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배소년 총통조 디스티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41회 주제 : 붉은 실
붉은 실
written by Esoruen
피부가 찢어지는 것은 전쟁 중엔 부상 축에도 못 드는 상처였다. 누군가는 총을 맞고, 누군가는 폭발에 휘말려 화상을 입는 와중, 탄환이 스쳐 생긴 상처나 폭발물 잔해에 긁힌 생체기는 아프다는 소리도 내지 못한다. 난전에 익숙한 그녀는 옛날부터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오늘의 상처는 가볍게 넘기기에는 너무 컸다.
“셀렌, 그거 괜찮아?”
제국군과의 전투 후, 부상병들을 옮기고 사망자들을 처리하는 암울한 과정에서 그녀는 제 상처를 신경 쓸 틈도 없었다. 그래서 코일이 그렇게 물어보고 난 후에야, 그녀는 제 오른팔에 깊게 베인 상처가 있다는 걸 알아챘다.
“…아마도 괜찮아”
“아마도가 아니지! 얼른 가서 치료받고 와. 보고는 내가 해놓을게”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오른팔에 흐르는 피의 양을 본 셀렌은 입을 닫았다. 언제 다친 건지도 모를 그 상처는 꽤나 깊게 베인 건지 소매를 제법 적실 정도로 피가 나와 있었다.
이정도면 꿰매야 한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오싹해 지는 것은 분명 제 상처를 꿰맬 사람이 누군지 알기 때문이겠지. 그 사람이 해주는 치료는 어지간하면 받고 싶지 않다. 오른쪽 가슴에 손을 얹은 그녀는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을 진정시켰다.
“군의관”
디스티는 오늘도 새로운 장난감이 가득 생겨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시체는 차가운 곳에, 부상병은 수술대 위에. 분리수거를 하는 청소부 마냥 꼼꼼히 의무실의 사람을 정리하던 그는 한창 바쁠 때 찾아온 그녀가 그다지 달갑지 않은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뭐야, 중위. 지금은 바빠. 딱 3시간 뒤에 찾아와 주면 고마울 것 같군. 그땐 무슨 잔소리든 들어줄 테니까!”
“제가 꼭 군의관의 잔소리를 위해 사는 것처럼 말하는 군요”
“아니었나? 킥킥”
들뜬 목소리, 열차의 유일한 군의관은 팔이 하나 떨어져 나간 부상병에게 마취주사를 놓았다. 이 세상 어디에도 부상병을 수술할 때 웃는 의사는 없다. 그걸 지적하기엔, 이미 디스티는 너무 상식에서 멀어져 버린 인물이었다.
“팔을 꿰매주셨으면 합니다만”
“응? 이 녀석 팔? 안 돼. 없어진 부분에 기관총이 들어간 기계 팔을 심을 거야”
“제 팔 말입니다만”
“네 팔?”
메스를 집어든 디스티는 요란하게 수술도구들을 내려놓았다. 분명 지금까지도 신나있긴 했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들뜬 표정. 가지고 싶던 것을 선물 받은 어린애마냥 활짝 웃은 그가 비어있는 수술대를 가리켰다.
“자, 여기 앉아. 그래, 마취는?”
“부분마취면 됩니다. 전신마취 하면…”
“안 해. 안한다고. 거 참 까다롭게 굴기는!”
그녀가 전신마취에 학을 떼는 것은 당연했다. 몇 년 전, 강제로 마취당해 심장이 오른쪽으로 옮겨진 그 일을 생각하면 저렇게 질색하는 것이 약과였다. 만약 셀렌이 조금만 더 성격이 나쁘거나 성격이 유약했다면, 이렇게 그를 따라 반란군으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의를 벗고 수술대 위에 앉은 그녀는 생각보다 흉한 상처의 실태에 혀를 찼다.
“뭐야, 이거 일할 맛이 나겠는데? 이렇게 다쳐서 오다니, 얼마만이야!”
팔의 상처를 본 그는 뛸 듯 기뻐하며 바늘을 찾았다. 어떻게 제가 다친 것 하나 만으로 이렇게나 기뻐할 수 있을까. 새삼스럽지만 그녀는 역시 제 몸을 조심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만약, 제가 죽거나 혼수상태가 되어 디스티 앞에 놓이는 날에는…
“따끔할 거야, 셀렌”
어린아이라도 대하는 듯 상냥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와 함께, 주사바늘의 차가움이 팔로 파고들었다.
“얼마나 걸립니까?”
“글쎄다, 저 녀석의 마취가 풀리기 전 까지는 끝나겠지?”
디스티는 죽은 듯 잠든 병사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없었다면 저 병사는 이미 개조에 들어갔겠지. 묘한 동정심에 한숨이 나오는 것은 결국 자신도 같은 처지이기 때문일까.
제 몸에 찰싹 달라붙어 상처를 봉합하는 디스티는 신기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원래 일할 때는 집중력이 높긴 했지만, 그래도 늘 자신에게 기분 나쁜 농담이나 수술 상태를 알려주곤 했는데. 평소와는 다른 그의 모습에 불안감이 엄습한 셀렌이, 슬쩍 물었다.
“흉터, 남습니까?”
“그런 거 신경 안 썼잖아?”
“그냥 묻는 겁니다”
“아마 남겠지. 괜찮아. 나는 중위가 만신창이가 되어도 좋으니까”
“말은 똑바로 해야죠. ‘되어도’ 가 아니라 ‘되어 줬으면’ 이잖아요?”
킥킥킥. 정확한 지적에 그는 웃음만 흘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가만히 있어야 하는 상태에 이골이 날 때 쯤 상처의 봉합이 끝났다. 소독약으로 깨끗하게 소독하고, 따끔거리는 상처 위에 입을 맞춘 그는 큰일이라도 해낸 사람처럼 자랑스럽게 외쳤다.
“됐어! 항생제는 어디 있는지 알지? 알아서 챙겨먹도록!”
“감사합니다”
옷을 입기 전 상처의 상태를 봐야지. 디스티의 실력은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의 정신상태 또한 누구보다 잘 아는 셀렌은 거울에 팔을 비추었다.
아, 이런.
짧은 감탄사는 불쾌함이 녹아들어있었다.
“군의관”
“응~?”
“이거, 봉합용 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상처를 꿰맨 실은 새빨간 붉은색이었다.
“음, 그렇지”
“그렇게 태연하게 할 말이 아니잖습니까?”
“뭐 어때. 보기 좋다고, 중위. 아주 예뻐”
비꼬는 의미가 아니었다. 실수도 절대 아니었다. 디스티는 마치 이런 상황이 오기 기다렸다는 듯 일을 벌였고, 셀렌은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이런 경우에는 뭘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잘 봉합된 상처를 멍하니 보던 그녀는 다가와 제 팔을 잡는 그를 한 대 칠 수도 없었다.
“재밌는 이야기를 알려주지, 중위. 먼 동쪽에서는 인연이 있는 남녀는 붉은 실로 묶여있다고 전해지는 미신이 있다네”
“그래서요?”
“그냥 그렇다는 것뿐이야, 히히”
뭘 말하고 싶은지 뻔히 보이는데, 결국 끝까지 말은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가 얼마나 기분 나쁜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기분 나쁘니까, 자신에게 하는 거겠지. 셀렌은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옷을 입었다.
“세 시간 뒤에 오지요”
장난은 적당히 하시길. 짧게 덧붙인 말에는 한숨이 숨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