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written by Esoruen
날이 차가워지자 열차 안에는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아파, 시려, 뻐근해.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조를 한번이라도 받은 병사들이었다. ‘어쩔 수 없어’ 열차의 개조를 담당하는 군의관 디스티는 아파 죽어가는 병사들에게 그런 대답밖에 하지 않았다. 아무리 완벽한 개조라고 해도 결국 제 온전한 시체를 변형시키는 일. 따뜻한 혈액이 돌지 않는 기계 신체는 이렇게 날이 추워지면 자주 말썽을 일으키곤 했으니 디스티의 입장에선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억울하면 다시 개조 받던가. 이번엔 금속이 아니라 사기 재질의 파츠를 실험해 보고 싶거든”
저렇게 이야기하는 미친 의사에게 누가 치료를 부탁하겠는가. 열차의 반란군들은 어쩔 수 없이 시린 몸을 안고 살아야 했다. 개중에선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한 번 더 개조를 받아보겠다’ 며 나선 병사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꼴이 어떻게 되었나는 말하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정도였다.
이쯤 되면 어째서 디스티가 무사히 열차 안에서 생활할 수 있을지 신기했지만, 병사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 미치광이 의사가 열차의 유일한 권력자인 총통을 구한 은인이고, 그의 몸까지 개조해준 대단한 몸이라는 것을.
“총통~ 있어?”
모두가 잠든 밤, 보초병들의 눈을 피해 테슬러의 방으로 간 디스티는 커다란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또 뭔가 수상한 걸 넣고 다니는 건가’ 이 꼴을 개조와 디스티를 극도로 싫어하는 코일 대위가 봤다면 그런 말을 했겠지만, 군의관에게 너그러운 총통은 달랐다. 무엇보다 그에게, 저 보온병은 낮선 것이 아니었다.
“뭐야, 오늘은 한가한가 보지? 디스티”
“그거야~ 요 며칠은 제국군이랑 붙는 일이 없어 부상자도 없었잖아? 부상자가 없으니 개조할 놈이 없고. 따분해 죽겠다고!”
“그럼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녀석들이나 봐주지 그래?”
테슬러는 개조당한 군인들의 고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도 개조당한 몸이었으니까. 날이 추워지면 의안(義眼)이 욱신거리거나 몸의 구석구석이 쑤시는 경험을 자주 했고, 자신과 같은 부하들의 불평도 잔뜩 들었다.
“난,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고~?”
병사들을 돌보는 것이 군의관의 일일 텐데, 디스티는 그것을 한가할 때 할 잡일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하긴, 이 녀석은 군의관이라기 보단 개조박사 같은 느낌이었지’ 반쯤 포기한 테슬러는 두 다리를 쭉 폈다. 오늘도 하루 종일 열차를 손보고 전쟁 준비를 하느라 지쳐버린 몸은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아직 난방을 하기엔 이른 시기일 텐데. 총통은 계절이 다가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걸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우리 총통님도 온 몸이 욱신욱신 거리나~?”
“미리 말하는데 보수용 개조라면 안 받아”
“안 해! 안 해! 그거 영 평판이 나빠서 말이야. 쯧. 이 열차에도 내 미학을 알아주는 녀석이 이렇게나 없다니. 후회될 정도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디스티는 진심으로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제국을 나온 이유는 좀 더 재밌는 생활을 위해서였는데. 물론 이 전쟁이 넘쳐나는 열차는 그에게 딱 좋은 개조재료창고가 되어주었지만, 그의 미학을 알아주는 자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굳이 있다면 총통 정도일까. 하지만 테슬러도 과한 개조에는 거부감을 보이는 차에 함부로 메스를 쓸 수는 없었다.
“자, 마셔”
보온병을 연 디스티는 내용물을 뚜껑에 부어 테슬러에게 주었다. 약간의 단내와 원두를 볶은 냄새. 예상과는 다르게 그가 가져온 것은 평범한 커피였다.
“안에 뭘 넣었나?”
“거 의심하기는! 날 뭐로 보는 거야? 만약 내가 뭔가 특별한 걸 먹이고 싶었다면… 이런 것에 넣기 보단 직접 총통님 입에 쏟아 부었을걸~?”
기묘하게 웃은 디스티는 보온병을 총통에 품에 안겨주고 방을 나왔다. 뭔가 미심쩍긴 하지만 그래도 성의는 성의니 커피를 버릴 순 없었던 테슬러는, 잠깐 고민하다가 조금씩 식어가는 커피를 입 안에 흘려 넣었다.
아, 짧은 감탄사 안에는 기쁨이 들어있었다.
커피는 평범하게 맛있었다. 아니, 사실 총통 자신이 직접 탄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의사란 요리에도 재능이 있던 것이었나. 조금 감탄하고 만 총통은 몇 잔 더 커피를 마시고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후우”
한숨을 쉬자 입김이 만들어졌다. 딱히 열차 내부가 추워진 것은 아니었으니, 이건 아마도 총통의 몸이 따뜻해졌다는 증거겠지. 속이 따뜻해지자 욱신거리는 고통은 금방 줄어들었다. 다른 병사들의 몸을 봐 주기는 귀찮다는 녀석이, 총통에게는 몸을 데울 커피까지 바치다니. 이런 차별대우를 병사들이 알면 달갑게 보진 않을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 미친 군의관은, 아마도 이 고집불통 총통을 좋아하는 것 같았으니까.
+
재배소년이 저에게 덕통사고를 일으켰습니다
디스티 사랑해 흑흑 너 때문에 내가 미쳐
모두 총통조 파주세요 군의관x총통 파주세요 디스티 ㅠㅠ 사랑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