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nt

written by Esoruen

 

 


 

냉방장치가 고장난지 3일째, 농구부의 모두는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완전히 지쳐버렸다. 부원들은 창문을 모두 열고 스포츠 음료를 들이켜도, 체육관 안의 더위엔 쉽게 이길수 없었다. 연습이 이렇게 고된 적이 있던가, 와카마츠는 티셔츠 까지 벗어 던지고 그늘에 앉아 열기로 전율하는 몸을 식혔다. 아오미네는 오늘도 땡땡이, 사쿠라이는 완전히 지쳐 바람 빠진 공처럼 늘어져있고 스사는 창가에서 더운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었다. 모모이는 도저히 못 견디겠는지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와 지쳐 쓰러진 부원들에게 나눠주고 있었고, 감독은 아예 보이질 않았다. 아마 시원한 교무실에서 유능한 주장과 매니저에게 부의 운명을 걸고 쉬고 있을 것이다. 와카마츠는 딱히 그걸 비난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평소에도 주장 위주로 훈련하던 팀이었고, 이런 더운 곳에 있는 게 현명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모모이가 건넨 아이스크림은 소다 맛이었다. 대충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입에 베어 물자 싸구려 단맛이 입안을 간질였다. 사실 맛 보다는 차가움이 더 중요했기에, 맛을 음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주장 이마요시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히, 숨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소리를 죽이고 체육관 구석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한 손으로 농구공을 만지작거렸다. 신기할 정도로 조용해서, 와카마츠는 고개를 기울여 이마요시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세히 보니 이마요시는 거의 땀을 흘리고 있지 않았다. 살짝 상기된 피부가 분명 더워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땀이 비 오듯 오는 다른 부원들에 비하면 심하게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주장이 물고 있는 아이스크림은 노란색이었다. 아마도 레몬 맛일 것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내일 에어컨이 수리 될 때 까지 연습은 중단해야겠어요!"

"그래야겠제?"

 

모모이가 빈 비닐봉지를 구기며 한숨을 쉬자 기다렸다는 듯 이마요시가 그 말을 긍정했다. 두 사람이 해산을 결정내리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마요시가 오늘 연습은 끝이라고 말하기 무섭게 부원들은 연습할 때와는 달리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고 체육관을 나왔고, 이마요시도 느긋하게 락커룸으로 사라졌다.

나도 가야지, 분명 와카마츠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땀범벅의 티셔츠를 밀어내고, 떡하니 드러누운 그는 열기로 어른거리는 천장을 보았다. 더워서 뇌까지 녹아버린 걸까, 일어서란 이성의 명령보다 본능의 쉬어란 권유가 그에겐 더 달콤했다. 잠깐만 쉬었다가 돌아가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감자 여름날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둠이 두 눈에 쏟아졌다.

 

 

 

 

 

눈을 뜨자 온 세상은 주황색이었다. 밀려오는 찝찝한 한기에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코가 간지러워졌다. 에취. 요란하게 기침을 한 와카마츠는 텅 빈 체육관을 보았다. 체육관은 노을빛이었고, 그림자가 길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깊게 자고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도 안 깨워주고 간 것에 대해서는 원망도 섭섭함도 들었지만, 잘 자고 일어난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거면 됐어. 스스로 납득하고 아직 땀이 다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향해 손을 뻗자,

 

"아이고 이제 일어났나?"

"으아아아!!"

 

등 뒤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놀란 그였지만 뒤돌아 본 목소리의 근원이 제 주장임을 알았을 때, 와카마츠는 정말 심장이 튀어나와 농구공처럼 구를 뻔 했다.

이마요시는 아까 전처럼,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앉아 막 잠에서 깬 제 후배를 보고 있었다. 입가엔 장난스러운 미소, 교복을 입고 있는걸 보아 이미 오래전에 씻고 옷을 갈아입은 것 같았다.

 

"주, 주장"

"깨울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 마 내버려뒀더니 아가 일어날 생각을 안 해서 쪼까 걱정했는데, 일어나서 다행이구마"

"걱정이요?"

"아, 일사병인건 아인가 싶었제"

 

킥킥. 장난스런 미소가 방금 전의 말이 농담임을 증명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와카마츠는 쭈뼛쭈뼛 이마요시에게 다가갔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적당히 깨워주시지"

"처음부터 있었지라, 그리고 도저히 못 깨우겠더구마. 그 자는 얼굴이 너무 평화로워서 말이제"

"주장도 참"

 

괜히 쑥스러워진 와카마츠는 젖은 티셔츠를 입고 락커룸으로 달려갔다. 이마요시는 쫒아오지도 가버리지도 않고,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수건으로 땀을 닦고, 세수를 하고 교복으로 갈아입은 와카마츠는 가방을 챙겨 넣으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왜 하필 주장이 자신을 기다려 준 것일까. 와카마츠로서는 그 의미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깨워주고 갔으면 됐을 텐데. 그 나름의 후배 사랑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좋게 생각하기로 한 그는 락커룸을 나왔다.

 

"주장?"

 

이마요시는 교복차림으로 코트에 있었다. 아마 기다리기 따분했던 거겠지. 자유투 연습을 하던 이마요시는 와카마츠의 기척을 느끼고 골대를 향해 던지려던 공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머쓰마가 무슨 옷을 갈아입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노?"

"죄, 죄송합니다"

 

자신이 왜 사과하는지 와카마츠 그 자신조차도 몰랐다. 마치 사과쟁이 후배 같은 반응이었지만 이상하게 이마요시의 꾸짖음엔 반발할 수가 없었다. 어색하게 웃고 있는 그에게, 이마요시는 천천히 다가와 고개를 기웃거렸다.

 

"니 제대로 안 씻었제? 땀 냄새 봐라"

"돌아가서 씻을 거예요! 여기서 씻기 불편하다고요"

 

와카마츠는 투덜거리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마요시는 어느새 바로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주, 주장?"

 

그 행동이 마치, 낮선 상대를 채취로 인식해 보려 하는 고양이 같아서 와카마츠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이마요시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와카마츠는 어찌해야 할 줄 몰라 정승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새까만 흑발이 목덜미를 간질였다. 자신보다 차가운 피부가, 순식간에 스쳐지나갔다.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데도, 이마요시의 숨 쉬는 소리는 겨우 귀에 닿을 정도로 작았다. 아까 땀도 거의 흘리지 않아서였을까, 체향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이 사람이 사람일까? 그런 의심까지 들었다. 감춘 것이 너무 많은 사람. 눈동자조차 쉽게 보여주지 않는 사람. 코앞에 있는데도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려서 와카마츠는 두 팔을 뻗고 말았다.

덥석. 이마요시를 끌어안은 와카마츠는 그 새하얀 귀에 코를 가져갔다. 땀 냄새는 나지 않았다.

 

"…와카마츠, 쪼까 더운디"

"아"

 

아차,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풍경을 연출해버린 와카마츠는 이마요시를 밀어냈다. 제가 안아놓고 제가 뿌리치다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와카마츠를 잠시 바라보던 이마요시는, 샐쭉 웃어보였다.

 

"와카마츠?"

"아, 그, 먼저 가겠습니다!!"

 

도저히 제 주장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도 예측도 안 되던 와카마츠는 도망치듯 가방을 들고 체육관을 뛰어나갔다. 이마요시는 이번에도 그를 쫒아가지 않았다. 그저 노을로 꽉 찬 체육관 한 가운데서, 새빨개진 얼굴로 뛰어가는 후배를 향해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솔직하지 못한 아라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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