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곽 AU 입니다

 

 

修羅

08 

written by Esoruen

 

 

타마기쿠야의 새 오이란의 시끄러운 행렬소식에 하야마는 낮잠에서 깨어났다. 그러고 보니 소리 소문도 없이 시집갔지. 그는 예전에 한번 본 적 있던 타마기쿠야의 전 오이란을 떠올렸다. 텐라쿠야와는 경쟁관계이긴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고 해야 하는 법, 이 요시와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타마기쿠야의 오이란들은 대대로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하야마는 얼마 전 시집간 그 오이란에게선 그런 아름다움을 잘 느끼지 못했다.

사치스럽고 욕심이 많던 그녀는 분명 얼굴만큼은 어여뻤다. 하지만 그 경박한 성격과 남성편력은 하야마에게 그 매력적인 얼굴이 도리어 흉측하게 느껴지게 했다.

아름답고 무례한 여자만큼 끔찍한 것이 있을까. 한숨을 쉬며 상체를 일으킨 하야마는 철없는 얼굴로 제 가게의 유녀들에게 물었다.

 

“나랑 같이 새 오이란 행렬 구경 갈 사람?”

 

혼자 가면 재미도 없고 남 보기도 안 좋으니 아무나 데려가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입을 연 하야마였으나 돌아온 반응들은 차가웠다.

 

“어머, 저흰 손님 받을 준비 해야죠!”

“도련님도 일손을 거들어야지 어딜 가려고 그러세요?”

“쳇, 우리 가게의 애들은 애교라는 걸 모른다니까!”

 

단장으로 바쁜 유녀들에게 불평하던 하야마는 결국 목표물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언니 유녀들을 도와 심부름에 손이 바쁜 카무로들을 잡은 하야마는 품속에서 과자를 꺼냈다.

 

“도련님과 마실 나가주는 아이에겐, 이걸 줄게”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카무로들은 서로 눈치만 보았다. 과자와 마실. 둘 다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카무로에겐 사치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둘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기회라니. 게다가 언젠가 자신들이 될 지도 모르는, 오이란의 행차. 가고 싶지 않은 쪽이 비정상이겠지만, 아이들이 쉽게 손을 들지 못하는 것은 언니 유녀들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코타로!”

 

아이들이 열심히 눈치만 보고 있을 때, 갑자기 그를 부른 목소리는 유녀들이 행복할 시간을 가질 기회를 완전히 없애고 말았다. 이크. 어머니가 부르는 목소리는 언제나 질색이었다.

 

“네?”

“타마기쿠야에 잠시 심부름 좀 가렴, 딴 짓 하지 말고 금방 와! 이래서야 어떻게 주인 자리를 물려받으려고!”

“네, 네”

 

이제 이런 잔소리는 아무 감흥도 없는지 하야마는 제 모친이 내미는 상자를 순순히 받았다. 아마 새 오이란에게 주는 선물이거나, 사창가 주인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중요한 물건 같은 거겠지.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하야마는 상자를 열어 보지 않아도 내용물을 뻔히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심부름으로 외출의 목적이 달라지자, 저절로 같이 따라갈 카무로도 필요 없게 되었다. 하야마는 제가 들고 있던 과자를 아직 힐끔힐끔 보는 소녀들을 보았다. ‘어쩔 수 없구만’ 마치 큰 호의라도 베푸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그는 과자를 내어 주었다.

 

“이건 그냥 도련님의 성의야. 나눠 먹고 언니들 말 잘 들어라?”

“고맙습니다, 도련님!”

“와아!”

 

풋. 아무리 팔려 와서 상품처럼 다뤄지는 아이들이라도 역시 아이는 아이다. 그걸 나날이 실감하는 하야마는 웃음이 삐져나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심부름은 귀찮지만 그래도 밖을 나돌아 다니는 것은 싫지 않다. 인상을 쓰며 상자를 받긴 했지만 막상 문 밖을 나서자 신이 난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움직이려다 북적거리는 인파에 놀라 멈췄다. ‘아직 오이란 행렬 중 이었군’ 인파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 오이란의 행렬 무리를 얼핏 본 하야마는 그 자리에 서서 이번에 새로 오이란이 된 유녀의 얼굴을 확인하려 들었다.

