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가 있는 것은 육지에서 살 수 없다

 

written by Esoruen

 

 

 

몇 시간이나 잤을까, 린은 팔 안쪽이 허전해 진 것을 눈치 채고 눈을 떴다.

하루카의 방은 잠들기 전과 다름없이 조용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꽉 껴안고 잤던 하루카가 자리에 없다는 것 뿐. 체온을 머금은 이불도, 방주인의 체향이 잔뜩 묻어있는 베개도, 이 방에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린은 문득 방 안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단지 하루카가 없는 것만으로도, 린은 이렇게나 그의 집이 서먹하게 느껴졌다.

 

“어디 간 거야…”

 

먼저 깨었으면 자신도 같이 깨워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생각한 린이 쯧, 하고 혀를 찼다. 하지만 하루카 성격이라면 굳이 잘 자고 있는 자신을 깨우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터. 불평하는 건 자신에게만 손해라는 걸 잘 아는 린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집안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린은 우선 거실로 나가려고 했다가 현관에 서 있는 하루카를 발견했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구나’ 그렇게만 생각한 린은 소리 내어 그를 불렀다.

 

“하루, 거기 서서 뭐해?”

 

제법 큰 소리로 불렀는데도 불구하고, 하루카는 돌아보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막 깨어나 기분이 별로인 걸까. 조금 걱정된 린이 하루카를 향해 한 발자국 내딛었을 때, 멍하니 서있던 하루카가 갑자기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하루?”

 

무언가 이상했다. 린은 불안함에 더 빠르게 하루카에게 다가갔지만 하루카는 린이 자신을 쫒아오는 것도 모르는지 신발도 신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하루!”

 

벌써 세 번을 불렀다. 보통이면 이쯤에서라도 돌아봐야 정상이었다. 제 불안감이 괜한 기우가 아님을 확신한 그는 신발을 신고 하루카를 쫒아가려다가 멈칫했다. 방금 나간 하루카는 분명 맨발이었다. 만약 저대로 멀리라도 나갔다가 길거리에서 발이라도 다치면, 당분간은 물에 들어가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쳇”

 

어쩔 수 없이 하루카의 신발도 챙긴 린은 그가 제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루카는 이미 집 앞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새하얀 맨발은, 이미 여기저기 작은 생채기가 생겨 불그스름했다.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부르려 한 린이었지만, 이번에도 돌아올 것은 분명 침묵뿐임을 알고 있었다. 린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입 다물고 하루카를 쫒아가는 일 뿐이었다.

화가 난 걸까, 아니면 졸음에 대답도 귀찮은 걸까. 그런 가정은 소용없는 짓이었다. 앞서 말한 가정 중 그 어떤 상황도 다 큰 남고생이 맨발로 걸어 나갈 경우는 없었으니까.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저 하루카가 걱정되는 린은, 손에 쥔 그의 운동화를 꽉 쥐었다.

한참을 걷던 하루카는 결국 큰길까지 나와 버렸다. 이쯤 되면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린은 섣불리 하루카의 등에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어…”

 

그때, 린은 쫒아가던 등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무심결에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루카가 향한 곳은, 큰길 너머의 해안가였다.

 

“하루! 야! 잠깐!”

 

바스락. 시멘트만 밟던 발이 모래위에 자국을 남기며 나아갔다.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금빛 모래는 오후의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지만, 린은 그 아름다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아까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속도로 걸어가는 하루카는 어느새 파도의 끝자락이 닿는 곳 까지 가버렸고, 린은 그의 발에 물기가 닿기 전에 두 팔을 뻗어 눈앞의 어깨를 껴안았다.

 

“가지 마!”

 

버럭 소리친 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하루카는 고개를 돌려 린의 말에 반응을 보였다.

 

“…린?”

“너 뭐하는 거야?! 왜 이래?!”

“……”

 

하루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선을 피했다. 마치 커다란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은 표정이었다. 후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실망하는 것 같은 표정. 물론 린은 하루카의 얼굴 위에 드리우는 모든 감정의 대상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린의 손을 잡은 하루카는, 힘들게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일단, 돌아가자”

 

너무 작은 목소리에 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을 뻔 했다. 괴로운 얼굴로 목구멍 안쪽에서 긁어 뱉은 하루카의 말은 건조하고,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연약했고, 밀려오는 파도에 녹아버릴 듯 보잘 것 없었다. 아마 유심히 듣지 않았다면, 입모양만 뻐끔거린 것으로 보였을 정도로 말이다.

린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리고 발갛게 부어오른 하루카의 발을 위해, 기꺼이 제 몸을 내주었다.

 

“업혀”

“어?”

“업히라고”

 

린에 손에 들린 것은 분명 자신의 운동화였다. 저걸 주면 될 텐데, 왜 업히라고 하는 걸까. 하루카는 이해할 수 없었기에 린의 제안을 망설였다.

