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회 케이크스퀘어 E-33a에서 소량배포 했던 던파 레이커맨 소설 배포본 웹공개 페이지 입니다!
여러분 배포본 집어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량이 모자라 받지 못 한 분들껜 그저 죄송하다는 말 밖엔 할 수 없네요ㅠㅠ
부디 저와 계약하신 후 레이커맨을 파주시길 ( ^-^)/ ♥ 이구역의 큐베 루엔... 루베...
+ 뒤늦게 오타를 발견해 웹공개에선 조금 수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ㅠㅠ
파편
written by Esoruen
레이븐은 이제 것 제가 살아오며 총에 맞은 개수 같은 것을 세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어느 무법자도 자신이 이제 것 죽을 뻔 했던 일을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의 몸에 난 수많은 흉터들은 그의 생을 대변해주었다.
물론 실제로는 이 상처들 보다 훨씬 더 많은 위기를 경험하고, 더 많은 부상을 당했지만, 그는 그걸 기억해내지 못했으니 누군가가 ‘얼마나 죽을 뻔 했냐’고 묻거든 제 몸에 남은 죽음의 흔적들을 세어볼 수밖에 없었다.
“또 상처가 늘었네요?”
커맨더는 오랜만에 만난 레이븐의 몸에 또 못 보던 흉터가 생긴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언제 생긴 상처이기에 벌써 흉이 지고 색이 변하게 된 걸까. 자주 만날 수 없는 커맨더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레이븐은 그에게 아무 설명도 해줄 생각이 없었다.
“죽을 상처도 아닌데 뭐”
“조금은 조심해 주세요. 그러다 정말로 크게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예요?”
아아. 또 잔소리. 자신을 걱정해 주는 마음은 너무나도 고맙고 이런 자신을 걱정해 줄 사람은 커맨더 밖에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레이븐은 이런 잔소리들이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제가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아무도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랐고, 아니면 황도와 무법지대의 가치관이 전혀 달라서였을 수도 있었다.
레이븐에게 제 몸의 상처는 커맨더의 가슴에 달린 훈장과 비슷한 것이었다. 자신을 죽이려는 수많은 것들로부터 살아남았다는 명예의 증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커맨더의 입장에서 몸에 남은 흉터란 보기 싫고 괴로운 전쟁의 흔적일 뿐. 조금도 자랑스러운 것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레이븐의 흉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어서, 그는 제 몸에 남겨진 수많은 흉터들도 부끄러워했고, 적어도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았다.
“나는 네가 조금 다쳐도 크게 상관없는데”
“…그거 정말인가요?”
“애초에, 군인이 무사하길 바라는 건 이뤄지지 않을 소원 아닌가? 물론 어디까지나 ‘조금’이지. 죽을 정도의 부상은 사양이야”
“어느 쪽이던 안 다치는 게 최선 아니었나요…”
“그럼 넌 내가 무사하길 빌어?”
“당연하죠. 난 당신이 조금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순이네. 그렇게 대답하려던 레이븐은 쓸데없는 언쟁을 피하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커맨더의 몸에는 레이븐 못지않게 많은 흉터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카르텔과의 전쟁을 위해 군에 끌려오듯 입대한 그는 제가 살아온 날의 반 이상을 전투로 보냈다. 당연히 전투로 일생을 보낸 만큼, 그의 몸에는 여러 가지 흉터가 있었다. 날카로운 것에 찔렸던 자국, 총알과 수류탄의 파편에 몸이 구멍 났던 자국, 그리고 뜨거운 것들에 잔뜩 데여 만들어진 화상자국들까지.
레이븐의 안녕을 비는 커맨더도, 그렇게 자신의 몸을 아끼는 사람은 아니었다.
부하와 일반 시민들의 안전, 그리고 승리를 위해 커맨더는 언제나 남들보다 조금 무리를 했다. 적이 앞에 있다면 자신도 피해를 입을 각오로 폭격 명령을 내리거나, 지휘를 위해 무리해서 밤을 새고 전선을 나가는 일도 빈번했다. 황도군이 아닌 그저 ‘협력자’인 레이븐은 그런 커맨더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
레이븐이 살아온 무법자의 방식과 커맨더의 지휘관으로서 살신성인은 정반대되는 이념이었으니, 어쩌면 이해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몰랐다.
“그러는 너는 실컷 다쳐오잖아?”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사령관으로서…”
“내 애인으로서 안 다칠 수는 없는 건가?”
“무슨 소리를…”
레이븐의 말에 커맨더는 가볍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그는 레이븐이 농담을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레이븐은 실없는 농담으로 그런 말을 꺼낸 게 아니었다.
“웃지 마. 진심이니까”
“내겐 사령관인 게 더 우선이에요. 물론 당신도 중요합니다”
“알아”
비록 붙어있는 날이 얼마 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두 사람은 이 연애를 가벼운 불장난 정도로 여기지 않았다. 커맨더에게 레이븐은 의지가 되는 몇 없는 사람이자 소중한 연인이었고, 레이븐도 커맨더를 유일하게 제게 남은 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여기서 짐이란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란 뜻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죽을 때 까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소중한 것. 레이븐은 그것을 짐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당신이 죽는 게 무서워요”
서류를 정리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커맨더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었다. 멍하니 담배를 피우며 커맨더를 응시하던 레이븐은 갑자기 자신을 향하는 맑은 눈동자에 숨을 멈추더니, 담배 연기를 훅 내뱉었다.
“콜록!”
“넌 여전히 겁쟁이구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연인이 죽는 게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말을. 어린애 취급은 그만 두세요, 콜록!”
