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 2기 엔딩 AU 주의
Red Riding Hood
02
written by Esoruen
갑자기 들이닥친 괴한들에게 둘러싸인 두 사람은, 서로 싸우는 것은 득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무언의 휴전협정을 내렸다. 모모타로의 멱살을 놓은 니토리는 지금 제 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침착하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윌슨이 보낸 사람들인가요?”
윌슨이란 방금 통화한 그 갱의 이름이었다. 들이닥친 네 명의 남자들 중 가장 키가 작은 남자는 눈을 피하지도 않는 니토리를 보고 코웃음을 치더니 대답했다.
“그래. 너한테는 관심 없고, 저 녀석하고 좀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모모타로가 무슨 잘못이라도?”
“어제 우리 패거리에서 말단 녀석 중 한명이 살해당했어”
“그게 저희랑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사실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니토리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행선지도 말하지 않고 외출했던 모모타로는 밤늦게야 귀가했고, 그의 셔츠는 피가 묻어있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모모타로가 수상하다는 것쯤을 알 수 있었지만, 니토리는 모른척하고 싶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모타로의 과오를 덮어주고 싶었다.
“누군가가 저 꼬맹이가 우리 쪽 말단을 죽이는 걸 봤다고 해서 말이야”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네 개의 총구의 끝이 모모타로의 머리를 향했다. 안전장치는 진작 풀려있는 상황,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이 젊은 심부름꾼은 한 번에 죽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칫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이 상황에도, 모모타로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히려 불안해하는 쪽은 옆에 있는 니토리였다.
“거 아무리 급해도 증거도 없이 이러면 안 되죠~”
“증거가 없어도 증인이 있지”
“증인의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죠!”
“닥쳐! 죄가 없다면 우릴 따라와서 직접 보스 앞에서 말해!”
‘이런. 저렇게까지 나올 줄이야’ 니토리는 악화되어가는 상황에 절망했다. ‘너희 같은 건 보스의 얼굴을 볼 수도 없지’ 라며 몇 년이나 계속된 동업관계에서도 웬만하면 보스와는 만나게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이제는 보스 앞에 가서 무죄를 입증하라니.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었지만 니토리에 생각으론 지금은 저 제안을 승낙하는 수밖에 없어보였다.
“죄가 없는데 뭐 하러 내가 아저씨들을 따라가?”
하지만 모모타로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배를 벅벅 긁으며 대놓고 눈앞의 위험을 무시했다.
“어쨌든 돌아가요, 난 아무 죄 없으니까”
“순순히 따라가지 않겠다면, 억지로라도 데려가지”
“거기 너도 같이 가줘야겠어, 인질 겸 증인으로 말이야”
키 작은 남자 옆에서 침묵을 지키던 다른 남자가 니토리에게 말하는 것을 보자, 갑자기 모모타로의 표정이 싹 굳었다. 아무리 그라도, 죄 없는 니토리가 휘말리는 것은 원치 않았던 걸까, 죽어도 안 따라갈 듯 버티던 모모타로는 갑자기 제안을 해왔다.
“아, 알았어요! 따라갈게! 대신 조건이 있어요!”
“하아?”
모모타로는 제 가방에서 리볼버를 꺼내더니 실린더를 한손으로 가리면서 총알 하나를 넣고, 그대로 실린더를 돌렸다. 그리곤 그 총을 제 머리에 겨누고 말했다.
“게임을 하자고요, 이거 많이 봤죠? 영화라던가. 나도 실제로 해보는 건 처음이지만”
“러시안 룰렛?”
황당한 모모타로의 제안에 네 남자는 당황한 듯 서로를 보며 무어라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니토리는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려는 제 후배가 어이가 없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해서,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었다.
“마침 여기 여섯 명이잖아요! 저랑 니토리 선배가 맞으면 그 시체를 끌고 가세요. 대신, 아저씨들 중 한명이 맞으면 순순히 돌아가기. 어때요? 겁나면 머리 말고 다른 곳에 할까요?”
“모, 모모타로?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지?”
