급한 전화였네?”
“당연하지. 사람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니까”
급한 전화라는 걸 다시 한 번 머릿속에 인식하고 나서도 타카오의 서운함은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신혼여행중인데~”
“의사 일이라는 것이 그렇단 것이야. 회사원은 잘 모르겠지”
미도리마는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겠지만, 타카오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설마 그가 타카오를 무시할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지만, 타카오는 그렇게 느끼고 만 것이다.
“그래, 그래. 이런 회사원이랑 결혼해서 별로지?”
“비꼬는 건가?”
“먼저 비꼬았잖아?”
“그런 적 없단 것이야”
로맨틱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이렇게 시작된 말싸움은 지겹게도 30분 가까이 길어졌고, 그 길어진 말싸움 안에서 온갖 서운한 감정이 폭발한 두 사람은 결국 같은 침대에서 잤지만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자는 상황을 벌이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타카오가 깨어났을 때 방 안 어디에도 미도리마는 보이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난 타카오는 일어나자마자 아침도 안 먹고 무작정 호텔 근처를 뒤졌지만, 미도리마는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은 받지도 않았고, 어디로 갔을지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얼른 나와 줘 신쨩…”
기도하듯 중얼거린 타카오는 푹 한숨을 쉬고 머리를 헝클였다.
역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었는데, 미도리마가 자신을 비꼬았다고 생각한 자신이 이상한 거였는데. 이런 후회를 해봐도, 미도리마의 행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외로운 그를 가만두지 않았고, 이윽고 그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내고 말았다.
“타카오?”
그런데, 신은 역시 국적을 초월하는 걸까.
타카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신쨩!!”
“왜 여기 있냐는 것이야. 게다가… 울어?”
“어딜 갔었어?!”
그 문책엔 원망보다도 안도가 가득 차 있었다. 벌떡 일어나 미도리마를 와락 안은 타카오는 본인만큼이나 놀란 미도리마의 볼에 키스를 퍼부었다. 타카오의 애정공세는 익숙했지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부끄러웠던 건지 미도리마는 고개를 피하려 들며 타카오의 물음에 대답했다.
“잠시 근처 슈퍼마켓에… 말이 잘 안통해서 늦었단 것이야”
“아하… 진짜 놀랐잖아!”
“왜? 내가 먼저 돌아갔을까 봐? 난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이 아니다만”
미도리마는 슈퍼마켓 마크가 크게 찍힌 봉투에서 이것저것을 꺼내며 불안해하는 타카오를 달래었다.
“잘은 모르지만, 맛있어 보이는 것들로 골랐으니, 돌아가서 한잔 하자는 것이야”
“아직 아침인데?”
“뭐, 상관없지 않나”
“그건 그렇지”
살짝 미도리마에게 떨어진 타카오는 잠시 고민하다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물었다.
“그럼 말이야 신쨩”
“응?”
“한잔 하고 나서 어제 밤 못 했던 거. 해도 돼?”
아. 낮은 탄식을 내뱉은 미도리마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신혼여행 첫날밤에 하는 것이라면, 게다가 어제 두 사람이 못했던 것이라면…
대답을 망설인 미도리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뱉었다.
“마음대로 하란 것이야”
“야호! 사랑해 신쨩!”
방금까지 죽을상을 지었던 남자가 이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금방 기운을 차린 타카오는 미도리마의 손을 잡고 호텔로 앞서나갔다. 미도리마는 그 손에 이끌러 가면서도 붉어진 얼굴을 들지 않을 뿐 불평이나 불만을 말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