공기를 휘저으며 연신 기침을 한 커맨더는 레이븐을 노려보았다. 담배 연기는 몇 번을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커맨더는 레이븐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을 잘 알았기에 제 앞에서의 흡연도 묵인해 주고 있었지만 역시 담배 연기는 쥐약이었다.
물론 레이븐은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무언가 곤란할 때나 커맨더가 사랑스러워 보일 때 그 얼굴에 후, 하고 담배연기를 뱉는 장난을 즐겼다.
“넌 내가 죽었을 때 울지마라”
“그 부탁은 무리인데요. 그것만큼은 ‘알겠다’고 말 할 수 없어요”
“나도 네가 죽었을 때 울지 않을 테니까”
달래듯 말하는 레이븐과 달리 커맨더는 여전히 찌푸린 표정으로 레이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무리 타인의 죽음을 수없이 봐온 자신이라고 해도, 레이븐이 죽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데. 어째서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커맨더는 그의 태연함이 무섭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정말, 울지 않을 건가요?”
“그래”
단호하게 대답한 레이븐은 자신을 노려보는 커맨더의 얼굴에 또 한 번 담배연기를 불었다. 하지만 커맨더는 이번엔 순순히 당해주지 않았다. 서류로 재빨리 연기를 막은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류를 내렸다.
“두 번은 안 당하죠”
“이런”
“어쨌든, 조금 서운하네요. 적어도 눈물 정도는 흘려 줄 거라 생각했는데”
“네 죽음은 울음 같은 걸로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한 레이븐은 거의 다 타버린 담배를 끄고 서류를 잡고 있는 커맨더의 손을 잡았다.
“나는 네가 죽어도, 울지 않을 거야. 널 죽인 녀석에게… 아니, 녀석들이 될 수도 있겠군. 어쨌든 날 위한 복수를 하고, 날 위해 네 무덤에 꽃을 놓게 되더라도 난 울지 않을 거다”
울면 모든 게 끝이거든.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덧붙인 레이븐은 살짝 웃어보였다. 커맨더는 여전히 레이븐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조금도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그가 웃는 모습이 아프게 다가와서 그 말의 의미를 물을 수 없었다.
“…알겠어요. 그래도, 전 울겁니다”
“마음대로 해. 너라면, 괜찮을 것 같으니까”
“뭐가요? ‘내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민가요?”
“비밀이야. 일이나 마저 해”
톡. 손을 놓고 그의 군모를 툭 하고 쳐올린 레이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삐뚤어져버린 군모를 고쳐 쓴 커맨더는 레이븐에게 어딜 가냐고 물으려고 했으나, 이미 레이븐이 선수를 치고 말았다.
“담배가 떨어져서 말이지, 사올 테니 그때까진 일 다 해 놔. 오랜만에 만나서 일하는 모습만 보고 가고 싶진 않거든?”
“당신이 말 걸어서 제대로 일 못한 거니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어련하시겠어”
어깨를 으쓱인 그는 커맨더의 방을 빠져나가, 무작정 밖으로 걸었다. 병사가 오가는 넓은 복도, 그 복도의 가장자리를 걷던 레이븐은 주머니 속에서 남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사실 담배가 떨어졌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레이븐은 그저, 더 이상 커맨더가 언제 일어날지 모를 자신과 그의 죽음에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마도 커맨더는 자신이 죽으면 정말로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릴 것이다. 수많은 동료의 죽음을 보고, 황도의 적을 셀 수 없이 죽인 그라도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게 만든 자신이 없어진 이상, 분명 울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실컷 울어버린 후, 깊은 상처를 입은 마음을 안고 다시 일어나, 자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살아갈 게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와 같은 일은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커맨더가 죽으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찔해지는 가정을 할 때 마다 레이븐은 가슴 언저리가 시큰거려왔다.
그는 제 연인이 정말로 죽는다면, 아마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오만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 중 하나였고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복수와 분노로 카르텔을 단죄하는 크고 검은 날짐승. 자신의 이름 같은 그의 생은 눈물을 흘릴 여유 같은 것이 없었다.
‘울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지’
커맨더에게는 실컷 거짓말을 했지만, 결국 그의 진실은 그런 것이었다. 그는 커맨더가 죽는다면 우는 것도 웃는 것도 모두 잊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저 제 연인을 빼앗아 간 자들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고, 결국 무의미한 단죄와 복수가 끝나도, 레이븐은 고장 난 기계마냥 아무 표정도 짓지 못한 채 커맨더의 묘지 앞에서 생을 마감할게 분명했다. 그리고 만약, 그 모든 것을 넘어 자신이 눈물을 흘려버린다면. 그는 정말 오열하는 것 밖에 하지 못하고 커맨더를 따라갈 게 분명했다.
‘병신같아’
자신이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할 수 있다니. 그리고 자신이 죽으면 울어줄 정도로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다니. 레이븐은 이 모든 것이 바보 같고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이런 감정으로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도 그는 여전히 커맨더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레이븐에게 커맨더는 심장에 박힌 작은 총알 파편 같은 것이었다.
심장이 뛸 때마다, 숨을 쉴 때마다, 그 존재를 끊임없이 떠오르게 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뽑아내고 싶어도 뽑아낼 수 없는, 뽑아내게 된다면 제 심장이 멈추고 말. 그런 파편. 그런 짐. 그런 연인.
‘뭐, 당장 뒈지는 것도 아니고’
이런 고민을 해 봐야 아무 의미도 없지. 겨우 생각이 정리된 레이븐은 담배를 끄고 커맨더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일을 끝냈다면, 칭찬으로 잔뜩 키스해 줘야지. 그리고 부끄러워 곤란해 하는 그 얼굴에, 사랑한다고 말 해 줘야지.
방금까지의 고민이 우스울 정도로 행복한 상상을 하며, 레이븐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