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배소년 총통조 디스티 드림
- 오리주 / 스토리 네타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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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Esoruen
사생아의 삶이란 모두 부당했다. 아니, 세상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사생아라는 것 자체가 부당한 존재일지도 몰랐다. 어린 나이에 강제로 제국군에 들어간 셀렌은 군복이라고 부르기도 초라한 전투복을 처음 받았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은 부당하게 태어난 아이니까,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별로 억울해 하면 안 된다고.
자신을 낳고 혼자 길러온 어머니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억척스럽고 당당한, 기가 세고 튼튼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전쟁 중에 도는 역병을 견디기는 어려웠던 걸까. 시름시름 앓으며 약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그녀는 셀렌을 친부에게 맞기고 얼마 뒤 세상을 떴다.
제국의 정치가인 친부는 셀렌을 냉대하지 않았지만 따뜻하게 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제가 낳게 한 자식이니 의무를 다해야 된다는 듯, 한 번도 보지 못한 딸을 기꺼이 거두었을 뿐.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1년, 셀렌에게 상류층의 교육을 가르친 그는 어느 날 대뜸 그녀에게 ‘부탁’해왔다.
“셀렌, 아버지를 위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겠니?”
자신보다 훨씬 불리한 위치에 있는 어린아이에게 저런 걸 묻는 건 어른으로서 더없이 지독한 짓이었다. 하지만 셀렌은 그것도 모르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고아가 될 뻔 했던 자신을 거두어 준 건 결국 이 친부뿐이니까. 부탁 하나 쯤 이라면 못 들어줄 것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친부가 바란 것은 그녀가 군사학교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집에서 가르치는 교육에는 한계가 있고, 요즘 시대에 군인만큼 힘을 가진 직업은 없다. 전쟁이 빈번히 일어나는 제국에선 능력 있는 군인이란 천재 학자보다, 돈 많은 재벌보다 강력하다.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설득하려드는 아버지는 조금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어차피 필요 없는 자식, 최대한 이용하자는 심산이겠지’ 셀렌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말에 설득당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어차피 자신에게는 이게 최선이었으니까. 셀렌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저택에 사는 친부의 아내와 그 자식들에게 자신은 죽여 버리고 싶은 오점일 테고, 아버지에게는 애물단지인 셈이니까. 저택 안에서 살다가 위기에 처하고 자칫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전쟁터와 가까워지는 게 속편했다. 그곳에서는, 실력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부친의 말대로, 제국은 정말로 전쟁이 밥 먹듯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신문이나 소문으로 ‘동쪽에서 또 전쟁이 터졌다’ 라던가 ‘서쪽 마을 하나가 또 없어졌다’ 같은 소리를 들어오긴 했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전쟁은 그 스케일이 달랐다.
군사학교에 들어가 우수한 성적으로 학년 톱의 성적을 유지하던 그녀는 졸업도 하기 전, 전쟁터로 끌려가 책과 신문으로만 배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직접 겪는 전쟁은 세상의 그 어떤 끔찍한 말로도 표현 할 수 없었다.
마을이 사라졌다는 말과 집을 태우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마을 사람들이 전멸했다는 말과 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태워 죽였다는 것은 다른 것이었고, 전사자가 100명이란 것과 주변 동료가 100명 죽은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몇 년간 전선에서 싸우며, 셀렌은 많은 공을 세우고 죽음에 무감각해져갔다.
그녀는 원래 사격에 재능이 있었다. 냉정하게 상황을 볼 줄 알았고, 머리도 좋은 편이었다. 누군가는 그녀의 이런 재능이 아버지를 닮아 그런 것이라고 했지만, 셀렌은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제 친부와 살아온 세월이 1년밖에 되지 않으니까, 아버지에 대한 것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다만, 정치인 아버지를 둔 것은 군인인 딸에게 있어 여러 의미로 좋은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녀의 친부는 셀렌이 곤란한 일이 생기면 최선의 도움을 주었다. 정치인이라는 지위와 인맥을 이용해 그녀를 군에서 살아남게 해 주었고, 그렇게 살아남은 그녀의 공적을 공유했다. 자식의 공은 곧 부모의 자랑이었다. 그것 하나 만큼은 사생아에게도 같았다.
