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한숨을 쉰 블래스터는 내용물이 조금 남은 담뱃갑을 만지작거렸다. 이런 것도 유품이라고 하면 유품일까. 살아있을 적 데스페라도가 피웠던 그 담배는 그가 죽기 직전까지도 놓지 않았던 필수품 중 하나였다.
원래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지금 만큼은 괜찮겠지. 살짝 담배 한 개비를 꺼낸 블래스터는 눈앞의 커다란 불길에 담배를 내밀었다. 원래는 그와 똑같이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싶었지만, 라이터가 없는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를 추억하는 의미에서는, 어쩌면 이 불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는 것이었고.
“잘 타는 구나~”
한탄인지 감탄인지 모를 말을 내뱉으며 그는 담배를 연기를 들이마셨다.
눈앞의 커다란 불길 속에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데스페라도가 있었다. 서투르게 쌓아올린 장작과 화염방사기로 만든 이 화장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과 같았다.
타닥, 타닥. 나무가 타오르는 소리는 시끄러웠다. 엄숙한 장례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아까 전 비명소리들 보단 훨씬 얌전했으니 블래스터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불에 타는 고통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이라 했던가.
‘확실히 그렇다면 이해가 가네’ 속으로 중얼거린 블래스터는 제가 불길 속에 던져 넣은 데스페라도가 지르는 비명소리를 떠올리며 웃었다. 그렇게나 자신을 철저히 무시하고 상대해 주지 않던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큰 소리를 지르다니. 다시 생각해도 블래스터는 온몸이 짜릿해져왔다.
‘내가 널 부르는 일 같은 건 없을 거야’
언젠가 데스페라도가 확신에 찬 얼굴로 했던 그 말을, 블래스터는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강하고 고독한 자의 프라이드란 얼마나 높고 날카로운 것이던가. 블래스터는 그런 그를 사랑해서 언제나 온 마음에 상처를 입기 일쑤였지만, 그것에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제 온 마음이 찢기더라도 그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게 하겠다는 열의를 불태웠을 뿐. 모든 고통은 블래스터의 사랑의 연료와 같았다.
“결국, 불러버렸네. 그렇지?”
이미 죽어버린 데스페라도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살아있지만 입과 식도가 타버린 걸지도 몰랐다. 더 이상 말 할 수 없는 그에게 확답을 듣고 승리감에 도취되는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블래스터는 이미 만족하고 있었다.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였겠지? 데스페라도”
시체를 태우는 불길과 담뱃불은 뜨거웠지만, 블래스터는 전혀 후덥지근함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미지근하게 느껴져서 놀라웠다.
지금 이 세상에서, 자신보다 뜨거운 것은 없으리.
고양된 감정에 반쯤 타버린 담배를 손으로 짓이겨 끈 블래스터는 키스를 하듯 입을 내밀어 검은 연기의 매캐함을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