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검난무 대장조 (야겐 토시로+아츠 토시로) 드림
- 야겐 중심입니다. 여사니와 드림.
- 제 23회 주제 : 솔직함
- 22회 주제 치장과 이어지는 이야기
하카타 사투리 어려워...(죽어버림)
솔직함
written by Esoruen
최근 아츠와 대장의 사이가 평소보다 가까워 진 것 같은 것은 착각일까. 야겐은 아침 일찍부터 사이좋게 앉아 차를 마시는 사니와와 아츠를 바라보면서 눈썹을 까딱였다.
그의 주인은 모두에게 상냥한 여자였다. 자신을 따라 사명을 수행하는 검들에게 상하관계를 요구하지 않고, 언제나 동등한 눈높이로 바라볼 정도였으니까. 누군가와 아침부터 차를 마신다 해도 그것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야겐이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건, 단순히 차를 같이 마시거나 아침 인사가 길어져서가 아니었다.
이 혼마루의 사니와의 근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다.
사니와의 가장 가까운 칼. 전장에서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존재. 전장에서는 대장, 돌아와서는 비서. 자신의 주군의 손발이 되어주는 존재, 그것이 바로 바로 근시였다.
야겐은 내심 자신이 그녀의 근시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전장에서 자랐고, 자만은 아니지만 다른 단도들 보다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이 어른스럽다는 건 자신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다른 도검남사들도, 사니와인 그녀도, 야겐을 ‘어른스러운 아이’라고 해 주었으니까.
그런데 요즘 사니와는, 근시인 자신보다는 아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 차를 마실 때도 아츠를 먼저 불렀고, 과자를 사왔을 때도 아츠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전장에 나가기 전 평소라면 근시인 야겐에게 이런 저런 것을 부탁하거나 물었을 그녀가, 아츠에게 ‘혼마루를 잘 부탁해’라는 말부터 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하면 믿겠는가. 평생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 야겐은 이 감정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근시를 바꾼다면 좋을 텐데’
유치한 생각일지 몰라도 야겐은 저런 마음을 늘 품고 있었다. 차라리 근시를 바꾼다면, 더 이상 자신이 그녀의 근시가 아니라면 제가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빼앗긴 것 같은 이 기분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될 텐데. 우스운 것은 그러면서도 내심 ‘이 자리만큼은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남아있어, 야겐은 어찌 할 도리를 몰라 가슴아파했다.
“야겐”
아. 멍하니 다다미 바닥만 보고 있던 야겐이 고개를 들었다. 평소에는 부드럽고 전장에서는 단호한, 상황과 장소에 따라 수천가지의 분위기를 내는 그녀의 목소리. 지금 자신을 부른 그 목소리는 다정하면서도 힘이 있다. 무언가 지시를 내릴 때 주로 나오는 톤이었다.
“불렀어? 대장”
“오늘 오사카 성으로 갈 거야. 모두에게 준비를 해 놓으라고 해줄래? 나도 곧 나갈게”
“알았어. 제대로 장비하라고 할게”
오사카 성인가. 야겐은 마른 침을 삼켰다. 평소와는 다른 전장, 토시로의 형제중 하나인 ‘하카타 토시로’가 있는 그곳. 사니와는 며칠 전부터 이치고와 함께 합심하여 오사카 성의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동생을 구한다’ 그리고 ‘새로운 동료를 얻는다’ 달라 보이지만 결국은 같은 목적으로 하나가 된 토시로 형제들과 그녀는, 오늘에야 말로 하카타를 이 혼마루에 데려올 생각으로 두 눈이 불타고 있었다.
“아아, 나도 가고 싶은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츠는 전병을 우물거리며 투덜거렸다. 형제를 구하러 가는 것이니 저렇게 애가 타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야겐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츠는 나중에 원정 다녀와야지”
“원정도 좋지만, 대장의 곁을 지키고 싶으니까!”
“하하, 우리 아츠는 역시 믿음직하네”
아, 그런 목적이었나.
제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아츠의 목적에 야겐은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대장은 걱정 마. 내가 제대로 지켜 줄 거니까. 괜히 근시인 게 아니니까”
평소라면 그냥 입 다물고 있었을 텐데. 왜 자신은 그런 소릴 한 걸까. 야겐은 제 마음속을 찌르는 이 질투가 얄미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질투도, 욱신거리는 아픔도, 다 자신이 못난 탓이었으니까. 그렇게 자책하면서도 내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고 하지 않는, 자신이 유치한 걸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야겐”
“왜 그래?”
