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은 If 설정 기반입니다.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주의해주세요.
Bitter candy
05
written by Esoruen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했던 모양이었다. 병원 응급실로 도착한 하야마는 곧바로 마취당해 손바닥의 상처를 꿰매게 되었고, 모든 일이 다 수습된 후엔 해가 완전히 진 후였다. 초조하게 바깥서 기다리던 미야지는 결국 흡연구역으로 가 담배를 두 개피 나 피우고 돌아왔었고, 하야마는 손에 붕대를 감고 겨우 응급실을 나왔다.
"선생님, 오래 기다렸어요?"
응급실 앞 의자서 앉아 기다리고 있는 미야지를 발견한 하야마는 다친 손을 붕붕 흔들며 다가왔다. 큰 병원답게 깔끔하게 감긴 붕대는 손바닥부터 손목 아래까지 빈틈이 없이 하야마를 감싸고 있었다. 미야지는 하야마를 흘겨보더니, 공격적인 말투로 그를 맞이했다.
"뭐가 좋다고 실실 웃냐, 어이"
"음? 거야 미야지 선생님이 이제까지 기다려줬으니까요!"
"하? 뭐야 그건. 당연하지 난 양호선생이니까"
하야마의 들뜬 목소리와 표정이 이해가 안가는 미야지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치료된 왼손을 잡아 제 앞에 놓았다. 담당 의료진에게 듣기론 수혈도 했다고 했었다. 그 정도로 피를 흘렸으니 당연한 일 일지도 몰랐다.
"괜찮냐?"
"네! 이제 하나도 안 아파요!"
"몇 바늘이나 꿰맨 거냐?"
투덜거리면서도 그 손을 다정하게 이리저리 살펴보던 미야지는 일어서서 가볍게 하야마의 머리에 딱밤을 먹였다.
"농구부라며, 너"
"응! 아니, 네!"
"포지션은? 설마 슈팅가드는 아니지?"
"스몰 포워드!"
그러냐. 작게 대꾸한 미야지의 눈엔 근심이 가득했다. 사실 농구선수라면 어느 포지션이든 손은 중요한 것이었지만, 괜히 물어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손이 다쳤으니 연습도 할 수 없겠지. 걱정이 꼬리를 물고, 하나 둘 씩 늘어나자 점점 부정적인 생각으로만 나아가는 것을 안 그는 생각을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휘저었다.
“너, 선수잖아, 조심 좀 하지 뭐냐 이게?”
“실수잖아요 실수, 너무 화 내지 마세요!”
“지금 넌 웃음이 나오는 거냐…”
이쯤 되면 이제 긍정적인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미야지로서는 구분이 가지 않았다. 당연했다. 하야마의 속내를 전혀 모르니까. 하야마는 지금, 기분이 아주 좋았다. 당분간 좋아하는 농구도 못 할 것이고 양 손을 쓰는 일에는 모두 제약이 따를 것이었다. 그렇지만 좋은 핑계거리가 생기지 않았는가. 그 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방과 후 시간에도 미야지와, 학교 외의 장소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로서는 최고의 행복이었다.
“자, 그럼 돌아가자. 부모님한테는 학교 쪽에서 연락 했으니 걱정 말고. 태워 줄 테니까 가자”
“아, 네!”
말 잘 듣는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 하야마는 슬쩍 그의 옆으로 가 나란히 걸어보는 대담한 행각을 해봤다. 이까짓 것이 무엇이 대담하느냐 할 수도 있었지만, 하야마에겐 아니었다. 제 바로 옆. 미야지가 있다는 사실이 그에겐 정신이 아득해 질 정도로 자극적인 상황이었다. 제가 손을 뻗기만 하면, 바로 닿는 거리. 금방이라도 손을 뻗어 그 팔을 잡고 끌어당기고 싶은 강한 충동을 억누르느라 하야마는 고생 아닌 고생을 하며 병원을 빠져나왔다.