 

“그냥 걸어서 가도 돼”

“내가 업어주고 싶어서 그래”

 

잔말 말고 업히라는 듯 린은 돌아서서 몸을 숙였다. 이렇게 까지 나오면 거절 할 수 없다. 하루카는 착잡한 표정으로 몸을 널찍한 등에 실었다. 린의 등은 따뜻했다. 티셔츠 한 장을 두고 마주 닿는 체온은, 한 여름 해변의 달궈진 모래마냥 뜨거웠다.

하루카의 집에 도착할 때 까지 린은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았다. 물론, 말도 한마디 걸지 않았다. 그것은 하루카도 마찬가지여서 두 사람은 언어를 모르는 생물들 마냥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 와서야 하루카를 내려준 린은 거실로 가더니,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마셔”

 

하루카는 힘들어하는 린을 위해 탄산음료를 건넸다. 하루카의 집에 오랫동안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탄산음료는, 언제나 이럴 때를 위한 것이었다. 린은 군말 없이 잔을 받아 음료를 들이키더니,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아까, 뭘 하려고 한 거야?”

 

예상했던 질문에 하루카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최근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부터, 그 수면장애의 내용이 몽유병이며, 언제나 바다로 향해버린다는 것 까지, 전부 다. 마치 언젠가 전부 누군가에겐 털어놓을 준비를 했던 것처럼 막힘없이, 하루카는 자신을 괴롭히는 잠버릇을 전부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린이 처음 보인 반응은, 안도 섞인 한숨이었다.

 

“그런 거였냐…”

“뭐라고 생각 한 거야?”

“…난 네가 죽으러 가는 건 줄 알았어. 신발도 안 신고, 불러도 대답도 안 했으니까…”

 

실없는 소리. 실없는 걱정. 그렇게 한 소리를 하고 싶어도 하루카에겐 그럴 자격이 없었다. 말하지 않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고, 몰랐던 린은 단지 자신을 걱정 한 것뿐이니까.

 

“내가 왜 죽어”

“그런가…”

 

린의 대답엔 힘이 없었다. 아마 긴장이 모두 풀려 그런 것 같았다. 자신 때문에 저렇게 진이 빠진 린을 보고 있자니, 굉장히 죄스러워진 하루카는 린에게 다가가 땀에 젖은 얼굴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파고드는 린의 땀에는 약간의 소금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왜 바다지”

 

하루카는 린의 혼잣말에 대답 해 주고 싶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해답을 말할 순 없는 법이었다. 언제나 고민하던 것. 왜 하필, 바다로 자신은 향할까. 그 답을 아는 것은 분명 ‘나나세 하루카’ 자신일 테지만, 의식 속에 사는 하루카는 깊숙한 곳에 잠든 무의식의 하루카를 알 수 없었다.

 

“왜 일거라고 생각 해?”

 

갑작스런 질문에 린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지금 저 말은, 자신을 시험하거나 놀리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분은 금방 풀어졌다. 진지한 하루카의 얼굴은, 도저히 가벼운 마음으로 저런 말을 한 게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제가 괜히 민감하게 반응한 것임을 안 린은, 그제야 하루카의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루카는 물을 좋아하니까. 이건 명쾌한 해답이 될 수 없었다. 만약 저게 이유라면 굳이 바다까지 가기 보단 욕실에 틀어박혀 샤워기로 물을 뿌리거나 욕조에 처박히는 편이 이득이었다.

그렇다면, 바다에 미련이 있어서? 이것은 또 황당한 의견이 아닐 수 없었다. 하루카는 바다에 특별히 미련을 가질 일이 없었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미련이나 원망이 있는 쪽은 자신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린이, 갑자기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하루, 생명의 기원이 바다에서 나왔다는 말은 알지?”

“그 정도라면 알지. 그럼, 나는 생명의 기원을 찾아 바다로 간다는 뜻?”

“그건 아니고”

 

고개를 저은 린은 제 땀으로 젖은 하루카의 손을 으스러뜨릴 듯 쥐었다.

 

“바다에서 시작된 생명 중, 다리가 있고 날개가 있는 것들은 모두 바다로 되돌아가지 못했지”

“거북이는 다리 있어. 펭귄도 날개는 있지”

“그런가, 그럼 말을 바꾸지”

 

손에서 팔, 어깨, 그리고 목까지. 하루카의 온 몸을 훑던 린의 시선이 최종적으로 머무른 곳은 하루카의 귀 밑 언저리였다. 검은 머리와 흰 피부가 만나는 곳, 그 곳의 경계쯤을 지긋이 바라보던 린은,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아가미가 없는 건 바다로 돌아가지 못했지”

“…그래서?”

“어쩌면 하루는, 잃어버린 걸지도 몰라”

 

무엇을? 그렇게 물으려던 하루카의 얼굴로, 린의 입술이 다가왔다. 뺨과 귀, 그리고 그 언저리에 몇 번이나 입을 맞춘 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보는 하루카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가미를, 말이야”

 

 

+

 

원래는 연휴때 완성했어야 했는데..(반성의 방으로 들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