너는 정말 자랑스러운 딸이란다, 셀렌.
아버지는 셀렌이 계급이 오를 때 마다 축하편지를 보내왔다. 너는 자랑스러운 딸이다, 죽지 말거라, 더 훌륭해지렴. 그 모든 말은 가식이 아니었다. 편지 속 친부는 언제나 기뻐하고 있었다. 우연히 낳은 사생아가 자신의 입지를 탄탄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다만 셀렌은 계급이 오를수록 말수가 적어지고, 개인적인 활동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버림받지 않기 위해, 폐기처분 되듯 고아신세가 되지 않게, 그저 열심히 전쟁에 나가 사람을 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행동은 너무 눈에 띄어 예기치도 못한 길을 만들고 말았다.
“감시, 말입니까?”
“그래. 셀렌 대위. 표면상으로는 호위병으로 발령받겠지만 말이지”
어느 날 그녀를 부른 상관은 서류와 함께 한 남자의 사진을 받았다. 어디서 찍은 것인지 조명과 구도가 엉망인 사진의 피사체는 2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성. 양손에 수술용 장갑을 끼고 피가 튄 의사가운을 입고 있는 남자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명확하게 보였다.
“겨우 의사를 감시하는 겁니까, 저는”
“겨우 의사라니. 이 자는 인간이 아니야, 대위”
제법 진지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받아친 상관이 서류를 펼쳐 그녀에게 내밀었다. 읽어 봐. 그렇게 속삭이는 목소리에는 근원에서 부터 나오는 원초적 혐오가 깃들어 있었다.
서류에 따르면, 사진 속 남자의 이름은 디스티라고 했다.
자타공인 누구나 인정한 천재에, 제국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 있는 의사인 그는 몇 년 전 부터 제국의 군의관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읽은 그녀는 도대체 왜 상관이 이토록 제 감시대상을 역겨워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다음 내용을 보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기 무섭게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토할 것 같지? 이해하네. 난 악몽도 꿨으니까”
간단한 이력 뒤에 나타난 것은 끔찍한 사진들이었다. 사람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는 것들을 늘어놓은 사진들. 팔이 기계로 개조된 병사부터 몸 여기저기에 무기로 추정되는 금속이 붙은 소년까지.
“역겹군요”
짧은 감상과 함께 사진이 있는 페이지를 넘긴 그녀는 차분하게 다음 내용을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것은 그녀의 임무와 그 이유.
군의관 디스티는 황제페하가 내린 극비 프로젝트의 핵심인물이니,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게 감시하며 최대한 신변을 보호해야 한다. 그 없이는 프로젝트가 완성될 수 없으니 반드시 살려두되, 배신의 기미가 보이면 생포하거나 사살하라.
“극비 프로젝트?”
“자네 짬밥에 알 일은 아니지. 하지만,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감시하면서 말이지”
“…상당히 중요한 임무 같은데, 이게 왜 제게 온 겁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셀렌은 이 일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하찮은 임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승승장구를 두려워 한 높으신 분이나 동료 중 하나가 더러운 수를 써서 이런 일을 시킨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실체는 그 반대. 이 일은 겨우 대위인 그녀 혼자 수행하기엔 지나치게 중요해 보였다. 황제 직속 프로젝트의 핵심인물 이라면, 한 소대가 전부 사변보호에 나서야 될 텐데. 겨우 자신 하나로, 괜찮단 말인가?
“윗분들에게 자네 실력은 이미 유명해. 그리고 자네 아버지가 누군지도 다들 알고 있지. 대위. 황제는 충신인 자네 아버지를 믿고 있네. 그러니 자네에게 이 일을 넘긴 거지. 물론 표면적으론 자넬 좌천시킨 것처럼 말할 거지만. 알겠나?”
아하. 그런 거였군. 셀렌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높으신 분들 정치싸움에 놀아나면 되는 건가. 그런 것이라면 마음이 편했다.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이고, 이렇게 군에 남아있게 된 것도 아버지의 유능한 처세술 때문이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될 거야.
