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49번 달성표 21번째 연성인데 엄청 길어져서 그냥 제목을 주고 조각글이 아닌 단편이 된 글

디트프라에 뽐뿌와서 이런 짓을...(마른세수)

 

 

 

 

리스트컷 증후군

written by Esoruen

 

 

 

기계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이 될 수 없었다.

프라임은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굉장히 꺼려했다.

그는 우수한 메카닉이었기에 얼마든지 놀라운 기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능을 가진 기계는 물론, 정밀한 작업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기계나 사람과 비슷한 모양새를 한 기계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기계, 프라임은 제 연구실을 한가득 채운 자신의 발명품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질색인 그는 언젠가부터 사람을 만들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만들 수는 없었다. 아니, 그 누구라 해도 사람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낳을 수는 있지만, 혼자서 창조해 낼 수는 없었다. 신만이 가능한, 아니 어쩌면 신도 불가능할 그 일을 위해, 프라임은 일생을 걸었다.

그리고 일생과 바꿔 얻은 것은 남들에게 천재라고 불릴만한 성과들과 절망 뿐.

그는 남에게 인정받은 것 정도로 제 성취감을 채울 수 없었다.

 

“윽”

 

날카로운 것으로 손목을 긋는 것은 익숙한 의식이었다. 마치 제가 만든 불쌍한 피조물에게 생명을 부여하듯, 프라임은 꼭 제가 기계 하나를 완전히 완성했을 때 마다 손목을 그어 피를 내었다. 금속의 차가운 기계 위에 떨어지는 프라임의 피는 검붉었다. 탁하고 붉은, 혈액이 없는 기계들은 무엇 하나 프라임을 걱정해 주지 않았다. 딱 하나, 높은 지능을 가진 HS-1은 그의 이 집착에 가까운 자해를 주의하고 염려하고 있었지만 프라임을 말릴 수는 없었다.

줄줄 흐르는 피를 대충 닦은 그는 붕대를 꺼내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게 손목을 꽉 싸맸다.

분명 아파야 하는 일일 텐데. 프라임은 엉망이 된 손목을 가볍게 쥐었지만 아무 고통도 느낄 수 없었다. 이것이 ‘익숙해 진다’는 걸까. 아니면 자신도 기계와 같이 이제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된 걸까.

똑똑한 프라임이었지만, 이 질문의 답만큼은 그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뭐, 어느 쪽이던 이젠 상관없는 일이지만’

 

완성된 기계를 창고에 쑤셔 넣은 후, 프라임은 또 제 이상과 가까운 피조물을 만들기 위해 빈 종이를 꺼냈다. 조금 더 인간과 가까운, 인간보다 뛰어난, 인간이 동경할만한, 제 더러운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될 만큼 완벽한 기계를… 자신은 그 이상을 달성해야만 한다.

그는 그게 자신의 자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붕대가 또 바뀌었네?”

 

군에 납품할 병기 제조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황도군에 왔던 프라임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남자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아, 귀찮게. 인간을 닮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는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언뜻 보면 모순적인 일일지 몰라도, 자세히 생각해 보면 모순적이라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과 이야기하지 못하는 외로움을 메꾸기 위해, 사람과 흡사한 기계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그는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은 질색했으며 그중에서도 이렇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을 가장 싫어했다.

 

“무슨 상관이야?”

“걱정해 주는 것뿐이야, 또 허튼짓 하는 건 아닌가, 해서”

 

아, 정곡을 찔린 가슴이 욱신거렸다.

프라임은 업무관계로 여러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렇게 단번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맞히는 사람은 이 남자뿐이었다. 디스트로이어라고 하던가, 황도군 특수부대 소속인 그는 언제나 한가한 얼굴로 앉아있거나 땀 흘리며 훈련하다가 프라임이 보이기만 하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곤 했다.

‘워낙 사교성이 좋은 남자니까요’ 커맨더는 프라임이 맨 처음 디스트로이어에 대해 물어왔을 때 그렇게 답해주었었다. ‘별로 나쁜 인간은 아니니 인상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 커맨더는 프라임의 비사교적인 성격을 고려해 그렇게 말한 것이겠지만, 그는 이 친절에 별로 감동받지 못했다.

