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곽 AU 설정입니다
修羅
05
written by Esoruen
저녁노을이 전부 사라질 때 쯤, 미야지는 완성된 비녀를 들고 하야마를 찾아갔다. 그 날은 하야마가 불쑥 찾아와 비녀에 대한 독촉을 하고 간 날로부터 겨우 3일이 지났을 뿐이었다. 완성된 비녀는 미야지 자신이 보아도 아름답다는 찬사가 나올 정도로 훌륭했기에 그는 하야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까봐 두렵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텐라쿠야에 발을 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오고가는 손님들 사이, 멍하니 서있던 미야지는 한숨을 푹 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손님으로 착각하고 안내하려는 하인의 손길을 뿌리치고 가게 안에서 자신의 의뢰인을 찾았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어렵지 않게 주인 방 근처에서 개구쟁이의 미소를 짓는 얼굴을 찾은 그는 발걸음을 빨리 해 그에게 다가갔다.
“어이”
돈 많은 손님들을 방으로 안내하고 잡담을 해주며 가게 일을 도와주던 하야마는 시끄러운 가게 안에서도 미야지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벌떡 고개를 들었다.
“어라, 이 시간에 여기 무슨 일이야? 미야지!”
“뭐긴 뭐야, 비녀 가져다주러 왔다. 비싸게 받을 거니 지갑이나 열어두지 그래?”
“벌써 완성했다고?”
하야마는 정말 놀란 것인지 입이 떡 벌어져서 미야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내가 누군데, 당연하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이 미소 지은 미야지는 품속에서 곱게 포장된 비녀를 꺼냈다. 검은 비단 속, 모습을 감추고 있는 비녀는 특유의 곡선만으로도 하야마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빼앗듯 비녀를 가져간 하야마는 조심조심 비단을 걷어 물건을 확인하였다.
“우와”
아무리 여자의 물건을 보는 눈이 없는 하야마라도, 지금 미야지가 가져온 비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알 수 있었다. 마치 미녀를 보고 얼어붙은 숫총각 마냥, 비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동안 그 아름다움에 취해있던 하야마는 덥석 미야지의 손을 잡았다.
“내 방으로 가자, 돈 줄게!”
“뭐? 야, 너 일은?”
“거기! 너 내가 하던 일 좀 해줘!”
미야지의 지적에 근처에 있는 하인에게 제 할 일을 곧바로 떠넘겨버린 하야마는 인파속을 닌자처럼 달려 제 방으로 미야지를 끌고 왔다. 고급 방석에 미야지를 앉히고, 비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그는 제 방 구석의 서랍에서 돈주머니를 꺼내더니, 개수를 세지도 않고 무작정 미야지에게 그걸 던져버렸다.
“액수 확인해 봐! 모자라면 더 줄게!”
“뭐? 넌 어디 가게!?”
“비녀 전해주러~ 잠시만 기다려!”
허겁지겁 나가면서도 문을 닫고 나가는 하야마는, 도저히 10대 후반의 건장한 사내로는 보이지 않았다. 덩치만 큰 10살짜리. 미야지의 눈에 보이는 하야마는 딱 그 정도로 설명할 수 있었다.
혼자 방에 남겨진 미야지는 받은 돈주머니를 펼쳐 금액을 확인했다. ‘솔직히 저 어린놈이 얼마나 돈이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온 미야지였지만, 주머니 안의 금액은 미야지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액수였다. 역시 사창가의 도련님은 다르군,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감탄한 미야지는 추가금액을 부를 마음도 싹 사라져 지금의 돈 주머니를 품에 챙겨 넣었다.
‘그나저나, 생각보단 깔끔한 방이군’
시끄러운 바깥과 달리 조용한 하야마의 방에서, 미야지는 따분함을 떨치기 위해 천천히 일어서 방 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매일 자신이 청소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인들이 청소해 주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사고뭉치인 그의 성격과 달리 방 안은 제법 깔끔해서 미야지는 여기가 정말 하야마의 방이 맞긴 한 걸까 의심까지 갔다. 오래 되었지만 관리를 잘 해 광이 나는 가구들, 어항, 도자기… 찬찬히 둘러보던 그의 눈길이 멈춘 것은 금붕어가 든 어항이었다.