옆모습만 나온 제 감시대상을 보며 셀렌은 감흥 없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음 날, 최전선에서 제국의 수도까지 온 셀렌은 어디까지 내려가는지도 모를 지하의 실험실에 끌려갔다. ‘여기가 그 자의 연구실이라네’ 씁쓸한 표정으로 셀렌을 배웅한 상관은 최후통첩 같은 소개와 함께 경례를 했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비장하기까지 한 상관의 표정에 그렇게 생각한 셀렌이 경례를 되돌려줬다.
“난 돌아가 보겠네. 모쪼록, 잘 지내길 빌지”
“사진 속 실험체 같이는 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하하, 자네가 농담하는 건 처음 보는군!”
농담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할 틈도 없이 상관은 사라졌다.
싸구려 전등이 깜빡거리는 긴 복도. 굳게 닫혀있는 문들 중 하나 앞에 선 자신. 어쩌다 이런 일 까지 맡아버린 거지. 이제 와서 조금은 제 신세가 처절하게 느껴지는 건 단순한 감상(感傷)일까.
군모를 고쳐 쓰고 노크를 하자, 문 너머에서 들뜬 목소리가 대답했다.
“누구지?”
“오늘부터 당신을 보호하게 된 셀렌 대위입니다. 문 열어주시지요”
“열려있어, 들어오라고!”
문도 안 잠그고 일한단 말인가, 명색에 ‘비밀 프로젝트’의 중심인물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녀는 잠자코 문을 열었다.
“뭐야, 꽤 어리잖아”
그것이 디스티가 셀렌에게 내린 첫 평가였다. 표정과 목소리를 봐서는 단순한 감탄을 넘어, 조금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셀렌은 사진보다 눈에 띄는 외모의 디스티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사진에서는 제법 우중충한 이미지였는데. 실제로 본 남자는 유쾌해 보이기까지 했다. 색소라도 입힌 듯 반짝거리는 자주색 눈을 깜빡이며 셀렌에게 다가온 디스티는 환자를 체크하는 의사마냥 빠르게 그녀를 훑어보았다.
“이제 막 20살을 넘었나? 설마, 성인도 안 된건 아니지? 최전선에 있었던 녀석 치곤 몸이 깨끗하군. 손가락 하나쯤은 날아가 있을 거라고 기대한 내가 바보 같잖아? 이름이 뭐라고 했지?”
“…셀렌 대위입니다, 올해로 18세 입니다”
도살장에 끌려온 돼지라도 된 기분이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람을 관찰하고 그걸 떠벌리다니.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다. 그걸 확신하자 괜히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제 이 사람을 자신이 보호해야 한다니. 차라리 전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대위라고 부르면 되나? 아아, 내 쪽은 편하게 불러달라고. ‘디스티님’ 같은 것도 좋고!”
“닥터라고 부르겠습니다”
“딱딱하기는”
킥킥. 낮은 웃음소리가 멀어져갔다. 셀렌에게 떨어져 도로 수술대로 돌아간 그는 보지도 않고 수많은 메스들 사이에서 제가 원하는 것을 뽑았다. 정말로 수술에는 이골이 난 사람 같았지만, 셀렌은 오히려 그런 점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수술대에 놓인 것이 멀쩡한 꼴의 사람이었다면 이런 거부감은 없었을 텐데.
“뭐어, 난 오늘 하루 종일 여기 있을 거니 내 방 구경이라도 하지 그래? 대위”
디스티는 심드렁하게 말하며 팔이 세 개인 실험체의 등을 갈랐다.
“그러죠”
적어도 저 꼴을 뒤에서 지켜보는 것 보다는 실험실 구경이 재밌겠지. 소리 없는 한숨을 내뱉은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건 셀렌의 실수였다. 눈앞에 장면에 제가 어제 사진으로 본 게 뭔지 까먹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 같은 실수였다.
실험실 여기저기에 있는 것은 박제된 실험체들이었다. 만들다가 죽은 걸까, 아니면 만들고 박제하기 위해 죽인 걸까. 트로피 전시장처럼 쭉 늘어선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상관이 말한 ‘비밀 프로젝트’가 뭔지 싫어도 눈치 챌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인체개조에 관심이 많다는 건 사실이었군’
어쩌다 이런 것 까지 알아버린 걸까. 셀렌은 아까 전 자신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사진 속 실험체 같이는 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어쩌면 그 발언은 취소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상상만 해도 오싹했지만, 셀렌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원초적 공포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