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무로의 기묘한 전학
written by Esoruen 히무로 타츠야는 일본인이었지만 일본어보단 영어가 익숙한 소년이었다.
아주 어린나이부터 미국에서 생활해 온 히무로는 몇 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온 그 감회를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새로 통학하게 될 학교는 아키타의 미션스쿨로, 기숙사가 있어 히무로에게는 더없이 좋은 학교였다. 교복도 블레이저로 외국 생활을 한 그에게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 세련된 디자인이었고, 농구로 어느 정도 이름이 있기까지 한, 이상적인 학교였다. 전학 수속을 밟은 히무로는 우선 다음날 등교하기 위해 미리 기숙사에 들어왔다. 자신과 같이 생활하는 룸메이트는 우연히도 농구부의 1학년생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일까. 기대에 부푼 히무로는 무거운 짐을 들고 방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저…” “으응?” 방문을 연 히무로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침대 위에, 거대한 남학생이 누워서 초코 과자를 먹고 있어서였다. 대충 봐도 족히 2m도 넘어 보이는 룸메이트의 키에, 히무로는 제 눈과 뇌를 의심했다. 분명 1학년이라고 한 것 같은데, 저것이 흔한 일본인 고등학교 1학년의 키란 말인가. 외국에서는 저 정도 키가 되는 학생이 가끔 있었지만, 여기는 일본이지 않은가. 저것이 일본인, 자신과 같은 황인종이란 말인가. 아니, 애초에 1학년이 맞는가. 그리고 웬 초코 과자? 저 덩치라면 초코 과자가 아니라 M도날드의 고기페티만 3장 들어가는 햄버거를 먹고 있어야 어울리지 않은가! “아, 저, 그, 오늘부터 같이 지내게 된 히무로 타츠야라고 해” “아아, 그래? 여기 내 침대니까 저쪽 침대 쓰면 되고” 초콜릿이 녹아 갈색 얼룩이 진 큰 손이 빈 침대를 가리켰다. 저런 손과 키라니, 확실히 농구부에 어울리는 신체이기는 했지만… 말투랑 안 어울리게 목소리나 말투는 제 나이다웠기에 히무로는 다시 한 번 혼돈과 백팔번뇌를 느꼈다. 아무래도 이 룸메이트가 자기보다 연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저, 이름이 뭐야?” “왜?” “아니, 이제부터 같이 지낼 거니까” “무라사키바라 아츠시” “어?” “무라사키바라 아츠시, 귀 나빠?” 귀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히무로로선 바로 그 이름을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보통 일본인의 성이 저렇게 길던가. 자신이 미국에 가있는 사이, 일본의 성이 격변한 것은 아닌지 괴상한 망상까지 들었다. 무라사키바라, 라니. 보라색 장미? 히무로는 룸메이트의 보랏빛 머리를 보고 또다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저거, 염색인가. 일부러 이름과 깔맞춤을 한 것인가. “어, 그럼 아츠시” “에에, 갑자기 이름?” “미안, 나 미국에서 와서 이게 편해. 무라… 는 너무 기니까” “흐응” 다행히 룸메이트는 제 호칭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생긴 거랑 행동은 좀 이상해도, 나쁘지 않은 사람 같단 확신에 히무로는 안심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험난한 전학일지의 전야제에 불과했다. “히무로 타츠야라고 합니다, 감독님 계신가요?” 다음날, 바로 농구부에 입부하기위해 농구부의 문을 연 히무로는 가장 근처에 있는 키가 큰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은 드리블 연습을 하다가 공을 잡고, 히무로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감독 말이냐해?” 이건 뭐야. 히무로의 목젖까지 차오른 말이었다. 해? 아니, 해? 저 말투는 흡사 야시시한 제목의 만화에 나오는 전투민족 외계인 차이나 드레스 소녀의 말투가 아닌가. 설마 그 만화 광팬인건가. 그런 건가? 아니면 정말 중국인인가? 아니 중국인이라면 중국말로 대꾸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일본어로 잘 말해놓고 마지막에 ‘~해’ 라니? 히무로는 자기가 잘 못 들었기를 바라며 입을 열었다. “아, 네” “아직 교무실에서 안 왔을거다해, 입부 희망자냐해? 아, 너 2학년 전학생 맞지해? 미국에서 온” 잘 못 들었기는 개뿔. 