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엄청 오랜만에 쓰는 듯
레이커맨은 사랑입니다
아.. 시험기간 시르다 완전 시르다 시험 치기싫다..(도피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이 짙은 안개는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독한 습기, 햇볕이 없는 이른 아침은 늪과도 같다. 레이븐은 메마른 무법지대의 모래바람을 떠올리며 흐린 시야 속 어른거리는 불빛을 향해 나아갔다.
커맨더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멀고도 험했다.
사실, 무법지대에서 황도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레이븐은 이 거리차를 조금 힘들어했다.
그는 커맨더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더 멀리도 갈 수 있었다. 커맨더가 아랫세계로 가버린다면 기꺼이 마가타를 타던 절벽에서 떨어지든 아랫세계로 갈 것이었고, 명을 달리해 저승으로 간다면 자신도 따라서 죽을 생각이었다. 그런 그에게 무법지대와 황도 정도의 거리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가 힘들어 하는 것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었다.
“아”
점점 또렷해지는 불빛 근처, 새까만 망토가 천천히 나부꼈다. 가까이 다가오는 그림자는 그리운 얼굴. 물고 있던 담배의 재가 코트 끝에 떨어진 것도 모를 만큼, 레이븐은 다가오는 커맨더의 그림자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어째서 안개는 이른 아침에 끼는 것일까.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알려주지 않는 안개는 감정이 메마른 레이븐마저도 초조하게 만들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는 레이븐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다가오는 그림자를 붙잡았다.
“오랜만이네요”
손목을 잡힌 커맨더는 불쑥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레이븐의 얼굴에 놀라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차분하게 혹은 다정하게, 오랜만이라고 인사할 뿐. 단정하게 웃는 커맨더의 손목은 또 저번보다 조금 말라있었다.
“너, 또 제대로 안 먹지”
“…지금은 전쟁 중이니, 넘어가 주지 않을래요?”
“전쟁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레이븐의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정말로 지금의 황도군은 먹고 살기 위해서 전쟁을 하고 있었으니까. 천계의 모든 에너지를 삼켜버리려는 안톤을 한시라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황도뿐만이 아니라 파워스테이션도 위험해 질게 분명했다. 아니, 사실 이미 위험하기도 했다.
“내 걱정은 말아요”
나는 괜찮으니까. 그렇게 말하겠지. 레이븐의 예상은 적중했다.
“나는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
날이 갈수록 말라가는 커맨더의 손목은 그가 끼고 있는 장갑처럼 새하얀 색이었다. 어떻게 군인의 피부가 이렇게 흴까. 온 몸을 다 덮고 있는 그의 군복과 사령관이라는 그의 지위를 생각하면 답은 이미 나와 있었지만, 레이븐은 늘 커맨더의 새하얀 피부가 신경 쓰였다.
아니, 그냥 커맨더 자체가 신기했다.
어떻게 이런 남자가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난 말이죠”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레이븐과 눈을 맞춘 커맨더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당신이 인상 쓰는 게 더 보기 싫어요. 우린 늘 붙어있을 수 없으니까. 만날 때만이라도 웃어주면 안될까요?”
“…고집불통이군”
“어쩔 수 없어요. 그만큼 레이븐이 좋으니까”
분명 사실만을 말하는 건데, 레이븐은 커맨더의 저 말이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왜 그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걸까. 단지 내가 그를 사랑하니까 그도 나를 사랑해 주는 걸까. 피해의식이라면 피해의식이고, 자기비하라면 자기비하적인 이런 생각은 언제나 레이븐을 괴롭게 했다.
이렇게 닿고 있는데도, 레이븐은 환영을 붙잡고 있는 것 마냥 불안했다.
모든 것은 제 과한 걱정 때문임을 알면서도, 레이븐은 제 그림자에 눌어붙은 불안을 떨쳐낼 수 없었다.
손목을 당겨 커맨더를 제 품에 안은 그는, 가볍게 커맨더의 입술을 깨물었다.
“날 너무 좋아하면 곤란한데”
“그런가요?”
“그래”
“괜찮아요, 곤란한 일은 익숙하거든요”
커맨더의 대답에 피식 웃어버린 레이븐은 커맨더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안개는 조금씩 흐려졌지만, 레이븐은 그게 반갑지 않았다. 이 안개가 사라지면 커맨더도 같이 사라져버릴 것 같은, 몹쓸 불안이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감각을 무시하기 위해 레이븐은 커맨더에게 거칠게 키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