이크. 제가 말을 너무 모나게 했나. 괜히 자신을 진지한 표정으로 부르는 아츠에 야겐은 긴장하고 말았다. 역시 어른스럽지 못했다. 그렇게 또 후회를 할 때,
“지금 질투해?”
아츠의 말이 푸욱, 하고. 야겐의 깊은 곳을 찔렀다.
애써 감추고 있던 감정을 다 까발려진 기분. 단지 저 한마디에, 제 형제와 주군에게 품어온 생각을 다 들켜버린 기분. 당황을 넘어 화가 날 정도로 부끄러워 진 야겐은, 그 답지 않게 화를 내고 말았다.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유치하게 굴지 마”
“하지만 딱 하는 꼴이 질투잖아. 왜 화를 내?”
“두 사람. 싸우는 거야?”
점점 격해지는 말을 끊은 것은 사니와의 물음이었다. 나가기 위해 옷 가짐을 단정히 하고 얇은 겉옷을 걸치던 그녀는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둘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이 순간까지 화를 내지 않고 걱정을 하는 것은 정말로 제 대장다웠지만, 야겐은 그게 더 부끄러웠다.
‘내가 무슨 짓을’ 자신도 아츠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다른 형제들이 봤다면 분명 놀라거나 웃었으리라. 마른세수를 하고 감정을 다스린 야겐은 먼저 방을 나섰다.
“먼저 나가서 준비하고 있을게, 대장”
그녀의 대답은 듣지 않았다. 대답을 들으면 더 부끄러워 질 까봐. 더 후회하게 될 까봐. 야겐은 도망치듯 혼마루의 밖으로 나아갔다.
“하카타 토시로여! 잘 부탁혀!”
“…됐다!”
서로를 얼싸안는 두 사람. 지하의 젖은 흙냄새와 먼지투성이 상자. 오사카 성 지하 50층에서 결국 하카타를 구해낸 사니와와 1부대는 기쁜 마음으로 혼마루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치고는 드디어 만난 동생을 껴안고 놓아주질 않았고, 많이 다친 나마즈오는 오자마자 수리를 위해 자리를 비웠다. 근시인 야겐은 흙투성이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니와를 대신해 하카타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대장의 지휘 아래 역사를 바꾸려는 무리를 소탕할 거야”
“헤에, 그라니께 전쟁이라 이건가?”
“그래. 대장은 좋은 사람이니까 너무 어렵게 대하지 않아도 돼”
“그랴! 안 그래도 착해 보이는 사람이라 안심했지”
그런가. 야겐은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 본 검조차 좋은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자신의 주군. 제 대장. 그런 대장인데 왜 자신은 이렇게 자잘한 것에도 날을 세우고 마는 걸까. 대화를 하다 말고 제 생각에 잠겨 야겐이 입을 다물었을 때, 저 멀리서 커다란 발소리가 몰려왔다.
“하카타!!”
“어서 와!”
소식을 듣고 달려온 토시로 형제들은 일제히 하카타를 얼싸 안고 기뻐했다. 역시 형제가 많다는 것은 좋구나. 어두운 곳으로 가라앉던 생각이 일순 밝은 곳으로 떠오른 야겐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목을 껴안고, 저마다 환영 인사를 하는 형제들 사이, 뒤 늦게 나타난 아츠는 형제들 사이 파묻혀 보이지 않는 하카타 대신 야겐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장은?”
이 상황 까지도 대장을 찾다니. 역시 제가 생각 하고 있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모른 척 해두었던 아픔이 다시 커지려는 것을 애써 억누른 야겐은 웃는 표정을 잃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으러 갔어”
“그렇구나. 다른 검들은 괜찮아? 누가 수리중이던데. 많이 다친 거야?”
“경상이야. 다들 무사해”
“흐응”
그렇구나. 혼잣말 같은 대답을 한 아츠는 그제야 하카타에게 안겨들었다.
“어서 오라고 형제~!”
“아이고! 다들 진정하더라고!!”
“무사해서 다행이야!”