히무로는 귀까지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억지로 억누르느라 입가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대화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날 만큼. 지금 이 상황이 웃겨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귀엽다면 귀여운 말투지만, 뭐란 말인가 이놈은. 이쪽도 2m 정도 되어 보이는데, 이 학교의 거구들은 다들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 유아같이 되는 특성이라도 있단 말인가. “아아, 응 맞아. 어떻게 알아?” “나도 2학년이니까해. 나도 전학왔다해, 중국에서” 진짜 중국인이었단 말인가! 한계를 느낀 히무로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렸다. 도저히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일본의 학교는 다 이런 것인가. “어? 뭐야 입부희망자야?” 이때, 누군가가 말을 걸며 다가와 히무로는 겨우 포커페이스를 찾고 고개를 들었다. 듬직한 덩치의 남자는 자신과 마성의 중국인 학생을 번갈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아, 드디어 감독님의 등장인가. 히무로는 부드러운 미소로 그에게 인사했다. “아, 네. 입부하려고 왔는데…” “그래? 조금 있으면 감독님 오실거야. 앉아서 기다릴래?” “에? 그쪽이 감독 아닌가요?” “난 주장인데” 주장이라면, 학생이란 뜻. …학생이란 말인가. 학생? 이 남자가? 히무로는 자세히 남자를 살펴보았다. 늠름하게 두 개로 갈라진 턱, 진하게 내려온 구레나룻, 최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도 보이는데, 당장 품속에서 사진을 꺼내며 ‘하하 내 딸 사진이네, 보겠나?’ 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외모인데 학생이라니. 방금 전까지 겪은 말투로 인한 쇼크는 그야말로 애교였다. “아, 주장님, 이군요?” “그렇다해. 늙어 보이지만 말이다해” “류!! 말이 심하잖아!” “뭐 어떻냐해” 두 사람은 티격태격 다정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히무로는 그 사이에서 우주를 느끼고 있었다. 해탈이라 함은 이런 것이었나. 이제 더 이상 무슨 꼴을 봐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은 히무로의 오산이었다. “둘 다 연습 안하고 뭐해?” “아, 후쿠이” 주장과 중국인 부원사이의 대화를 끊어먹은 누군가를 보기 위해 히무로는 고개를 들었는데, 보인 것은 얼굴이 아닌 샛노란 머리칼 뿐 이었다. “어딜 봐 어이” 살짝 고개를 숙이자,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 보였다. 아아, 그런 거였나. 히무로는 이제야 묘한 위화감을 알아차렸다. 자신이 지금까지 만난 학생들은, 모두 자기보다 훨씬 큰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또 고개를 그 정도의 높이로 들고 상대방을 확인하려 한 것이었지만, 상대는 자신보다 작은 키였던 것이다. “아, 죄송해요” 이런 생각은 하면 정말로 안 되는 것을 히무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를 보는 히무로의 감상은 정말 하나로밖에 요약할 수밖에 없었다. 작다. 정말로 작다. 분명 183cm 자신보다 조금 작으니 평균보다는 큰 키, 농구부에서만 조금 작은 키 수준인데 같이 있는 엉덩이턱 주장과 야토족 같은 말투를 쓰는 중국인에 비하면 정말 황새 옆의 참새, 코끼리 옆의 다람쥐 같았다. 그런데 안 그래도 정신없는 그때, 저 멀리서 엄청난 들려왔다. ‘쾅!’ “거기 너희 모여서 뭐 하는 거야! 연습 안 해?!” 멀리서부터 죽도로 바닥을 치며 다가오는 것은 긴 생머리의 여자였다. 껄렁거리는 폼, 양키 같은 그 행색에 히무로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설마 아무리 막장인 농구부라지만, 불량학생을 매니저로 두고 있단 말인가. 진지하게 입부를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 죽도의 여인은 히무로에게 다가왔다. “네가 입부 희망자인가” “아, 네에” “반가워, 감독인 아라이라고 한다. 우선 입부신청서를 작성하러 갈까?” ………………… 히무로는 딱 한 마디만 떠올렸다 다시 전학 가버릴까… + 저랑 개그는 안맞나봅니다...ㅠㅠ 혼자만 재밌는 개그를 한 개그맨이 된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