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 2기 엔딩 AU주의
Red Riding Hood
05
written by Esoruen
은신처는 생각보다 편했다. 두 사람은 처음 온 날은 씻고 바로 자버렸지만, 둘째 날부터는 집안을 돌아다니거나 집 밖의 지리를 알아보는 등 은둔생활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당당한 생활을 누렸다.
생활비는 모두 모모타로의 형으로부터 보내져 왔다. 금액은 적지도 많지도 않은, 딱 두 사람이서 한 달을 살 수 있는 정도였다. ‘모자라면 형이 또 보내 준데요!’ 모모타로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니토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낮엔 주로 그들의 공간에서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하며 지냈고, 저녁에는 주변의 식당에 가거나 장을 봐오는 ‘평범한’ 생활을 누렸다.
더러운 일을 하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니토리는 이 평화가 좋았지만, 손 안의 돈이 남에게 받은 것이라는 것이 거슬렸다.
‘언제까지나 신세 질 수는 없는데’
왜 모모타로의 형이 그와 자신의 생활비를 주는지,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모모타로는 최대한 제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고, 니토리는 여전히 그걸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니토리는 제 나름대로의 방법을 생각해 냈다.
“아르바이트요?”
“응, 언제까지나 돈을 받아 쓸 수도 없고…”
“괜찮은데요, 그래도. 꼭 선배가 일 해야겠어요?”
의외로 모모타로는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제 형의 돈 걱정을 덜어주려는 일이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저렇게 표정을 굳히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다니.
“그래도…”
“일 하면 내가 일해요, 선배는 그냥 집에서 저를 위한 밥이나 만들어주세요~ 아, 이거 꼭 부부 같다! 그렇죠, 선배?”
“징그럽게 무슨 소리야!”
농담 한번으로 완전히 분위기가 풀어진 모모타로는 실실 웃으며 감자칩 한 봉지를 뜯었다. 저걸 먹었다간 저녁밥을 먹을 수 없을 텐데. 부모님 같은 잔소리를 하려던 니토리는 입을 꾹 닫고 핸드폰을 꺼냈다.
이 집에 도착한지 이틀째 되던 날 새로 바꾼 핸드폰은 중고 핸드폰인 탓에 여기저기 흠집이 나있었다. 원래는 새 걸로 사고 싶었지만, 자신들에 처지엔 이런 물건이 더 어울린다는 건 니토리도 잘 알고 있었다.
온갖 일을 다 하는 심부름꾼, 지금은 한 조직에 쫒기는 도망자.
핸드폰 번호와 정보를 세탁할 수 있다면 그저 좋은 두 사람에게, 새 핸드폰은 사치였다.
“설마 새 핸드폰으로 추적해 오진 않겠지…?”
“선배는 너무 걱정이 많아서 탓이에요! 이거 드실래요?”
“됐어, 나 저녁 만들 재료 사올게”
오늘 저녁은 간단하게 파스타로 먹어야지. 모모타로의 의견을 묻지 않고 저 혼자 메뉴를 결정한 니토리는 겉옷을 챙겨 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바깥은 막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퇴근하는 사람들로 거리는 북적거렸다.
‘직장인은 고생이 많겠네’
자신 따위가 할 걱정이 아니면서 니토리는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직장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이미 범죄자가 된 자신은 양복을 빼입고 회사에 출근하거나 러시아워에 시달릴 수도 없었다. 니토리는 제가 평생 될 수 없는 그 모습에 연민을 느끼는 자신이 우스웠다.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오래전 일을 떠올릴 때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물론 지끈거리는 건 머리뿐만이 아니었다. 어떨 때는 손가락 하나하나가, 또 어떨 때는 심장이. 니토리에게 과거란 아픔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마치 재앙과도 같았다.
니토리가 3학년이던 시절,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 말고 갑자기 경찰에게 불려나간 니토리는 그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요?”
“그래”
경찰들은 니토리가 놀라지 않게 최대한 차근차근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집안에 강도가 들었고, 강도는 물건과 돈을 훔쳐 달아나려다가 그의 아버지에게 발각되었다. 강도와 아버지는 몸싸움을 했고, 아버지는 그때 살해했다. 그리고 강도는 그 싸우는 소리에 놀라 방에서 뛰쳐나온 어머니까지 죽였다. 비극적인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을 들은 니토리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거, 거짓말이죠?”
