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하루] 개화

from Fiction/Free! 2014. 8. 31. 02:39

 

※ 하나하키병 소재 주의

 

 

개화

written by Esoruen

 

 

도서관 컴퓨터로 무언가를 열심히 검색하는 린의 표정은 어두웠다. 마치 사형선고라도 받은 죄수마냥, 불치병 선고를 받은 환자마냥, 불안하고 놀란 표정. 린이 그런 표정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이 그런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린은 꽃을 토하는 병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은 반 친구들이 몇 년간 외국에서 살다 온 자신을 놀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사람이 꽃만 먹고 살지 않는 이상 꽃을 토할 리가 없었고, 설령 꽃을 먹고 사는 사람도 꽃이었던 토사물을 토해내면 몰라도 온전한 한 송이의 ‘꽃’을 토해 낸다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친구들의 말은 사실이었고, 병의 정식 명칭도 있었다. 구토중추화피성질환, 혹은 하나하키병. 짝사랑이 깊어지면 꽃을 토하는 바람에 짝사랑의 병이라 불리는 이 질환의 자세한 설명 중 린이 가장 거슬리는 부분은, 맨 밑에 적인 ‘감염 경로’였다.

‘하나하키병은 발병자가 토한 꽃에 닿으면 감염된다’

 

“설마”

 

린은 황급히 인터넷 창을 끄고 화장실로 가 두 손을 박박 문질러 씻었다. 정말로 꽃에 닿는 것만으로 감염된다면, 지금의 린은 상당히 위험한 상태였으니까.

그가 갑자기 이 병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친구들이 해 준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 아니라고 하기 보단,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온 원인이자 좀 더 근본적 이유는, 어제 수영부의 라커룸에서 발견된 대량의 꽃 때문 이었다.

모든 부원들이 돌아가고, 마지막까지 남아 연습하던 린은 라커룸으로 돌아왔을 때 구석에 가득 쌓인 꽃을 발견했다. 샛노란 색의 그 꽃은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평범한 들꽃이라고 하기엔 화려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린은 누군가 일부러 꽃을 여기에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별다른 의심도 없이 꽃들을 모아 바깥에 버리고 간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반 친구들에게 하자, 친구들은 갑자기 하나하키병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꽃, 누가 토한 거 아니야?’ 라면서 말이다.

 

“젠장!”

 

비누칠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손은 붉게 부어올랐다. 손은 너무나도 따가웠지만, 린은 이 정체불명의 병에 걸리기 정말 싫었다.

왜냐하면 그는, 옛날부터 짝사랑하는 상대가 있었으니까.

 

 

 

 

심란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 린은 침대에 누워 두 손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꽃을 쓸어 모아 버린 두 손은 겉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원래 모든 질병이란 처음엔 겉보기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법. 불안한 마음은 관찰 따위로 가라앉지 않았다.

위층 침대를 쓰는 소스케는 이미 잠들었는지 미동도 없이 조용했다. 하지만 이편이 린에게는 좋았다. 어차피 제 짝사랑을 상담하기에 소스케는 적당한 상대가 아니었고, 누구에게라도 낯간지럽게 사랑이야기를 털어놓을 생각도 없었다.

 

‘딩동’

 

메시지가 도착한 것을 눈과 귀로 확인한 린이었지만, 쉽사리 핸드폰에 손이 가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고, 이런 시간이라면 누구인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언제나 자신을 걱정하는 착한 여동생의 문자겠지.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그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또 뭐야…”

 

중요한 문자가 아니면 답장도 하지 않을 생각으로 핸드폰을 낚아챈 린은 결국 문자 메시지를 열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집에 올 수 있어?’ 메시지의 내용은 그게 다였다.

 

‘그러고 보니 최근 집에 잘 가지 않았지’

 

고우랑 어머니 단 둘만이 있을 집을 생각하자 린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꿈을 위해 기숙사에 남아 수영에 매진하는 린은 어지간하면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집에 들르지 않는다고 해서, 여자 둘이서만 살 본가의 쓸쓸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갈게’ 짧은 답장을 보낸 린은 그대로 폰을 침대 구석으로 밀어놓았다.