‘유녀도 아니고 이런 걸 방에 두다니’ 역시 아직 어린애라며 코웃음을 친 미야지였지만 분명 금붕어는 아름다웠다. 보통 유녀의 방에서 볼 수 있는 금붕어와 생김새가 조금 틀린 걸 보아, 분명 조금 더 비싼 종류일 것이다.
“미야지!”
한참을 금붕어의 헤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쯤, 방주인은 요란하게 돌아왔다.
“금액은 더 필요 없어. 다음에도 또 이용해 주면 좋겠군”
“그래? 다행이네! 그럼 온 김에 놀고 가! 응?”
“하?”
“사양하지 말고~ 자 가자가자!”
자신은 분명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야마에게 말했던 미야지였기에, 그는 막무가내로 자신을 끌고 나가려는 하야마가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니, 부담스럽다는 표현은 그야말로 좋게 말한 것이었지 실은 굉장히 무례하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됐으니 놔!”
“이거 왜이래? 숫총각처럼! 그러지 말고~”
문지방을 잡고 버티던 미야지는, 결국 혈기왕성한 하야마의 손에 이끌려 가게의 북적거림 속에 휩쓸려 들어갔다. 달까지 닿을 듯 울려 퍼지는 유녀들의 웃음소리, 샤미센의 부드러운 음율, 남녀의 땀 냄새, 아찔한 술기운에 수많은 발들의 움직임 까지… 마치 물에서 막 건져 올려 땅에 내동댕이쳐진 물고기 마냥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틀거리던 미야지는 결국 정체 모를 방에 내동댕이쳐졌다.
“으윽, 뭐야!”
엉덩이부터 바닥에 닿은 것이 다행이지, 만약 손이나 머리부터 닿았다면 미야지는 저 정도로 화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화가 난 것인지 알 길이 없는 하야마는 이죽이죽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내 선물이야, 미야지! 충분히 즐겨~”
“뭐? 뭘 즐기란 건데?!”
“아침에 봐!”
미야지만 놓고 휙 가버린 하야마는 아무리 봐도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미야지는 한번 슥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제가 버려진 이 방이 어떤 방인지 알 수 있었다. 고급스럽게 보이지만 사실은 저렴한 것으로 고급품을 모방해 만든 이부자리, 어두운 조명, 여러 가지 꽃과 나비가 그려진 병풍. 게다가 술상까지.
손님들이 잠시 놀다가는 곳이 아닌, 하룻밤을 완전히 보내기 위한 방이 분명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 녀석?!”
금방이라도 하야마를 잡으러 가 그 제멋대로인 머리에 꿀밤을 먹일 기세로 일어선 미야지는 문으로 성큼성큼 다가갔지만, 하야마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장난 끼가 넘쳤다. 아니, 조금 더 직설적으로 저 말을 고치자면 ‘더 악질적인 장난꾸러기였다’ 라고 하는 편이 미야지에겐 맞을지도 몰랐다.
“어딜 가세요~”
“호호, 부끄러움도 많으셔라!”
병풍 뒤에서 갑자기 뛰쳐나온 유녀들은 나가려는 미야지에게 덥석 안기더니, 그를 바닥에 도로 눕히고 말았다. 나이가 제법 지긋한, 이 바닥에서 오래 있었던 걸로 보이는 유녀부터 이제 막 후리소데신조를 벗어난 것 같은 어린 유녀까지. 총 5명의 유녀는 이 상황을 어쩔 줄 몰라 하는 미야지를 놀리며 그에게 엉겨 붙었다.
“자, 잠깐! 저리 가! 난 손님이 아니라!”
“쉿. 말 많은 남자는 매력 없답니다. 도련님”
미야지가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명해 보려고 했지만 유녀들은 도저히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미야지의 입을 막은 유녀들은 자신들 보다 훨씬 큰 그의 위에 하나 둘 올라타 평소 손님들에게 하듯 마음껏 끼를 부렸다.
“…조금 장난이 지나친가?”
하인에게 떠넘겼던 제 일을 하기 위해 제 자리로 돌아가던 하야마는 잠시 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곧 그런 동정심은 깨끗이 사라지고 말았다. 제 목적을 위해선, 이정도 장난이면 양호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야마는, 그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늘 어른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꼬마 취급하는, 그 요시와라 최고의 비녀장인의 놀란 얼굴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