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가 있는 것은 육지에서 살 수 없다
上
written by Esoruen
발끝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에 하루카는 놀라 눈을 떴다. 새까만 하늘, 새까만 바다, 귓가를 맴도는 바닷바람은 제 발을 담근 바다처럼 차가웠다.
잠옷 차림의 하루카는 제 발목 근처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나서야 잠이 깼는지, 천천히 뒷걸음질로 바다에서 빠져나왔다. 맨발에 달라붙는 모래의 찜찜함 같은 것은 그에게 아무런 것도 아니었다. 몇 번이고 뒷걸음질을 반복하던 하루카는 모래가 아닌 콘크리트가 발바닥에 닿을 쯤에야 제 자리에 섰다.
아무것도 없는 해변은 꿈속의 풍경 같았다. 하지만 하루카는 끝부분이 젖은 제 잠옷바지와 얼굴을 때리는 해풍으로 이것이 꿈이 아님을 알았다.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실망하고 슬퍼졌을 뿐이었다.
‘또…’
하루카는 한숨을 쉬고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발을 말리고 모래를 털었다. 맨발로 집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용케도 발은 다치지 않았다. 그건 천운일까, 아니면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잠재의식의 활약일까. 하루카는 이왕이면 후자이길 바라며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카는 보름 전부터 이런 일을 매일 밤 겪고 있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몽유병이라는 것이었다.
“문을 이중으로 잠그고 자야하나…”
그는 집에 돌아와 발을 씻으며 중얼거렸다. 물론 저 방법은 매우 얄팍한 대처였다. 생각한 자신조차도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다시 누운 하루카는 푹신한 이불 속에 고개를 처박았다.
제 병은 두려웠지만, 그는 아무에게도 이 증상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마코토도 나기사도 레이도, 그가 이런 일을 겪고 있음을 몰랐다. 혼자만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일지 몰라도, 하루카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남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도 과도한 관심을 받는 것도 싫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심해의 동굴 같이 고요한 정적. 그는 그저 그런 어둡고 깊은 자아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을 바랄 뿐이었다.
‘왜 하필 바다로 가는 걸까’
병이 생긴 원인은 사실 궁금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치료하는데 원인이 필요하다면 아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가 제일 궁금한 것은, 왜 하필 바다로 향하는 것인가. 그것뿐이었다.
물이 좋은 것뿐이라면 그냥 욕조 안에 처박혀도 되는 것일 텐데.
깜깜한 이부자리 속, 하루카는 제 자아에게 행동의 이유를 물었다.
해구 속에 잠긴 그의 마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불 속에서 눈을 뜬 하루카는 알람시계를 보고 도로 드러누웠다. 오전 11시 반. 평소 학교를 가는 날이라면 학교에서 면학에 힘쓸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주말이었다. 게다가 수영부 연습도 없으니, 그는 지금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몽유병 때문일까, 아니면 평일 날 열심히 연습한 것 때문일까. 하루카는 요즘 들어 더 자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말았다. 수업시간에는 졸음이 몰려와도 버틸 수밖에 없었지만, 제 침대 위에서는 알게 무언가. 팔다리를 쭉 펴고 몸의 긴장을 풀자 졸음은 다시 되살아나 그의 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그는 푹 잘 수 없었다.
“하루! 있냐?”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걸 알아챈 하루카였지만 몸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어차피 또 마코토겠지’ 그렇게 생각한 그는 이불을 끌어안고 일부러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무시했다. 마코토라면 지겹도록 자신의 집을 드나들었으니 딱히 자신이 나가서 맞이해 줄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알아서 자신이 있는 곳을 찾아올게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그를 부르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하루! 자냐? 하루!”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하루카는 문득 위화감을 느끼고 고개를 내밀었다. 처음엔 마코토라고 생각하고 제대로 듣지 않았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저 부름은 이상한 부분이 많았다. 우선 말투. 마코토는 절대 저런 말투를 쓰지 않았다. 두 번째는 목소리. 지금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 제가 아는 목소리였지만 마코토의 것은 아니었다.
“…린?”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루카는 이미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린은 기숙사에 있을 터였는데, 어째서 제 집 앞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저 말투와 목소리는 분명 린의 것이었고, 자신은 꿈을 꾸는 게 아니었다.
잠깐의 심호흡 후 현관문을 연 하루카는, 조금은 피곤한 표정으로 서있는 린과 눈이 마주쳤다.
“있었네, 역시?”
