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조각글
커미션 2차 컨펌 보낸 게 신나서 씀...
디트프라는 종교입니다
밤보다 낮이 더 밝은 곳, 매연과 기계가 가동되는 소음으로 머리를 어지럽히는 곳, 모든 메카닉들의 성지. 파워스테이션이란 대강 천계에서 그런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디스트로이어는 파워스테이션에 오면 언제나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사람이 이루어 낸 것들로 둘러싸인 대도시. 제가 쓰는 무기의 대부분도 이곳을 거쳐 갔을 것이 분명한데, 그에게 파워스테이션은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낯설고 어색한 곳이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자기 혼자서 다른 세계에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이 도시에서 디스트로이어는 언제나 이방인이고 외부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유일하게 이 도시의 구성원으로 느껴지는 순간은 있었다. 미로처럼 복잡한 거리를 지나 연인의 공방에 도착하는 그 순간. 두꺼운 철문을 열고, 환기를 제대로 하지 않아 탁한 공기와 야윈 등과 마주하게 되는 그 순간만큼은 디스트로이어는 파워스테이션의 주민이었다.
“여어, 프라임”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이름을 부르면 프라임은 대꾸라고 하기도 민망하게 슬쩍 손을 들어 디스트로이어를 맞이했다. 어찌 보면 무성의해보이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게 반가움을 표시하는 최적의 인사였다.
“어라. 오늘은 그거 안보이네? 어디 갔어?”
“HS-1을 ‘그거’라고 부르지 말아줄래? 내가 너를 ‘황도군’이라고 부르면 기분 나쁠 거잖아?”
“알았어, 알았어. 깐깐하다니까 정말로”
제법 진지하게 핀잔하는 프라임의 얼굴이 무섭지도 않은지 디스트로이어는 웃으며 저렇게만 대꾸했다. 사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 것 정도는 그도 알았지만, 한 달 동안 보지 못했던 애인의 얼굴이 눈앞에 있다. 이렇게 기쁜 재회에, 어떻게 웃음이 안 날 수 있겠는가.
오랜만에 보는 프라임의 얼굴이 화난 얼굴이라도, 디스트로이어의 얼굴에는 그저 예쁘게만 보였다.
“HS-1은 지금 충전중이야. 둘 다 충전 중이라 심심하던 차에 잘 왔어”
“뭐야, 그 녀석들 대용이야 난?”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앉기나 해. 먼 곳에서 이까지 오느라 고생 했어”
‘고생 했어’라고 말하면서도 의자 하나 가져와 주지 않는 것은 너무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라면 그리 생각할지 몰라도 디스트로이어는 이 일이 익숙했다. 언제나 손이 바쁜 제 애인, 사람보다 기계를 대하는 것이 더 익숙한 남자. 프라임에 관해서 잘 아는 디스트로이어는 제게 저런 말을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솔직히, 프라임 성격이라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공방에 들어왔다면 내쫒았을 게 분명하다. 그와 그의 연인인 디스트로이어 정도만 허용되는 공간.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 공방에서 자신과 같이 존재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것은, 프라임에게 있어서 심장 한쪽을 내 주는 일과도 같았다.
“이번에 만드는 건 뭐야?”
“웨인씨에게 부탁받은 게 있어서 말이지. 뭐 복잡한 일이 아니니 곧 끝날 거야. 잠깐만 기다려”
“헤에”
디스트로이어가 듣고 싶었던 대답은 저런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정말로 지금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던 건데, 프라임은 그걸 만들게 된 경위 정도만 이야기 하다니. 혹시 제 질문이 보채는 것처럼 느껴졌던 걸까. 그렇다면 질문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뭐에 쓰는 거야? 병기?”
“병기는 아니고… HS-1이랑 비슷한 기계야. 메카닉을 위한 보조원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아하, 도우미?”
“그래 그런 거”
대답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가 만드는 기계는 HS-1와 비슷해 보였다. 몸체가 둥글고, 크기는 사람 머리통보다 조금 작은 그것은 대충 모양은 갖춘 상태였지만 여기저기가 아직 조립되지 않아 내부가 언뜻언뜻 보이는 상태였다.
“그런데 웬일이야? 내 작업에 대해 묻고”
“그냥 신기해서. 나는 기계는 전혀 모르니까”
“뭐 메카닉이 아니니 당연한 거지. 나도 중화기 설계도는 알지만 다룰 줄은 모르거든”
“확실히, 그 팔로 중화기를 들기엔 무리지”
장난스럽게 웃으며 톡, 하고 친 팔은 희고 가늘었다. 약간의 잔 근육이 붙어있지만 중화기를 다루는 제 팔에 비하면 가늘기 짝이 없는 프라임의 팔. 디스트로이어는 제 손에 덥석 잡히는, 가늘지만 단단한 그 팔이 좋았다.
“네 쪽이 너무 근육질인 거라고”
“그런 면을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거기 드라이버나 줘봐”
이런. 답지 않게 말을 돌리는 프라임에 그는 웃어버렸다. 이럴 땐 더 캐묻지 않고 넘겨줘야 좋은 애인이겠지. 얌전히 드라이버를 집어 애인에게 건넨 디스트로이어는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주었다.
“언제부터 만들고 있던 거야? 밥도 안 먹고 일하는 거 아니지?”
“비쩍 말라보여도 늘 먹어가며 일하고 있어”
“그래서, 언제부터?”
“…세 시간 전 부터 만들었던가?”
세 시간. 되뇌듯 중얼거린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 시간은 오후 4시. 세 시간 전이라면 점심을 먹고 바로 일을 시작한 게 된다.
“쉬엄쉬엄 하지…”
“쉬운 일이라니까? 곧 끝나”
“네겐 기계에 관련된 일이면 다 쉬워 보이지만”
“맞아. 사람을 대하는 것 보다야 쉽지”
그렇게 말하며 디스트로이어 쪽으로 시선을 돌린 프라임은 살짝 웃었다.
“그건 나도 포함이야?”
“글쎄다. 뭐, 다른 사람들 보단 편해. 금속이랑 사람 사이라고 할까”
“꼭 나를 사이보그로 보는 것 같은 표현이잖아?”
“그런가?”
시선을 거두며 무성의하게 대꾸한 프라임은 기계의 마지막 나사를 조였다. 다 됐다. 스스로의 만족감에 차 중얼거린 그는 마지막으로 기계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 전류와 윤활류를 꺼내었다.
“오오, 이제 깨어나는 거야?”
깨어난다. 기계에게 쓰기에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은 그가 프라임의 연인인 탓이겠지. 고개를 끄덕인 프라임은 이곳저곳 윤활유를 칠하고, 전원을 연결했다.
“다 됐다”
“흐음, 꼭 밥 주는 것 같네. 뭐, 기계에겐 전기가 밥 맞나?”
“맞지. 기름과 전류가 젖과 꿀이니까”
기계에 둘러싸여 내뱉는 말 치고는 썩 문학적인 표현이다. 프라임은 스스로가 한 말에 그렇게 평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이렇게 감성적으로 변하는 것도 다 제 옆의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꽤 나쁘지 않은 현상이었다.
“저녁 먹으러 나갈까”
“나가서 먹게?”
“내 공방에 음식물 따위를 들여올 수는 없지”
“하하. 그래. 그럼 나가자. 아직 이르긴 하지만”
기계의 젖과 꿀은 가득 채워두는 주제에 제 밥은 안 된다니. 디스트로이어는 희한한 프라임에 고집에 고개를 기울였지만, 딴죽을 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