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리연성만 하네요()
중학교 시절 망상 날조 주의
오후 수업이 시작되자 교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까 전 점심시간 때 까지 뛰어놀던 그 학생들은 전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것처럼, 교실 안의 학생들은 책상 앞에 앉아 멍청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거나 졸며 시간을 낭비할 뿐 제대로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하루카는 그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학생 중 하나였지만, 사실 제대로 된 집중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칠판에 적혀있는 필기를 받아 적거나,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하는 부분에 밑줄을 긋는 일 정도는 하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머릿속에 수업 내용을 집어넣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졸려’
식곤증이란 자라나는 나이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하루카도 물론 그 자라나는 나이였으니 이 노곤한 느낌이 불편하기 그지없었지만, 수업을 놓치면 고생을 하게 되니 어쩔 수 없었다. 몸의 피로와 머리의 피로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하루카는 몸의 피로를 선택한 것이었다.
학생들이 다들 졸기 시작하자 수업을 하던 젊은 남선생님도 지친 것일까. 수업은 결국 거기서 멈춰버리고 말았고 선생님은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 대신 온갖 잡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잡담이란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래서 수업을 그만두려고 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졸고 있는 몇몇의 학생은 그 이야기가 흥미로워 잠에서 깨 선생님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수업이나 계속하지. 선생님의 잡담에 전혀 관심이 없던 하루카는 그제야 펜을 놓고 잠깐 졸기위해 턱을 괴었다.
“와, 선생님 그거 진짜에요?”
키스미는 정말로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선생님이 수업을 하지 않길 바라 잡담을 계속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학생들 중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선생님의 이야기에 동조하고 있었다.
‘정말로 기운찬 녀석이네’ 하루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불과 몇분 전 점심때 일을 떠올렸다.
언제나 자신과 마코토, 그리고 키스미까지 세 명이서 도시락을 먹는 점심시간은 시끌벅적한 평범한 남중생들의 식사시간과 같았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요리 솜씨가 뛰어난 하루카는 언제나 키스미에게서 자신의 도시락을 지켜야 했다는 점이다. 그건 솔직히 남학생들끼리 모인 집단보단, 여학생이 끼어있는 무리에 더 어울릴법한 풍경이었다.
“쨘! 하루! 이것 봐!”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언제나 하루카의 도시락 반찬이 무엇인지부터 눈으로 훑어보던 키스미가, 처음 하루카를 위해 무언가를 해 온 것이었다. 도시락을 얌전히 다 먹은 후, 가방에서 또 다른 도시락 통을 꺼낸 키스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어, 그게 뭐야?”
“직접 만들어봤어. 마코토도 먹어볼래?”
키스미가 꺼낸 것은 샌드위치였다. 이것저것 넣어 다양한 종류로 만든 샌드위치는, 한입 크기로 잘라져 색색의 포크로 보기 좋게 꿰어져 있었다.
“…직접 만들었다고?”
“응, 엄마가 좀 도와줬지만. 자, 하루는 역시 생선이 들어간 게 좋아?”
“됐어”
이미 도시락만으로 배가 부른 하루카는 키스미가 직접 먹여주려는 샌드위치를 거절하며 고개를 돌렸다. 야박하다면 야박한 행동이었지만, 키스미는 이런 무뚝뚝한 하루카의 행동이 익숙한지 그저 웃기만 할뿐 화조차 내지 않았다.
“어디, 나도 줘볼래?”
“아, 마코토는 이거 어때? 먹어봐~”
도시락에 관심을 보이는 마코토를 위해 키스미는 도시락을 마코토 쪽으로 넘겨주었다. 하지만 그가 하루카에게 제 샌드위치를 먹이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린 하루카를 유심히 바라보던 키스미는, 하루카가 그냥 먼 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제 집쪽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챘다.
하루카의 집은, 바다와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하루카였지만, 제 집의 위치만큼은 가끔 자랑스러운 일을 말하듯 꺼내던 탓에 키스미는 그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나세 하루카는 정말로 수영하는 것을 좋아한다’
키스미는 하루카가 제 집이 바다 근처라는 것을 강조해 말하는 이유가, 어쩌면 저 사실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것과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은 제법 차이가 있는 일이었지만, 하루카는 그저 물에서 헤엄치는 것을 좋아했으니, 그에게는 그 둘의 차이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였을지 몰랐다.
“하루~”
“왜”
“다음에 날 더워지면 하루네 근처에서 수영 같이할래?”
뜬금없는 질문에 하루카는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표정으로 키스미를 바라보았고, 키스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그 입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샌드위치를 집어넣는 것을 성공한 키스미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성공!”
“……뭐야”
처음에는 이런 행동 자체가 황당했던 하루카였지만, 그래도 입에 들어온 것을 뱉어낼 정도로 매정하지는 않았다. 꼭꼭 씹어 입 안에 무단 침입한 샌드위치를 씹던 하루카는 느껴지는 달콤 쌉싸름한 맛에 고개를 기울였다.
“뭐로 만든 샌드위치야, 이거?”
“응? 오렌지 마멀레이드 바른 거야. 딱히 넣은 재료는 없어”
“그건 그냥 빵이지 샌드위치가 아니잖아”
“뭐, 어때! 맛있어?”
잠시 고민한 하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마멀레이드만 바른 식빵이 맛있지 않을 리도 없었지만, 하루카는 그냥 그것이 ‘맛있다’라고 느꼈다.
마멀레이드가 수제품이었던 걸까, 아니면 빵이 유명한 집의 물건이었던 걸까.
아니면, 키스미가 직접 만든 것이라 그랬던 걸까.
‘…뭐 어찌 되든 상관없지만’
아직 입안에 남은 단맛을 애써 무시하며, 하루카는 눈을 감았다.
키스미의 목소리는, 여전히 선생님의 목소리와 섞여 교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