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죠죠의 기묘한 모험 브루노 부차라티 드림
- 오리주 주의
- 드림 전력 '너의 빨강구두' 64번째 주제 : 그건, 기적
그건, 기적
written by Esoruen
부차라티는 자신에게 스탠드가 발현 된 것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지킬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는 생각하면서도, 역시 스탠드가 없었다면 불행하게, 혹은 평범하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거란 묘한 후회가 들기 때문이었다.
운명이란 누구든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운명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부차라티는 그 진퇴양난의 상황에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사람이었고, 그도 제 얄궂은 운명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거지. 되돌릴 수는 없어.
제 목숨을 보호받기 위해 갱의 세계에 들어왔을 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한 선택이니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설령 그것이 운명이 정한 것에 놀아난 것이더라도, 결국 실행한 것은 자신과 자신의 스탠드였으니까.
“부차라티, 네가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다”
그가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 1년쯤 지났을 무렵, 그러니까 부차라티가 13살이 되었을 때였던가. 갱단 파시오네의 간부이자 부차라티의 상사쯤 되는 포르포는 어느 날 그를 부르더니 작은 쪽지를 건넸다. 쪽지에 적혀있는 것은 그들이 관리하는 구역에 있는 레스토랑의 주소.
“여긴, 우리 구역이네요”
“그래. 뭐, 보호비 미납이나 그런 건 아니니 편하게 가서 통성명만 하고 오도록”
“통성명이요? 정말 그거면 됩니까?”
“그래. 거기선 어차피 수납을 받지 않으니까”
수납을 받지 않는다고? 부차라티는 포르포가 하는 말을 하나도 이해 할 수 없었다. 자신의 팀이 이곳에서 하는 일은 주변 상가를 다른 갱단에게 보호하면서 돈을 받거나 카지노를 관리하는 정도인데. 거기서 ‘보호비’를 받지 않는 가게가 있다니.
‘조직 사람이 하는 가게인건가’
이 나라 갱들은 기본적으로 눈에 띄는 것을 싫어했다. 눈에 띄면 암살당하니, 쥐 죽은 듯이 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 중에는 눈속임 용 위장신분을 가진 조직원들도 들었는데, 가게 주인이라면 위장신분으로 더 없이 좋을 터였다.
“알겠습니다”
포르포가 만나고 와라고 하는 게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부차라티는 겨우 말단. 간부인 포르포의 명을 거스를 순 없었다. 어차피 같은 조직원이라면 귀찮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적을 테고, 만약 싸움이 일어나도 자신은 스탠드가 있으니 걱정 없다.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쪽지에 적힌 장소에 찾아간 그는 생각보다 작은 레스토랑의 규모에 놀랐다.
‘작네, 엄청’
밖에서 보이는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있는 테이블은 기껏 해봐야 네 개. 정말로 혼자서 운영하기 좋은 작은 가게에 조직원이 주인임을 확신한 부차라티는 문을 열어젖혔다.
“어서오세요”
아. 어린아이의 목소리.
부차라티는 제 또래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들어오다 말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기가 아닌가? 그렇게 착각하기도 잠시, 자신에게 다가온 소녀는 당황하는 부차라티를 보곤 까르르 웃었다.
“포르포 씨가 보내서 오셨나요? 브루노 부차라티 씨 맞죠?”
자신보다 조금 작은 소녀는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손님이 기쁜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도저히 갱과는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이런 소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과 포르포의 이름이 나오다니. 제대로 찾아온 것이 확실해졌는데도 부차라티는 어쩔 수 없는 괴리감을 느껴야했다.
“맞는데…”
“어서 오세요, 저는 시레나라고 해요. 으음, 어머니는 지금 주방에 있어서… 제가 대신 차 내올게요! 앉아계세요! 그리고 편하게 말 놓아도 돼요”
알겠죠? 당부하듯 되물은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게 안쪽으로 사라졌다.
조금 뒤, 허브티 두 잔을 내어 온 시레나는 영문을 몰라 하는 부차라티에게 이것저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조직에 몸담고 있던 사람이었고, 얼마 전 보스를 지켜주다가 죽었다고 했다. 원래라면 조직원이 죽는다면 그의 가족을 보호해 주는 정도에서 그치는데,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위장신분으로 운영하는 가게를 물려받고, 포르포의 밑에서 지낼 수 있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부차라티와는 같은 팀이라고 보면 될까요. 하는 일이라고는 가게를 지키는 것뿐이지만”
“…그런가. 응. 잘 부탁해”
이래서 만나보라고 한 거구나. 부차라티는 포르포가 한 말을 제 나름대로 해석했다. 자신이 속한 팀은 ‘호위팀’ 그건 포르포 같은 간부를 호위하는 팀이라는 의미였지만, 간부 밑의 사람이라면 아마 자신이 지키는 게 맞을 것이었다.
‘나는 이 아이를 지키는 역인건가?’
자신과 같은 파시오네에 있던 누군가의 딸.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시레나는 이탈리아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인형같이 생긴 여자아이였다.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금발, 속눈썹이 긴 새까만 눈동자, 어느 누구나 귀엽다며 돌아볼, 마냥 예쁜…
그런 여자아이.
‘그렇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지’
7년 후. 부차라티는 포르포에게 가장 신임 받는 부하가 되었다. 물론 신임을 받는 대상은 제 상사에 그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부터 부하들, 그리고 그녀까지. 어리고 서툴렀던 소년은 훌륭하게 어른으로 자랐고, 한번 비틀린 운명도 어느 정도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었었다.
“무슨 생각해요? 부차라티”
“아무것도 아냐.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마냥 귀엽던 시레나는 이제 완전히 아가씨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제가 예전에 착각했던 만큼 보잘 것 없는 아가씨가 아니었다. ‘지켜줘야 될 대상’ 이라는 것은 완전히 자신만의 착각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파시오네의 일원이었고, 처음 만났을 그 당시부터 부차라티보다 훨씬 능숙한 전투원이었다.
무엇보다, 제 또래거나 자신보다 연하인줄 알았던 그녀는 자신보다 한 살 많은 누나였다.
‘다짜고짜 존댓말을 쓰고, 자신보고는 말을 놓으라고 해서 연하라고 생각했는데…’ 부차라티는 그녀가 조직원인데다 스탠드 유저라는 것 보다 그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연상인 줄 알았다면, 조금 더 격식을 갖췄을 텐데. 지금은 완전히 반말이 입에 붙어서 그녀에게 존댓말을 쓸 엄두도 나지 않았다.
“예전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도, 이 차를 내주었던 것 같아서”
“어라. 기억하고 있어요? 뿌듯한데요. 후후”
활짝 웃은 그녀는 오후의 햇빛보다 눈부신 금발을 제 손가락에 꼬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몸도 마음도 강한. 시레나는 부차라티에게 하나의 기적이었다.
뒤틀린 제 인생에서 한 가지 중심점이 되어준, 혹은 버팀목이 되어준.
빛나는 작은 기적.
“잊어버릴 리가 있나…”
내 기적이 찾아온 순간을.
내뱉지 못한 말은 향긋한 허브티와 함께 목구멍 뒤로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