 

“오”

 

저번 오이란이 그의 취향을 빗나간 반면, 이번 오이란은 제법 그의 취향에 부합하는 미인이었다. 어려보이고, 참하고, 무엇보다 순진해 보인다. 남자의 입장으로 말하자면 한번 쯤 더럽혀 보고 싶은 깨끗함이 있는 여자였고, 장차 홍등가에 늘어선 가게중 하나의 주인이 될 사람 입장으로 보자면 내숭만 잘 떤다면 얼마든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 좋은 물품이었다.

 

‘타마기쿠야는 땡 잡았군’

 

아무도 듣지 않는 심통을 부린 하야마는 제 손에 든 상자를 가볍게 흔들었다. 달그락. 가벼운 것이 커다란 상자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 이 소리는 아마 장식품이나 소량의 돈일까. 어느 쪽이든 가치 있는 무언가 이겠지. 이런 걸 덥석 경쟁 가게에 주는 제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타마기쿠야도 텐라쿠야가 어려울 때 도와주긴 했지만, 그래도.

생각에 빠져있느라 멍하니 서있는 사이 오이란 행렬은 금방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구경꾼의 탄식도 줄어들고, 북적이는 인파도 조금 걸을 만 할 정도로 줄어들고 나서야 하야마는 제 생각의 상자에서 빠져나왔다.

 

 

 

심부름은 금방 끝났다. 오랜만에 찾아간 타마기쿠야는 오늘이 분명 경사스러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였고 주인어른의 표정도 어딘가 그늘이 있었다. 피곤 때문일까. 아니면 뭔가 말 못할 안 좋은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궁금하긴 했지만 물어봐야 좋을 것이 없는 것을 아는 하야마는 제가 전해줘야 할 물건만을 넘겨주고 가게를 나섰다.

딴 짓 하지 말고 바로 오라고 했으니 이제 그만 가야겠지. 가게로 돌아가면 일을 해야 할 테고. 그렇게 생각하자 아까 얌전히 타마기쿠야를 나온 것이 아쉬웠다.

‘아무나 데리고 잠시 놀고 올 걸’ 제 가게에선 눈치 보여 놀 수도 없으니 그렇게라도 꼼수를 부리려던 하야마는 문득 생각나는 얼굴에 텐라쿠야로 가던 발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미야지~”

 

장신구 가게 앞을 서성이던 하야마는 조용한 가게를 기웃거리며 미야지를 찾았다. 오늘은 왜 이렇게 조용한 걸까. 장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닐 텐데.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실망한 그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가려고 했다.

 

“뉘시오?”

 

아. 하야마는 들려온 목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고 보니 원래 이 가게는 미야지의 아버지가 주인이었지. 언제나 미야지가 있어서 착각하고 말았지만, 원래는 ‘미야지’를 불렀다면 그의 아버지가 나오는 게 정상이다.

 

“그, 미야지 키요시 없나요?”

“…아이고, 누군가 했는데 텐라쿠야의 도련님 아니십니까!”

“아, 네. 하하!”

“키요시라면 지금 배달을 나갔습니다. 곧 오실거니 기다려주세요”

 

역시 잘 팔리는 군. 미야지의 솜씨를 아는 하야마는 그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고 가게의 평상에 앉았다. 이럴 때는 인기 있는 비녀장인인 것도 흠이군. 주변에 널린 장신구들을 구경하며 미야지가 만들던 비녀들을 떠올리던 하야마는 일에 열중하던 때 그의 등을 떠올렸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계집애 마냥 장신구들을 제 몸에 대어보던 하야마는 미야지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미야지!”

“뭐야, 넌 왜 왔어?”

“그냥, 심심해서. 왜 요즘 안 보이나 걱정했거든”

“난 너같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게 아니라서 말이야. 일해야 먹고 살거든. 그리고 유녀 같은 거 관심 없다고 전부터 말했잖아? 내가 가게로 놀러 갈 리도 없고…”

 

미야지가 장황하게 이유를 늘어놓기 무색하게, 하야마는 그의 말을 그야말로 귓등으로 듣고 제멋대로 그를 끌고 나섰다.

 

“됐고, 재밌는 거 구경 가자!!”

“허?! 뭐야! 야, 잠깐! 나 일하는 중이라고!!”

“아버지 계시잖아? 잠시 데려가겠습니다, 주인장~”

 

넉살 좋게 웃으며 미야지의 아버지에게 인사한 그는 더 이상 미야지의 의사는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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