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퍼즈 벨져 드림
- 오리주 주의
- 드림 전력 '너의 빨강구두' 53번째 주제 : 둘만의 시간
시간이 없어 전력참여는 못했지만 연성은 하고싶어 매우 뒷북으로 써본 글...
둘만의 시간
written by Esoruen
오스트리아의 홀든가, 건장한 아들 셋. 첫째는 헬리오스 소속의 성실한 은행원, 막내는 지하연합의 백수, 그리고 둘째는 검의 기사단 소속의 긍지 높은 검사. 홀든가는 저 세 명의 도련님들 때문에 언제나 시끄러웠다.
베아트릭스는 홀든가와 인연이 깊은 아가씨 중 한명이었다.
쇄퍼가의 장녀. 정숙한 요조숙녀. 하지만 강단 있는 아가씨. 사교계에서는 그 품위로, 그녀가 다닌 학교에서는 그 명석함으로, 과외를 받는 학생들에겐 그 유능함으로. 여러 의미로 유명한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홀든가와 친분을 다져왔다.
첫 만남은 사교계에 데뷔하기도 전 어린 시절. 홀든가에서 연 파티에서 세 형제를 만났을 때의 그녀의 나이는 겨우 10살이었다.
“에취”
과외를 끝마치고 홀든가를 찾아온 베아트릭스는 응접실의 푹신한 소파에 기대 안경을 벗었다. 하루에 두 번 정도. 높으신 분들의 자제들의 공부를 가르쳐 주는 일을 하는 그녀는 흔히 말하는 ‘가정교사’였다.
바깥 창에는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다. 곧 저녁시간인데 벨져는 왜 오질 않을까. 안경에 묻은 얼룩을 닦아낸 그녀는 다시 안경을 썼을 때 눈앞에 나타난 그림자에 어깨를 움츠렸다.
“어라? 언제 온 거야 베아!”
베아. 이글이 그녀를 부르는 애칭. 편하게 앉아있던 그녀는 급히 허리를 곧게 세우고 웃었다.
“벨져가 같이 저녁이라도 먹으러 가자고 해서. 와서 기다려도 좋다고 해서 왔어”
“헤에, 역시 벨져 형은 지극정성이네”
이글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봐왔다고 해도 일단 그녀는 제 둘째 형의 연인. 함부로 대해서 좋을 것이 없는 상대였지만, 이글은 아무리 보아도 그녀가 소꿉친구처럼만 느껴져 곤란했다.
“베아도 바쁜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기다리라니. 형다워”
“뭐가?”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게 하면 다른 남자들이 볼 거 아냐? 베아는 미인이니까~”
“농담은, 후후”
이글의 저런 농담에 베아트릭스는 언제나 웃어보였다. 유쾌하고 편한 사람. 그것이 그녀가 가진 제 연인의 동생에 대한 인상이었다.
“이글, 거기 있었나”
아.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목소리에 베아트릭스는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긴장하고 말았다. 몇 년을 보아도 어려운 사람, 홀든가의 장남. 그리고 제 친우의 연인인 다이무스 홀든은 오늘도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왔다.
“베아트릭스, 오랜만이군”
“오랜만이에요.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예의바른 그녀의 인사에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다이무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제 동생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노닥거릴 처지가 아닐 텐데?’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제 형의 눈빛에 어색하게 웃어버리고 만 이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난 형이랑 같이 나가볼게! 벨져 형은 금방 올 거야~!! 쉬고 있어!!”
“먼저 실례하지”
“아, 네…”
어차피 혼자 기다리는 건 심심하니 내버려 둬도 좋은데. 머릿속으로만 그렇게 말한 그녀는 다시 혼자 남아 벨져를 기다려야 했다. 곧 오겠지, 곧 오겠지. 그런 마음으로 몇 분이나 기다렸을까, 접대용으로 나온 차를 거의 다 마셨을 때쯤에서야 벨져는 찬 공기에 젖은 코트를 펄럭이며 응접실로 들어왔다.
“미안해, 베티. 제레온 경이 잠시 보자고 하는 바람에”
“괜찮아. 나는 기다리는 건 아주 잘하니까”
“이럴 때는 화를 내어도 괜찮은데 말이지”
천성이 온화한 그녀를 볼 때마다 벨져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마냥 상냥해 보이는 아가씨가 능력자라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그는 정중하게 베아트릭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레스토랑에 예약을 해놨어, 가자”
“레스토랑? 그냥 여기서 먹어도 되는데…”
“둘만 있고 싶거든. 모처럼 이니까”
괜찮지? 그렇게 묻는 벨져의 미소에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