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키병으로 써본 조각글 3
이제 내 입에서 꽃이 나올 거 같지만 나는 그래도 꽃을 토하는 남거너들을 쓸 것이다 (의지폭발)
마이스터가 제 연구실에서 나오지 않은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걸 보고 ‘또 무언가 기발한 걸 만드느라 바쁘겠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블래스터는 달랐다. 그는 마이스터가 이렇게까지 오래 연구실 밖으로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어도 5일. 5일 정도까지만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던 마이스터였는데.
연구실 안은 웬만한 시설은 다 갖추어져 있고, 먹을 만한 것도 있었으니 아마 마이스터는 굶주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작은 침대도 있으니 잠도 제대로 잤겠지. 하지만 그것과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달랐다.
“마이스터! 문 좀 열어봐!”
블래스터는 굳게 닫힌 연구실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아무리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안으로 들이는 것은 해주던 마이스터였으니, 이 방법이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블래스터의 예상은 빗나가버렸다. 마이스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몇 분을 버티다가 겨우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돼. 저리 가”
냉정한 거절에 블래스터는 당황했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겐 까칠해도 자신에겐 서툰 다정함을 보이던 마이스터가, 이렇게 그에게 딱 잘라 거절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무슨 일이 있어’ 그렇게 확신한 블래스터는 다른 방법으로 이 굳게 닫힌 문을 열기로 했다.
‘이렇게 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메탈하트에게 공구함을 빌려온 블래스터는 문손잡이를 풀기 위해 드라이버를 집었다. 하지만 나사가 견고한 것인지 블래스터가 요령이 없는 것인지, 아무리 나사에 드라이버를 맞춰 돌려봐도 손잡이는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 이런 건 자신과 맞지 않다. 시원스럽게 그걸 인정한 블래스터는 드라이버 대신 망치를 들고, 있는 힘껏 문고리를 내려쳤다.
“헙!”
기합과 함께 문고리를 박살낸 블래스터는 ‘나중에 꼭 변상해야지’ 라고 다짐하고 문을 열었다.
“마이스터!”
문을 연 블래스터는 마이스터에게 곧바로 달려가려던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지끈. 적당히 단단한 것이 부러지는 소리. 소리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블래스터의 발밑이었다.
“…이게 뭐야”
블래스터는 자신이 밟은 백합을 주워들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백합은 이것 하나 뿐만이 아니었다. 좁지도 넓지도 않은 이 연구실 전체에 백합은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도 막 피어난 것처럼, 싱싱한 상태로 말이다.
설마 마이스터는 이 수많은 백합을 전부 기른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백합의 상태가 이상했다. 백합들은 모두 뿌리가 없었고, 마치 꽃집에서 파는 물건들처럼 잎과 줄기, 꽃이 전부인 모양새였다.
“…블래스터?”
기계와 꽃들의 아이러니한 난장판 속에서 마이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상도 하지 못한 풍경에 당황해 얼어있던 그는 그제야 제가 왜 이 고생을 하며 연구실에 들어왔는지를 떠올리고 마이스터에게 다가갔다.
“이거, 왜 이래? 괜찮아?”
뚝. 뚝. 블래스터가 다가가는 발걸음 마다 백합들의 줄기가 짓밟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난 괜찮으니까, 다가오지 마!”
“왜 그래, 뭐가 문제야? 내가 잘못 한 거라도 있어?”
“오지마라니까…!”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이스터가 고개를 들자, 그의 얼굴 아래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블래스터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이스터의 입에서는, 짙은 꽃의 향이 풍겨져 나왔다.
“…이게 다 너 때문인데…”
미처 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백합의 이파리를 씹으며, 마이스터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두 눈을 손으로 가렸다. 마이스터의 손 사이로 새어나오는 눈물에는, 향수마냥 독한 백합 향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