고우를 무시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지금 린은 자신의 몸을 걱정하기만으로도 벅찼다.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하는 린은 목 안쪽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놀라 입을 닫았다. ‘설마’ 지레 겁을 먹고 슬쩍 혀를 내밀어 본 린은 아무것도 없는 혀끝을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나는 괜찮을 거야’

 

그렇게 믿으며 린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간지러울 리 없는 목과 입 안은 계속 간지러웠다. 가슴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 같은 감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기우가 만들어 낸 착각이라고, 자신이 예민한 것이라고 믿으며 린은 억지로 잠의 세계로 비집고 들어갔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맛있는 냄새로 가득했다. 식탁 한가득 차려놓은 음식들은 무엇 하나 빠짐없이 먹음직스러웠고, 가스레인지 위에는 무언가가 굉장한 소리를 내며 구워지고 있었다. ‘이건 무슨 진수성찬이야?’ 하고 당황하던 것도 잠시, 프라이팬 위의 고등어를 뒤집던 고우는 앞치마도 벗지 않고 달려와 린의 팔을 안았다.

 

“오빠! 이제 왔어?”

“뭐, 뭐야 이건? 오늘 무슨 날이야?”

“오빠 곧 시합이잖아? 그래서 준비했지! 엄마랑 나랑 힘내서 만들었어!”

 

‘과연’ 겨우 납득한 린은 피식 웃고 부엌으로 가 어머니에게 인사를 올렸다.

 

“저 왔어요, 엄마”

“왔니? 방에 가서 옷 갈아입고 오렴. 저녁 먹자”

“네”

 

요리를 하느라 바쁜 어머니와 고우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방으로 조용히 들어간 린은 가방을 내려놓고 일상복을 찾기 위해 옷장을 뒤졌다. 대부분의 옷은 기숙사에 있는 탓에, 집에 있는 옷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옷으로 갈아입은 린은 방을 나가려다가 옷장 구석에 처박아 놓은 앨범이 삐죽 삐져나온 것을 보았다.

‘아까 뒤적거리다가 잘못 건드린 건가’ 다시 정리해 넣으려고 앨범을 잡은 린은, 이대로 다시 어둠속에 추억을 밀어 넣기는 아까워 앨범을 펼쳤다.

 

“아”

 

어쩜 자신은 이렇게 요령이 없을까. 하필 린이 페이지를 펼친 그 페이지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상대와 어린 자신이 찍힌 사진들로 가득했다.

또,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이런 느낌은 싫었지만 린은 차마 앨범을 닫을 수 없었다.

 

“이때도 이 녀석은 무뚝뚝했지”

 

어린애 치고는 표정이 너무나도 어른스러운 하루카를 보며 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무표정한 하루카, 밝게 웃는 자신. 마코토와 나기사까지 넷이서 같이 찍은 사진도, 단 둘이서만 찍은 사진에서도, 두 사람의 표정은 똑같았다.

이런 표정을 하고 있어도, 사진마다 하루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달랐다. 린은 그걸 알아 볼 수 있었다. 저 사진은 기쁠 때 찍었던 것, 저것은 불만이 있을 때 찍었던 것, 그리고 이건 수영클럽에서 나와 갑자기 찍은 것…

추억을 더듬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야 할 텐데, 린은 어쩐지 점점 더 우울해지고 속이 답답해 질 뿐, 전혀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자신이 하루카를 좋아하지만 하루카와 일상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었다. 사메즈카 교복과 이와토비의 교복을 차례대로 떠올린 린은 이를 꽉 깨물었다.

물 안에선 두 사람은 좋은 라이벌이자 동료였다. 그것은 하루카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었고, 그도 린을 유일한 라이벌처럼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 린은 하루카가 자신을 친구 이상으로 좋아하는지, 자신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쉽지 않은지 알 수 없었기에 슬펐다.

 

“콜록!”

 

갑자기 목 안쪽이 불편해진 린은 기침을 토해냈다. 쑥. 침도 무엇도 아닌 것이 목을 긁고 지나가는 감각에 린은 깜짝 놀라 입을 막았다. 설마, 자신도 꽃을. 덜덜 떨리는 손을 치워낸 린은 깨끗한 손바닥을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방금 자신이 느꼈던 것은, 그저 환상통 같은 것이었다.

발병이 될까 걱정되어 사랑하는 상대조차 떠올릴 수 없는 병이라니. 린은 이 피한방울 나오지 않는 병의 잔인함에 주먹을 꽉 쥐었다.