“네가 여기 무슨 일이야?”
“집에 가지러 갈게 있어서 들렀다가 네 생각이 나서 왔다만… 별로 반기는 눈치가 아니다?”
“…별로 그런 건 아니지만”
미적지근한 하루카의 대답에 린은 웃어버렸다. 원래 하루카는 솔직하지 못했다. 린은 그런 그에게 익숙했고, 그런 그를 마음속 깊이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그를 ‘귀찮은 성격을 가진 녀석’이라 평할지 몰라도, 린의 눈에는 저 퉁명스러운 태도가 그 어떤 애교보다 귀여웠다.
“어쨌든, 들어가도 되겠지?”
“…물론이지”
이건 거절할 이유가 없는 방문이었다. 하루카는 희비를 느낄 수 없는 표정으로 린을 안으로 들였다. 오랜만에 들린 하루카의 집을 두리번거리던 린은 거실의 탁자 앞에 앉아 두 다리를 폈다.
“옷 갈아입고 올게. 잠시 앉아서 기다려”
하루카는 차 한 잔 내올 여유도 없이 잠옷을 갈아입으러 올라갔다. 혼자 남은 린은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으니, 그대로 드러누워 천장과 바닥을 두 눈으로 마음 것 훑을 수 있었다.
분명 지금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인데도, 하루카의 집은 오랫동안 사람이 없었던 집처럼 조용하고 생기가 없었다. 차가운 바닥, 차가운 벽, 먼지하나 없는데도 너무나도 인간미가 없는 탁자와 깨끗한 싱크대.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 속의 집처럼, 하루카의 집은 현실미가 없었다.
‘마치 물 속 같군’
린은 아무 움직임도 없이 잠수해 있을 때의 물속을 떠올렸다. 매일매일 부활동과 연습으로 수영을 해야 하는 그에겐 자주 느낄 수 없는 고요였지만, 분명 가만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때 온 몸을 감싸오는 그 조용함과 이 집의 분위기는 쏙 닮아있었다.
타박타박.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는 마루에 흰 발이 나타났다.
“미안, 늦잠을 자서”
“아냐, 뭐 됐어. 나도 집에 가는 것만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잤을 수도 있고”
“…차는 뭐가 좋아?”
“아무거나. 차 마시러 온 건 아니니까”
잠깐 고민하던 하루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부엌으로 갔다. 차를 준비하느라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하루카의 숨소리를 감추어 버려서, 린은 ‘그냥 차는 주지 말라고 할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고 말았다.
“보리차 밖에 없어”
하루카가 가지고 온 둥근 쟁반에는 차가운 보리차 두 잔과 과자가 놓여있었다. 아마 하루카는 그다지 과자를 즐기지 않았으니, 저것은 분명 누군가가 사온 선물이거나 대접용으로 사놓은 물건일 것이었다. 상체를 일으킨 린은 제 몫의 찻잔에 손을 뻗었다.
“집에는 뭘 가지러 갔어?”
“그냥. 이것저것”
“…일찍 갔다 왔네?”
“집은 영 어색해서 말이야. 고우 잔소리도 싫고”
보리차를 마시는 둥 마는 둥 하던 린은 과자를 반으로 쪼개 입에 넣으며 물었다.
“내가 깨운 거냐?”
정답이었다. 깨웠다고 하기 보단 다시 잠드는 것을 방해한 것이었지만, 하루카에게는 그게 그거였다. 하루카는 따로 대답하기 보단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며 보리차만을 들이켰다. 무언의 표현을 읽어낸 린은 씩 웃고 하루카의 손을 잡았다.
“다시 자는 게 어때?”
“돌아가게?”
“아니, 같이 자자. 나도 졸리니까”
린은 대답하지 않는 하루카의 손을 꽉 잡아 쥐었다. 따뜻하고 힘 있는 린의 손은, 그의 수영법과 꼭 닮아있어 하루카는 그만 미소를 지을 뻔 했다.
“기껏 와서 하는 게 자는 거라니”
“대신 저녁은 내가 할게”
“저녁까지 있다가 가게?”
“싫으면 지금이라도 가고”
이분법적인 사고가 따로 없었지만 하루카는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물론 그 이유는, 린의 제안이 싫지 않아서였다.
“…자자,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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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가볍게 손풀기로 쓰기 시작했는데 의도치 않게 길어져서 두동강 냈습니다...
아마 연휴가 끝나기 전엔... 후편이 올라올 거에요... 아마도... 타분... 메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