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검난무 타로타치 드림
- 여 사니와 (이름, 설정 없음) 드림
- 제 11회 주제 : 착각
착각
written by Esoruen
“저기, 지로타치. 타로타치는 역시 나 같은 여자가 주인이 된 게 불만일까?”
이른 아침, 출진을 준비하던 주인이 한 말은 약하게 돌아있던 내 취기를 싹 가시게 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을 품었다고? 혹시 내가 술기운에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되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주인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봐서는 아무래도 그녀는 진심인 것 같았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주인? 형님이 왜?”
“그게… 으음, 지로타치는 이렇게 나한테도 모두에게도 상냥해서 걱정이 없는데 타로타치는 언제나 나랑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말이야. 워낙 커서 떨어져 있어도 잘 보이긴 하지만… 역시 나같이 작은 여자가 자신의 주인인 게 마음에 들지 않은 걸까 싶어서”
“설마!”
나 참, 그런 것 때문에 고민을 하다니. 나는 나보다 한참 작은 주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며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나와 형님은 형제라고 하기엔 성격이나 느낌이 많이 다르지만, 형님이 뭘 생각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뭐라 해도 형제니까.
“형님은 나랑 달리 점잔빼는 성격이라 그래! 주인을 싫어할 리 없잖아!”
“그런가…?”
“그럼! 자, 걱정 말고 여기 한잔 하고 출진 준비하자구~ 주인이 그렇게 기운 없는 표정으로 있으면 우리도 힘이 안 나니까! 자, 자”
“아, 아니 술은 됐어!”
내가 술잔을 내밀자 순식간에 물러선 그녀는 그제야 평소처럼 웃어보였다. 휴, 드디어 한시름 놓겠는걸. 하지만 이렇게 주인을 걱정시킨 형님에겐 한 소리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동생이 건방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봉납되어 있다가 이렇게 오랜만에 나왔으면 좀 더 주인과 사이좋게 지내는 게 형님에게도 주인에게도 좋지 않은가.
주인이 부대를 새로 편성하고 장비를 고르러 간 사이, 나는 출진 준비를 하고 있는 형님에게 다가가 슬쩍 물었다.
“형님, 시간 있어?”
“아아. 지로타치. 물론입니다. 곧 출진할 것 같지만 잠깐이라면”
“있잖아, 혹시 봉납되어 있다가 다시 현세로 나와서 불만이야? 아니면 기껏 만난 주인이 어린 여자애라서 좀 그렇다던가?”
“갑자기 무슨 소리입니까?”
아아, 저 뭐가 잘못되었냐는 표정. 역시 형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내 예상대로 아무 불만이 없다는 건 다행이지만, 이렇게까지 무감각 할 줄이야. 나도 봉납되어 있었던 시절이 좀 길었지만 이 정도는 아닌데!
“주인이 그러더라고, 형님이 자길 싫어하는 것 같다고”
“제가 말입니까? 설마요. 건장한 사내가 아니라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그녀는 그녀 나름 훌륭한 통솔력과 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주인으로서, 싫어한다는 마음을 품은 적은 없지요”
“그럼 왜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서 대하는 거야?”
“…그건…”
으음. 낮은 신음을 흘린 형님은 날 힐끔 보고 저 멀리서 뛰어노는 단도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대답은 않고 힐끔힐끔. 답답하게 눈짓만 하던 형님은 혹시라도 주인이 듣지 않을까 걱정되는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보다시피 이렇게나 크니까요. 지로타치도 잘 알지 않습니까. 전에 내번으로 말을 돌볼 때, 저를 본 말이 놀라서 한참이나 울던 그 모습을 봤을테니까요”
“주인은 말이 아니라구. 내가 근처에 딱 붙어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그래도… 뭔가 저를 어려워하는 게 보여서”
그건 형님 태도 문제겠지!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꾹 삼키며 답답한 가슴을 두드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매일 주인에게 하는 말이 ‘실전에서 쓰이지도 않는 검은 세상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라던가 ‘정말 저를 다를 수 있겠습니까?’ 같은 건데, 이 세상 어느 주인이 금방 편하게 대하겠는가! 오랜 시간 사용할 사람이 없어 봉납되어 있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는데.
“그러지 말고, 주인이랑 잘 지내. 주인은 형님이 나보다 큰 것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으음…”
“아니면 적어도 거리라도 두지 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거 알지?”
‘어차피 우리는 멀리 있어도 눈에 띄지만!’ 평소라면 그런 농담도 덧붙였겠지만 지금 해선 또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 같으니 저 말은 마음속에만 담아두기로 했다.
“타로타치, 지로타치. 둘 다 1부대면서 뭐하는 거야? 출진이야. 가자”
타이밍도 좋지. 우리의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 되었을 때 쯤 나타난 키요미츠는 얼른 일어서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고 보니 키요미츠는 언제나 주인에게 찰싹 달라붙어있지. 사랑 받는걸 좋아하는 아이니까. 우리 형님도 키요미츠의 반만 닮으면 주인이 걱정할 일도 없을 텐데… 그건 너무 무리한 소망 같으니 접자.
키요미츠를 따라 혼마루를 나서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주인은 나란히 걸어오는 우리를 보곤 부드럽게 웃었다.
“어서 와. 자, 오늘도 힘내자”
“물론이지! 자, 가자 주인! 대장은 누구야?”
“으응, 타로타치에게 맞기고 싶은데… 괜찮을까?”
“‘괜찮을까?’ 가 아니잖아. 주인! 주인은 우리 주인이니 명령하면 그만이라구! 그렇지 형님?”
“그렇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형님은 맨 앞, 선봉의 자리로 갔다. 주인은 힐끔힐끔 형님의 눈치를 보다가 역시 그 옆에 섰지만, 두 사람의 거리는 족히 단도 아이 세 명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이것 봐. 형님 쪽에서 하도 거리를 두니 이제 주인이 거리를 두잖아!
‘이젠 안 되겠어’ 답답함에 그렇게 중얼거리고 결국 둘을 강제로 붙여놓으려고 다가가려던 순간, 내 눈앞에선 믿을 수 없는 장면이 일어났다.
“주인, 너무 떨어져서 걸으면 위험합니다. 이리로”
“네?”
이제 것 본 적 없는 상냥한 손짓. 주인을 향해 손을 뻗은 형님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저런 말을 했다. 동생인 나도 당황스러운데 주인은 어떨까.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지금 주인의 표정은 내번으로 돌보았던 말들이 형님을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훨씬 놀란 표정이었다.
“아, 고, 고마워…”
살짝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주인은 그 손을 잡고 형님의 옆으로 다가갔다. 이걸로 또 한건 해결인가. 아까 전 내 어드바이스가 조금은 통한 것 같이 뿌듯하긴 했지만, 아직 저 두 사람사이에 쌓인 착각의 벽들을 허물기엔 시간이 더 걸리겠지.
“그래도 다행이야, 다행”
돌아가면 형님이랑 한잔 해야겠는걸. 뭐, 일단 이 출진에서 다치지 않고 돌아오는 게 우선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분 좋은 출진이라면 분명 잘 될 게 분명하다. 그건 이른 아침부터 흩날리는 벚꽃 잎으로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