그는 그저 인간이 싫을 뿐이었으니까.

질투하고 사랑하고 서로를 물어뜯는, 인간 말이다.

 

“너랑은 상관없어 근육덩어리”

“윽, 잠깐 그 말투는 너무하잖아?”

“불만이면 입 닥치고 네 할 일만 하면 돼. 특수부대라는 게 꽤 한가해 보이네?”

 

가시 돋친 프라임의 말에도 디스트로이어는 웃어 보일 뿐, 입을 멈추지 않았다.

 

“뭐, 이 시간만 한가할 뿐이야. 방금 전까진 또 훈련 받고 왔고”

“허”

“그리고 너도 이런 한가한 나랑 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한가해 보이는데 뭐”

 

쯧. 가볍게 혀를 찬 프라임은 더 이상 대꾸하기도 싫다는 듯 획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언제부터 자신을 그렇게 잘 알았다고 저 남자는 자신에게 관여해 오는 걸까.

프라임은 아무리 거친 반응을 보여도 조금도 화내지 않는 디스트로이어가 신기하고 짜증났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만 욕을 해줘도 성질을 내거나 표정이 구겨졌는데, 저 무한에 가까운 긍정적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란 말인가. 만약 자신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 욕을 들으면 화가 날 텐데.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공포에 가까웠다.

프라임은 디스트로이어가 무서웠다. 무섭고 신기하고, 두려웠다.

 

“어서 와요, 주인님! 어서와!”

 

기계실로 돌아오자 HS-1은 반가운 표정으로 프라임에게 날아왔다. 어지간한 어린애들보다 지능이 높은 이 기계는, 비록 차가운 몸을 가지고 있어도 유일하게 프라임의 말상대가 되어주는 그의 친구였다.

 

“침입자는 없었고?”

“없었어! 없어!”

“그래. 알았어”

 

마치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듯, 부드럽게 기계를 쓰다듬은 프라임은 작업용 장갑을 끼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새로 그린 설계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프라임은 뭐라도 좋으니 손을 움직이고 싶었다. 부품 정리라도 하지 않으면, 방금 전 만난 남자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프라임, 프라임 주인님!”

 

공구상자를 열어 공구를 정리하는 프라임의 곁을 빙빙 돌며 HS-1은 끝없이 중얼거렸다.

 

“10분 후 저녁! 먹지 않으면 안 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지금 시간, 5시 40분!”

 

기특하기도 하지. 마음은 없어도 지능은 있는 그의 피조물은 주인의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그의 말에 충실이 대답해 주었다.

아마 생긴 것만 제외하면, 프라임이 만든 것 중 가장 인간다운 것은 이 기계겠지.

그는 HS-1을 정말로 좋아했다. 프라임에게 있어 이 금속 친구는 단순한 기계가 아닌 제 자식과 같은 존재였고, 가족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프라임은 두 팔을 뻗어 자신을 걱정하는 사랑스러운 작품을 껴안았다.

두 팔에서 느껴지는 쇠의 감촉은, 차갑고 딱딱했다.

 

“고마워”

 

아마 이 무기질의 집합체는 자신이 무엇에 고마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

인간과는 한참 떨어진 제 자식을 안고 있으려니, 프라임은 괜히 눈물이 나왔다.

아아, 이대로는 안 돼.

프라임은 온기를 찾듯 공구상자에서 커터 칼을 꺼내 손목의 붕대를 끊었다.

드러난 흰 손목에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표식이 가득했다. 붉은 선, 갈색 선, 이제는 연해져 자국만 남은 선. 그 모든 것은 프라임의 이상에 닿지 못한 비참한 실패작의 수와 일치했다.

 

“윽!”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 위, 커터 칼로 선을 따라 그은 그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HS-1과 설계도 위 검붉은 액체가 튀었지만, 그걸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었다.

프라임은 몇 번이나 상처를 덧내는 것을 반복하다가, 지쳐서 커터 칼을 놓았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다만, 어째서인지 누가 말려줬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희망이 목구멍 안쪽을 간지럽혔다.