이번에도 자동차 안에서 앉은 곳은 조수석. 운전하는 미야지의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자리. 미야지는 자신을 바라보는 하야마의 눈빛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열심히 내비게이션에 하야마의 집 주소를 적고 안내에 따라 운전을 할 뿐이었다.
창밖은 벌써 어두웠다. 배도 조금 고픈 것을 보아하니 저녁시간도 지났을 것이다.
“선생님, 저 배고파요!”
“나도 배고프다”
“에이 그러지 말고요~ 우리 어디서 뭐 먹고 가요!”
“너, 사달라고 하려고 그러지?”
“티 나요?”
“죽여 버린다?”
운전을 하면서도 여유는 있는지 미야지는 눈만 웃는 표정으로 살벌한 소리를 날렸다. 쳇, 짧게 혀를 찬 하야마는 저녁을 같이 먹을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쉬운지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어린애의 투정 따윈 받아주지 않는 다는 듯 미야지는 곧 시선을 앞으로 돌렸지만, 중얼거리는 소리는 점점 커져 이윽고 그의 신경을 건드리고 말았다.
“아, 그 입 좀 다물어! 운전에 집중이 안 되잖아!”
“화, 화 낼 것 까진 없잖아요”
“나 참”
마치 고등학생이 아니라 초등학생의 보모가 된 기분에 미야지는 머리를 헝클였다. 덩치만 빼곤 딱 초등학생이다. 아니, 요즘 초등학생도 저것보단 의젓하다. 화를 내자 잠깐의 두통이 머리를 스쳤지만, 철없는 고등학생 제자는 그걸 알 리가 없었다. 그래도 이제 중얼거리는 소리는 사라지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는지 미야지는 집중해서 차를 몰아,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말이 나오는 곳에서 멈췄다.
“다 왔다, 집 어디냐”
“저기! 저 집이에요!”
“그래, 그럼 빨리 들어가. 부모님이 걱정한다”
하지만 하야마는 선뜻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미야지가 고개를 돌리자,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두 눈과 마주쳤다.
“그러지 말고, 저희 집에서 저녁 드시고 가실래요?”
“아?”
“고마워서 그래요! 고마워서!”
하야마의 집념은 끈질겼다. 어떻게든 미야지와 더 있고 싶어 했다. 미야지는 대놓고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그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다.
“아니, 그거 실례잖아 어이. 됐어 난 내 집에 가서 먹도록 하지”
“에이 그러지 말고요!”
“아 끈질기네! 거, 참! 너 나 좋아하냐!?”
“이제 알았어요?”
뭐? 태연하게 대답해온 하야마에 놀라 미야지는 반문마저 그 목구멍 안쪽으로 삼켜버리고 말았다. 좋아한다고? 혹시나 싶어 그는 제 눈앞의 학생의 성별과 제 성별을 다시 생각했다. 정확하게 둘 다 남자였다. 남자. 농담이겠지 싶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아도, 하야마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농담이에요!’ 라고 하지 않고 진지하게 그를 바라 볼 뿐이었다.
“장난이지?”
결국 미야지는 제 스스로 물어 그 해답을 구하려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미야지가 예상 하던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전 장난 같은 거 안 하는데요?”
덥석. 하야마는 안전벨트를 풀더니 한 손으로 미야지의 어깨를 잡아 의자의 등받이 쪽으로 그를 눌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미야지는 놀라 그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하야마의 쪽이 더 빨랐다. 바로 코 앞, 숨과 숨의 온도가 섞이는 거리까지 얼굴을 가져간 하야마가 미야지의 눈을 응시했다. 미야지의 숨은 따뜻했다. 따뜻했고, 담배 냄새가 났고, 입술에 스칠 때 마다 입술을 마주하고 싶어 하야마는 마른 침을 삼켰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의 인내심은 훌륭했다. 입술 위에서, 무어라 말하듯 입술을 뻐끔거리기만 한 하야마는 곧 그에게서 떨어져 자동차에서 내렸다.
“그럼 내일 봐요, 미야지 선생님”
집으로 달려가기 전 멍해진 미야지에게 그가 남긴 것은, 언제나처럼 생긋 웃으며 말한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