눈물겨운 형제 상봉. 그리고 자신도 분명, 그 형제들 중 하나. 지금 이 순간은 얼마든지 기뻐해도 지나치지 않은데, 어째서 자신은 하카타를 얼싸안을 수 없는 걸까. 분명 처음 오사카 성에서 구출 했을 때, 감격의 포옹을 하긴 했지만 그건 형제간의 포옹이라기엔 정이 부족했다. 역시 자신은 필요 이상으로 어른스러운 성격인 것 같다. 그렇게 단정한 야겐이었지만, 그렇다면 지금 제 마음속에 낀 어둠은 뭐라고 설명하면 좋은가.
“얘들아, 하카타가 곤란해 하잖아”
옷을 갈아입고 온 그녀는 하나로 뒤엉켜 있는 단도들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이가 좋은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로 귀여운 상봉을 할 줄은 몰랐던 걸까. 하카타를 구해줄 생각은 잊고 한참은 웃은 후에야, 사니와는 형제들에 깔린 하카타를 꺼내주었다.
“다들 과자 사놨으니 가서 먹어. 하카타도 과자 좋아하지?”
“당연하지라!”
“그럼 가자. 자, 손 씻고”
주인이라기 보단 보모 같은 모습. 야겐은 순식간에 북적북적하던 형제들을 통솔한 그녀의 모습에 박수를 칠 뻔 했다. 역시 사니와라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 스스로는 자신이 평범하다고 여길지 몰라도, 야겐의 눈에 제 주군은 제가 모셔온 그 어떤 주인보다 훌륭한 명장이었다.
모두가 손을 씻으러 자리를 뜨고, 야겐도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그는 아직 방을 떠나지 않은 아츠가 사니와의 손을 잡은 것을 보았다.
“자, 대장도 손 씻자! 우리만 씻어라니, 이상하잖아!”
“후후, 아츠는 너무 날 챙긴다니까”
“내 대장이니까 당연하잖아!”
‘내 대장이니까?’ 야겐은 코웃음을 쳤다. 거짓말. 아츠가 지금 하는 말은 순 거짓말이다. 아츠가 저렇게 사니와를 챙기고, 그녀에게 더 웃어주고 마음을 쓰는 것은 ‘좋아하니까’ 그러는 것이지 자신의 주인이니까 챙기는 것이 아니다. 형제니까 알 수 있었다. 아츠는 분명, 그의 주군이자 자신의 주군인 그녀를 이성으로 좋아하는 것이다.
“안 가는겨?”
“응?”
아츠의 거짓말을 곱씹고 있다가 정신이 들자 남은 것은 자신과 하카타뿐이었다. 사니와는 이미 아츠의 손에 끌려 가 버린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아아, 가야지”
“…있잖여”
“응?”
“혹시 좋아하는겨? 주군 말이여”
“뭐?”
이 질문은 또 뭔가. 제가, 한낱 도검인 제가 주군인 그녀를 좋아하느냐고?
묻는 표정으로 봤을 때 저 ‘좋아한다’는 분명 이성과 이성간의 좋아함을 뜻했다. 절대 주군과 가신 사이, 단순한 호불호의 의미가 아니었다.
“무슨 소릴 하는거야. 나는…”
“너무 대놓고 질투허면 여자는 싫어하는겨~ 나가 장사치라 이런 건 좀 아는디 그렇게 질투할 거면 차라리 솔직하게 들이대는 게 남는 장사일겨!”
무슨 대단한 비법이라도 알려주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한 하카타는 윙크를 하곤 방을 나가버렸다. 그런 게 아닌데. 해명할 틈도 없이 사라진 상대와, 대상을 잃은 변명에 짓눌려 굳어버린 야겐은 그녀의 손을 떠올렸다. 희고 고운. 검보다는 색종이나 꽃이 어울리는 손을. 지금은 제 형제가 잡고 있을 손을.
‘내가 대장을, 좋아한다고?’
그럴 리가 없다. 고개를 세차게 저은 야겐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쌌다. 자신은 검이다. 지키고 해치는 도구다. 그런데, 주인을 사랑하다니.
“그럴 리가 없어…”
하카타의 말을 온 몸으로 부정하는 야겐은 제 가슴속에 욱신거리는 아픔이 커져가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