 

 

 

“있잖아, 그렇게 죽고 싶어?”

 

아, 오늘도 역시나. 작게 한숨을 쉰 그는 시선을 피했다.

이른 아침, 프라임은 바람을 쐬기 위해 나온 산책에서 디스트로이어와 만나고 말았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것보다 아침형 인간이었어? 의외군”

“아침형 인간은 아니지만, 새벽훈련을 다녀오는 길이라. 그리고 갑자기가 아닐텐데”

 

디스트로이어의 웃는 눈은 프라임의 손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 확실히 이게 ‘갑자기’라곤 할 수 없겠지. 프라임은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이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죽고 싶었다면 머리에 총을 쐈겠지”

“그럼 왜 그러는 거야?”

“네게 설명해도 모르는 일이야. 그러니까 더 이상 상관 하지 마. 애초에, 왜 그렇게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거야?”

 

프라임은 처음 디스트로이어가 말을 건 날을 떠올렸다. 그날도 그는 프라임의 손목에 대해 제일 먼저 물어왔었지. ‘그거 다친 거야?’ 그렇게 묻고 대답이 없자 ‘붕대 풀리겠네, 내가 다시 묶어줄까?’ 라고 친절을 베풀려했다.

‘어차피 이 녀석도 내 천재성에 혹해 수작을 부리려는 거겠지’ 인간에게 이미 너무 많은 실망을 해온 프라임은 자신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디스트로이어가 싫었다. 어차피 이 녀석도 같을 거야, 이 녀석도 이렇게 다가와선 자신을 이용해 먹고 사라질 거야.

친절한 녀석의 반은 멍청이고 반은 사기꾼이라는 것이 그의 신조.

그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그거야, 너도 일단 내 동료잖아?”

“내가 왜?”

“황도군을 돕고 있잖아? 아니야?”

“그것만으로 넌 동료라고 할 수 있는 건가? 그리고, 동료라는 것 하나 만으로 간섭하다니 웃기네”

 

더 이상 말을 이어봐야 소용이 없는데. 프라임은 잘도 떠들고 있는 자신이 신기했다. 이렇게 개인적인 말을 길게 해 본적이 언제였더라. 그는 언제나 사담은 HS-1이나 제 피조물들과 나누었지, 타인에게 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이상해, 무섭고 이상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뭐, 일단은 네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와, 이젠 커밍아웃 이야?”

“어,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뭐, 맞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잠이 덜 깼나 보군. 세수라도 하고 와”

 

조소를 지으며 프라임은 대화를 중단시켜버렸다. ‘마음에 들었으니까’ 솔직하고 대담한 대답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이정도로 움직이지 않았다. 인간은 다 거짓말쟁이, 물론 자신도 거짓말쟁이. 더 이상 이 남자와 얽혀봐야 머리만 복잡해지겠지. 도망치듯 자리를 뜨려던 프라임은, 손목에 느껴지는 온기에 머릿속이 하얗게 타올랐다.

 

“잠깐, 프라임!”

 

급하게 닿은 손길은 거칠었다. 엄청난 힘으로 프라임의 손목을 잡은 디스트로이어는, 프라임의 표정이 구겨지는 것을 보고나서야 제가 잡은 것이 붕대가 칭칭 감겨있는 손목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프잖아!”

 

화들짝 놀라 손을 뿌리친 프라임은 그대로 기계실로 달아났다. 어제 덧낸 상처에서 피가 나오진 않았을까. 다급하게 손목을 확인하자 붉게 물든 붕대가 보였다. 역시 터졌구나. 한숨을 쉬고 붕대를 갈기 위해 더러워진 붕대를 풀다가, 저릿저릿한 손목에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어째서 아픈 걸까.

어제까진 문질러도 주물러도 아프지 않았던 손목이, 어째서, 오늘 디스트로이어가 붙잡은 것만으로도 아프게 된 것일까.

 

“말도 안 돼”

 

새 붕대를 감을 정신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벽에 기대앉은 프라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손목의 피는 멈췄지만,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그게 너무 분해, 프라임은 조금 울어버리고 말았다.

