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라] 무제

from Fiction/Other 2014. 11. 13. 22:36

 

※ 데먕이의 100번 달성표 보상. 늦어서 미안하다...(쥬륵)

 

 

1인실 병실의 장점은 무엇이 있을까. 아마 이것저것 많겠지만 가장 좋은 점은 모르는 사람과 병실을 함께 쓸 수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닐까. 몸을 회복하는 예민한 시기에 낮선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그러니 혼자 몸을 회복 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곧, 1인실은 누군가 찾아오지 않으면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뜻.

부모님이 바쁜 아라키타에게 1인실의 여유로움은 독과 같았다.

 

“야스토모, 괜찮아?”

 

학교가 마치자마자 연습조차 빼고 달려온 신카이는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었다. 조용한 병실 안, 아라키타는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자고 있을 거라 짐작했던 신카이는 멀쩡히 깨어있는 그를 보고 잠시 놀랐지만, 이내 웃음을 되찾았다.

 

“이거, 오늘 길에 사왔어. 좋아하잖아”

 

자신을 보지도 않는 아라키타에게 다가가 차가운 콜라를 내민 신카이는 불안해 보였다. 안절부절 못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까. 신카이는 괜히 병실 이곳저곳을 보며 어질러진 곳을 치우는 등 도저히 얌전히 있질 못했다.

 

“야, 돼지”

“응?”

 

그건 신카이가 병문안을 온지 30분 만에 아라키타가 처음으로 말문을 연 것이었다.

 

“내일부턴 오지 마”

“야스토모”

“매일 와서 시끄럽게 하는 거 존나 귀찮으니까 그냥 오지 마. 내일은 오면 바로 쫒아낼 거니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정도는 눈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창가만 보는 아라키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똑. 똑. 침대 옆 탁자위에 올려둔 차가웠던 콜라 캔의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바닥에 고여 웅덩이를 만들었다. 신카이는 그 물방울이 꼭 눈물같이 보였다.

 

“의사 선생님이 말 했잖아, 재활만 잘 받으면…”

“닥쳐!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역겨우니까!”

 

시선을 신카이를 향해 돌린 아라키타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화가 나 휘두른 팔은 애꿎은 콜라 캔을 치고 말았고, 불쌍한 캔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뒹굴어 떨어졌다.

살짝 들린 새하얀 이불 밑으로 보이는 것은 붕대를 감은 왼쪽 다리.

드러난 아라키타의 다리를 본 신카이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

 

“네가 뭘 알아! 난, 나는! 이게 벌써 두 번째란 말이야! 이젠 신물 난다고! 어쭙잖은 희망 같은 거 역겹다고! 그러니까 입 닥쳐!”

“아냐, 이번엔, 이번엔 꼭 나을 거야!”

“네가 어떻게 확신 할 수 있는데!”

 

아라키타의 말은 사실이었다. 자신은 그저 위로의 말을 해 주고 싶었고, 진심으로 그가 완치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 바람을 이루어 줄 수는 없었다. 자신은 신도 마법사도 아닌, 그저 평범한 남고생일 뿐이었으니까.

바닥을 굴러다니는 찌그러진 캔을 주워 든 신카이의 머릿속에, 악몽 같지만 현실이었던 그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언제나 하던 것처럼 연습을 나갔던 그 날은 화창하고 따뜻한 기분 좋은 날씨였다. 하코네 산을 오르며 사이좋게 훈련하던 그날, 어째서 그런 사고가 일어나고 만 걸까. 신이 있다면 자신이나 아라키타 둘 중 하나를 정말로 미워하는 것은 아닐까. 신카이가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아라키타의 사고는 갑작스럽고 절망적이었다.

낙차는 간혹 일어나는 사고였다. 대부분의 낙차는 조금 까지거나 삐는 정도에서 그치기 마련이었지만 아라키타는 그 정도의 부상에서 그치지 않았다. 발목이 아예 나가버린 아라키타는 땅바닥에서 웅크려 소리치고 있었다. 고통과 믿기지 않는 사고의 충격에, 미친 사람처럼, 혹은 덫에 걸린 맹수처럼 맹렬하게 울부짖었다.

찌그러진 콜라 캔은 그때의 아라키타와 쏙 닮아있었다.

축축했고, 더 이상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먼지투성이였다.

 

“울지 마, 야스토모”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을 가린 아라키타의 들썩이는 어깨는 한마디의 말 보다 더 정확하게 그의 기분을 표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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