“…부모님은 지금 근처 병원에 있어. 우리와 함께 가자. 범인은 다행히 잡혔으니까…”
경찰은 울음을 터뜨리려는 그를 부축하며 그렇게 말했지만, 니토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침까지 멀쩡하게 살아있던 부모님이 죽다니. 그것도 강도에게 살해당하다니. 그런 것에 충격을 먹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결국 니토리는 그 자리에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실신할 듯, 온 힘을 다해 우는 니토리는 경찰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충분했다.
장례는 친척의 도움으로 어찌저찌 해결했다. 내년이면 사회생활이 가능한 나이였으니, 생활비도 보험금만 있으면 충분했다. 하지만 니토리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자신을 죽인 강도는 멀쩡히 살아있는데 죽은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현실이었다.
견딜 수 없는 충격에 등교조차 거부하던 니토리의 곁에 남아준 것은 모모타로였다. 모모타로는 언제나 학교를 마친 후에는 니토리를 만나러 와주었고, 그에게 심리치료를 권하거나 좋은 곳을 데려가 주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의 관계에서 모모타로가 니토리를 챙겨준 적이 더 많았던 시절은 그때 정도 뿐 이었다.
하지만, 이 이후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그때 모모타로는 니토리에게 너무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던 것이 더 좋았을 수도 있었다.
“…휴”
좋지도 않은 기억을 자꾸 떠올려 봐야 상처 입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과거로 걸어 들어가던 니토리는 정신을 차리고 마트로 가 저녁거리를 샀다. 토마토소스와 면, 약간의 야채와 치즈까지 산 그는 맛있게 제 음식을 먹을 모모타로를 상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응?”
집 앞 골목까지 온 니토리는 멀리서 보이는 붉은 머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노을과 닮은 붉은 머리, 하지만 모모타로보다는 체격이 좋은 남자는 분명 니토리가 아는 얼굴이었다.
‘모모타로네 형?’
분명 이름이 미코시바 세이쥬로였던가. 니토리는 왜 그가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몰래 그의 뒤를 밟았다.
세이쥬로는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는지, 앞만을 보며 걷고 있었다.
‘모모타로를 만나러 온 걸까’
그의 예상대로 세이쥬로는 두 사람의 은신처, 린의 집 앞에 멈추었다. 잡 앞에서 2층을 살피던 세이쥬로는 곧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고, 짧은 통화 끝에 집에서 모모타로가 나왔다.
“왜 온 거야, 형”
모모타로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형을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귀찮아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세이쥬로는 자신을 노려보는 동생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어색하게 웃었다.
“형제끼리 만나는데 이유가 있어?”
“형이 먼저 조심하라며? 이렇게 만나러 와도 괜찮은 거야?”
“음. 괜찮아 이 정도는! 그리고, 여긴 안전하다니까? 린이 얼마나 대단한데!”
못마땅해 하는 모모타로의 어깨를 감싸 안은 세이쥬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모모타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그래도 네 덕분에 잘 해결 되었어”
“그럼 빨리 가!…생활비는 고마워”
“그래, 그래! 더 필요하면 말해! 린이랑 잘 지내고!”
짧은 만남은 담백했다. 인사를 한 세이쥬로는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버렸다. 두 사람을 골목길에 서서 우두커니 바라보던 니토리는, 모모타로의 형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모모타로에게 다가갔다.
“모모군, 방금 그거 모모군 형이지?”
집으로 돌아가려던 모모타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니토리를 보고 표정이 굳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더 붉어 보일 정도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모모타로는 니토리의 팔을 꽉 잡고 물었다.
“방금, 봤어요?”
“응?”
“방금 무슨 이야기 했는지 들었어요?”
“아, 아니…”
사실 다 들었지만 니토리는 거짓말을 했다. 아무리 착한 그라도, 거짓말 정도는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상대가 모모타로라면, 더더욱 자연스럽게 말이다.
“무섭게 왜 그래 모모군…?”
아프다는 듯 그가 인상을 쓰고 묻자 모모타로는 순순히 손을 놓았다. 미안해하는 표정은 덤이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들어가요! 밥해 주셔야죠~”
어색하게 웃은 모모타로는 앞장서서 2층으로 올라갔다. 니토리는 그 뒤를 따라가면서도, 마냥 편하지 않은 얼굴로 손에 든 장바구니를 꽉 쥐었다.
수상했다.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다. ‘네 덕분에 잘 해결되었다’ 그 잘 해결된 일이란 뭘까.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니토리는 난생 처음으로, 모모타로의 뒤를 캐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