 

 

 

프라임은 3일 동안 기계실에 틀어박혀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은둔 생활을 하는 동안 기계를 만들거나 설계도를 그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물론 손목을 긋는 일도 하지 않았다. 마치 연료가 없는 기계처럼, 프라임은 그저 우두커니 방구석에 앉아 있기만 할 뿐. 관절이 다 굳어버릴 정도로 움직이지 않던 그를 찾아온 것은 프라임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물론, 디스트로이어가 프라임을 이렇게 만들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괜찮아?”

 

열리지 않는 기계실의 문 앞, 디스트로이어는 언제나와 같이 말을 걸어왔다. 지금 이시간이라면 훈련이 있을 시간일 텐데, 오늘은 아마 훈련도 빠져나와 프라임을 만나러 온 모양이었다.

 

“미안해, 그렇게 세게 잡으려던 건 아니야”

 

그의 사과는 잘못되어 있었다. 프라임은 겨우 손목이 아픈 정도로 화가 나 방안에 틀어박힌 것이 아니었으니까. 프라임은 단지 제 마음이, 제 몸이, 그 어떤 고통과 자해에도 꿈쩍도 않고 붉은 피만 흘리던 손목이 디스트로이어에겐 너무나도 인간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싫은 것뿐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싫다고 하기 보다는 무섭다는 것이겠지.

모르는 것은 무섭고, 무서운 것은 싫었다.

혐오와 공포는 그렇게 한 끗 차이의 감정이었다.

 

“프라임? 안에 있는 거지?”

“주인님! 주인님 불러!”

 

시끄러운 바깥을 인식한 HS-1이 프라임의 곁을 빙빙 돌았다. 메마른 눈동자는 자신을 부르는 피조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힘겹게 문 앞으로 걸어갔다. 멍이 든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의 손을 잡았던 뜨거운 손을 떠올린 프라임은, 괜히 숨이 막혀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있어”

 

안간힘을 써 짜낸 대답은 그게 다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디스트로이어는 기쁜지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있구나, 미안해. 그, 화 난거야? 요즘 안 보여서 다들 걱정하고 있다고?”

“다들? 도대체 누굴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커맨더나 다른 병사들. 그리고 나”

“웃기지 마! 다들 내 기술이 필요할 뿐이잖아?! 난 어찌되든 상관없고, 그저 내 머릿속 지식이 무사하냐가 궁금한 거겠지!!”

 

며칠간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는데 프라임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온 걸까. 기계실 밖까지 그 분노가 전해질 정도로 버럭 소리친 그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발로 찼다. 쿵쿵. 꿈쩍도 않는 문에서 나는 소리는 요란했다.

 

“내가 마음에 들어? 웃기고 있네! 넌 나한테 뭘 바라는 거지?”

“바라는 거 없어. 있었다면 진작 부탁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왜 자꾸 나에게 신경 쓰는 거야, 젠장!”

 

마치 남은 기력을 그 외침에 다 쏟아 부은 것처럼, 저 말을 마지막으로 프라임은 문 앞에 주저앉아버렸다. HS-1은 반응이 없어진 주인을 보고 위험을 인지한 것인지, 마음대로 문을 열어주며 소란스럽게 디스트로이어를 맞이했다.

 

“주인님, 이상해! 주인님이!”

“윽, 뭐야 이녀석”

 

깜짝 놀라는 것도 잠시, 디스트로이어는 작고 귀여운 HS-1의 외모에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그는 작게 웃으며 프라임에게 시선을 돌렸다. 태아마냥 웅크린 프라임은 문이 열린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가볍게 프라임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침입한 그는, 언제나처럼 웃고 있었다.

친근하고 다정하고, 프라임은 모르는 애정을 가득 담은 그 웃음을.

 

“프라임”

 

주저앉은 프라임을 일으킨 그는, 여윈 몸을 꽉 끌어안았다. 엉망진창인 손목은 붕대도 장갑도 없어, 평소엔 볼 수 없던 처절한 프라임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넌, 사람이 무서운 거야?”