“당연하죠, 선배! 자, 어쩔 겁니까? 아저씨들”
너무나도 당당한 모모타로가 수상하긴 했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이 어린애 장난을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살벌한 장난이긴 했지만, 그들에겐 이게 이득이었으니까. 만약 둘 중 한명이 죽는다면 순순히 모모타로를 데려갈 수 있는 것이었고, 자신들 네 명 중 한명이 죽어도 남은 인원은 결국 자신들이 더 많으니 억지로 힘을 써서 데려갈 수 있었다. 심지어 ‘이 녀석이 우리 패거리를 죽였으니 더더욱 데려가야 겠다’는 이유까지 더해서 말이다.
“좋아, 그럼 네가 먼저 쏴라”
“당연히 그래야죠, 그럼 일단 그 총들 좀 치워요! 정정당당하게 가자고요. 정정당당!”
그의 말에 네 남자는 총을 거두고 두 손을 비웠다. 네 명 모두 무장해제 한 것을 확인한 모모타로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제 정수리에 조준한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기기 전 눈을 감았다. 니토리는 제 차례도 아닌데 가장 겁을 먹고 눈을 감아버렸다. 6분의 1의 확률. 모모타로라면 살 것이라 믿는 니토리였지만 그걸 눈으로 볼 용기는 없었다.
‘탕!’ 총소리와 함께 들린 것은 비명이었다.
하지만 그 비명의 근원지는 모모타로가 아니었다.
“뭐, 뭐야!”
쓰러진 것은 아까 전부터 주절주절 떠들던 키 작은 남자였다. 모모타로는, 제 머리에 쏘려던 총을 그대로 그 남자에게 쏘고 만 것이었다. 남은 세 명의 남자는 갑자기 일어난 돌발 상황에 도로 총을 뽑으려 했지만, 이미 총을 쥐고 있는 모모타로의 쪽이 더 빨랐다.
‘탕! 탕! 탕!’ 연속으로 들린 세 번의 총성에 남은 세 남자도 그대로 쓰러졌다. 눈을 꼭 감고 있던 니토리는 그제야 무언가 상황이 이상함을 알고 눈을 떴고, 눈앞의 네 남자와 모모타로를 번갈아 보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 가요 선배. 도망가야 할 거 같네요”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애초에, 총알은 하나 아니었어?”
“어라~? 전 러시안 룰렛이라고 한 적 없는걸요? 제가 방금 하려던 건 캅카스 룰렛인데~”
“그게 뭔데?!”
“6개짜리 실린더에 5개 넣고 돌리는 거요. 물론 전 이러려고 한 짓이지만”
황당해서 소리치는 니토리와 달리 모모타로는 오히려 차근차근 설명해 주며 쓰러진 네 남자의 총에서 탄창을 빼내 주머니에 집어넣고, 가장 상태가 좋은 총 하나를 골라잡았다.
“실랑이는 나중에, 다른 녀석들이 쫒아오기 전에 도망가요!”
“자, 잠깐”
자신을 끌고 가려는 모모타로의 손을 꽉 잡은 니토리는 그와 눈을 맞추고,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방금 저 사람들이 한 일에, 정말 네가 관련 있어?”
너무 진지한 니토리의 표정에 모모타로는 차마 농담으로 상황을 넘기려는 용기가 들지 않았다.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한참을 니토리의 눈만 바라보던 모모타로는 갑자기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전에 빨간 두건 이야기 해 준적 있죠?”
“어?”
“거기서, 늑대 나오잖아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거 원래 늑대가 아니라 늑대인간이래요”
모모타로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니토리로선, 이게 그저 위기를 모면하려는 그의 말 돌리기로 보였기에 그대로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진지하지 못하냐며 니토리가 화를 내기 직전, 모모타로는 니토리의 손을 끌어당겨 가까이 다가온 그의 귀에 속삭였다.
“나도 선배가 아는 미코시바 모모타로와 다를지 모르니까, 알겠죠?”
마지막의 그 ‘알겠죠?’에는 약간의 웃음기가 서려있었지만 니토리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제 안 좋은 감은 맞아버린 걸까. 모모타로에게 이끌려 도망가면서도 니토리는 한숨 하나 내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