 

“오빠! 얼른 나와 국 식어!”

“아, 미안! 갈게!”

 

황급히 앨범을 덮어 제 자리에 정리해 둔 린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와 고우가 앉아있는 식탁 위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들었지만 마음만은 기뻤다. 식탁 위에 차려진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저것들은 어머니와 동생의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이걸 두 사람이서 다 한 거야?”

“응! 엄마가 대부분 다 했지만”

“아니야, 고우도 많이 도와 줬는걸! 자, 인사”

 

잘 먹겠습니다, 라는 인사와 함께 시작된 식사는 의외로 조용했다. 식사시간 만큼은 조용히, 그것이 마츠오카 가의 규칙이었다.

 

“어”

 

그때, 고등어구이를 먹던 린이 입을 열었다.

 

“이거, 누가 구웠어?”

“내가! 맛있지?”

“어… 고우, 네가 이렇게 요리를 잘했었나?”

“뭐야 그 말투!”

 

고우는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쳤지만 린은 진지했다. 지금 먹은 고등어구이는 평소 먹던 고등어와는 맛이 조금 틀렸다. 양념을 바꾼 걸까, 불 조절을 잘 한 걸까, 여러 추측을 해본 린이었지만 고우가 말한 답은 의외였다.

 

“이거, 하루카 선배가 가르쳐준 레시피로 해본거야! 괜찮지?”

“…그런 거야?”

“응! 오빠에게 요리를 해줄 거라고 하니 자기도 도와주고 싶다면서 가르쳐줬어!”

 

그러고 보니 하루카는 고등어를 좋아했지. 또 다시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에 린은 황급히 밥과 반찬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또 다시 간질거리는 목 안에서, 이번엔 정말로 꽃이 튀어나올 것 같아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내일 하루카 선배한테 답례로 만든 반찬 조금 가져다줄까 하는데… 오빠도 갈래?”

“…그러지 뭐…”

 

어쩌면 거절하는 편이 좋았을 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린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하나하키병이 발병하지 않았지만, 하루카를 만나러 가면 증상이 발현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무서움 때문에 얼굴보기 힘든 하루카를 만나러 가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린은 더 이상, 바보 같은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카 선배~”

 

결국 다음날 오전, 린과 고우는 무작정 하루카의 집으로 찾아갔다.

연락이라도 하고 찾아올 걸. 무거운 반찬통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생각한 린은 열심히 문을 두드리며 하루카를 부르는 여동생의 어깨를 잡았다.

 

“반찬통 보고 있어”

“에? 오빠?”

“하루! 안에 있냐? 들어간다!”

 

린은 문이 잠겨있는지 열려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문고리를 잡아 비틀었다. 달칵. 문은 쉽게 열렸다. ‘열려있을 줄 알았지’ 하루카의 허술함에 코웃음을 친 린은 여동생을 두고 거침없이 좋아하는 이의 공간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게 몇 년 만에 와본 하루카의 집이던가. 시시한 감상과 함께 목 안이 간질간질해지는 불편함을 참으며 린은 거실과 부엌을 살펴보았다. 거실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부엌에는 아침식사의 흔적으로 보이는 그릇 몇 개가 설거지를 기다리며 싱크대에 놓여있었다.

‘여기에도 없으면 집에 없는 거겠지’ 그렇게 확신한 린은 욕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물을 좋아하는 하루카는 자주 욕조 안에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이 사실은 린 자신이 보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코토에서 들은 것이었지만, 마코토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그래서 린은 그의 방보다, 욕실을 찾아보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욕실 문을 열자 보인 것은, 물이 넘쳐흐르는 욕조와 꽃들이었다.

린은 제 눈을 의심했다. 하루카가 들어있을 것이라 생각한 욕조에는 연꽃이 가득 피어있었고, 습기로 가득한 욕실의 공기에는 꽃향기가 은은하게 배어있었다. 마치 자석에 끌려가는 쇠붙이처럼, 천천히 욕조로 다가간 린은 연꽃들을 욕조 밖으로 치워버렸다.

물속에는, 제가 사랑하는 하루카가 있었다. 그리고 욕조 속 그의 입에서는 기포와 함께 연분홍색의 연꽃이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아’ 린이 소리 없는 탄식을 하는 찰나, 하루카가 눈을 떴다.

벌어진 린의 입에서는, 새빨간 꽃잎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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