 

질문에 답할 정도의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프라임은 가볍게 눈을 깜빡여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그렇구나. 작게 대답한 디스트로이어는 제 주변을 날아다니는 말하는 메카를 향해 웃어보였다.

 

“하지만 외로워서, 이런 걸 만들어 내고 있는 거고”

 

이것도 정답. 프라임은 신기할 정도로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이 남자가 또 한 번 무서워졌다. 하지만 이번에 다가온 무서움에는 거부감이 들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이 남자에게 제 속을 드러내고 싶다는, 알 수 없는 욕구마저 들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나는 다 이해해. 그렇게 말하는 눈으로 프라임과 눈을 맞춘 디스트로이어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있잖아 프라임, 아무리 그래도 사람은 기계와 있지 못해. 사람과 있어야 하지. 사람과 닮은 기계도 결국 기계지, 사람이 아냐”

“알아… 알지만…”

“…정 힘들면, 내가 같이 있어줄게. 나만 믿어. 나는 프라임을 위해서라면 뭐든 괜찮으니까”

“왜 그렇게 까지?”

 

‘네가 좋으니까’ 설마 그런 시시한 대답을 하진 않겠지. 프라임은 제 생각을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대답을 바랬다. 이것이 인간. 자신이 만들고 싶고, 자신이 그리워하지만, 절대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인간.

 

“나는 널 사랑하니까”

 

디스트로이어의 대답은 기대에 충실했다. 아니, 기대 이상이라고 할까.

좋아한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은 전혀 무게가 틀렸다.

힘없이 안겨있던 프라임은, 크게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디스트로이어의 옷깃을 꽉 잡았다.

 

“바보 같아”

“하하, 음. 하지만 진심이야. 사랑해. 그러니까. 더 이상 널 다치게 하지 마. 이상한 걸 만들지도 말고”

“아니, 난 이걸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어. 이제 와서 그만 두는 건 있을 수 없어”

 

원하는 답을 들었는데도 프라임은 제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그에게는 확실히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는 일도 중요했지만, 그만큼 연구자로서의 지식욕과 성취욕도 강했다. 아마 자신은 제 이상을 구현하기 전 까지, 절대 이 일을 멈추지 못할 것이었다.

 

“…난, 만들 거야. 인간과 다름없는 메카를. 마음이 있는 기계를”

 

결의에 찬 목소리에 디스트로이어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프라임을 정말로 좋아하는 디스트로이어였기에, 그는 프라임을 사랑해 주고 싶었고 저 소원을 이루어 주고 싶었다.

 

“…그러면 말이야”

 

잠깐 생각하던 디스트로이어는, 프라임과 눈을 맞추고 상냥하게 물었다.

 

“내게 아주 좋은 생각이 있어”

 

 

 

“주인님, 주인님 완성. 주인님”

 

HS-1은 프라임의 ‘전원’을 넣고 날아올랐다. 깊은 잠과 죽음 속에서 눈을 뜬 프라임은, 완벽하게 개조된 자신의 몸을 보고 미소 지었다. 과연 자신의 연구는 틀리지 않았다. 정밀기계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이런 일에 쓰게 될 줄이야. 뼈보다 단단하고 무거운 것이 든 몸은 체온보다는 조금 낮은 온도가 흐르고 있었다.

 

“디스트로이어”

 

자신의 옆에 누워있는 구원자에게 손을 뻗은 그는 제 연구의 끝에 스위치를 켰다. 잠든 듯 가만히 있던 디스트로이어는 천천히 눈을 뜨더니, 자신을 바라보는 프라임에게 따뜻한 팔을 뻗었다.

 

“성공한 건가?”

“응, 이제, 됐어”

 

불편한 몸으로 웃은 프라임이 제 손을 디스트로이어의 가슴에 얹었다. 미약한 열이 느껴지는 피부 아래, 심장이 뛰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기계가 되어버린 몸도 나쁘지 않네.

디스트로이어가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프라임은 그 웃음에 답하듯 따라 웃으며,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을 손목을 가볍게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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