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If 설정 기반입니다.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주의해주세요.
Bitter candy
07
written by Esoruen
미야지 키요시는 고등학교 양호선생님으로서 근무하는 3년 만에 가장 큰 난제에 빠져있었다. 그것은 빡빡한 학교업무나 일에 회의감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학교의 학생 중 한 명. 2학년의 한 남학생 때문이었다.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그는 3년간 학교에 근무하며 여러 학생들에게 고백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젊고 훤칠한 남자선생님이라면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으니까. 데이라는 이름이 붙는 날마다 초콜릿이니 빼빼로 같은 것을 양호실에 놓고 가는 여학생도 많았고, 대담하게 러브레터를 눈앞에 내밀거나 고백하는 여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남학생이 고백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솔직히, 남자에게 고백 받아 기분 나쁘다던가 하는 문제에서 오는 고민은 아니었다.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그 ‘적극성’에 있었다.
보통은 애매하게라도 ‘거절’의 의미를 내비치면 학생들은 ‘역시나’라는 표정으로 물러서곤 했다. 하지만 하야마 코타로는 달랐다. ‘졸업까지 기다려 달라’ 그것이 애매한 미야지의 말에 대한 그의 대답이었다.
“그 자식은 눈치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냅다 집어던지고 침대에 누운 미야지가 외친 말이었다. 보통은 그 정도로 둘러대면 물러나는 것이 정상인데. 집념이 강하다고 해야 할지 눈치가 없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하야마는 진심이었고 정말로 미야지 자신과 사귀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2학년인 그가 졸업하기까지는 앞으로 2년. 그동안 그의 마음이 바뀐다면 걱정할 것도 없었지만 아니라면 큰일이었다.
정말로 다시 고백해 오면, 사귀어야 할까? 바보 같은 자문에 미야지는 다시 머리를 헝클였다. 학생이었던 남자와 사귀라니 말이 될 리 없었다. 미야지는 모태솔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자와 몇 번 사귀어본 경험도 있어서 연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혼기가 차곡차곡 차오르는 20대였다. 부모님께 신부감을 데려와도 모자랄 마당에 연하의 남자를 사귀었다간…
“아아 몰라!!”
신경질 적으로 겉옷을 옷장 근처에 벗어둔 미야지는 비틀비틀 냉장고 앞으로 걸어갔다. 저녁도 먹지 못하였는데 머리만 굴렸더니 허기만 더 심해졌다. 어차피 혼자 사는 오피스텔이라 냉장고 안에는 인스턴트식품이나 먹다 남은 반찬뿐이었지만, 그것으로도 미야지는 충분했다. 3년. 벌써 3년을 이렇게 살았다. 이미 적응하고도 남았다. 양호선생으로서 이런 식단이 나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달랐으니까.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스파게티를 데워 식탁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테이블에 올리자 맛있는 냄새와 뜨끈한 김이 올라왔다. 잘 먹겠다는 인사도 생략하고 젓가락을 집은 미야지는 설익은 면을 입 안으로 흘려 넣었다.
이제는 너무 자주 먹어,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스파게티였지만 미야지는 크게 불만이 없었다. 물론 가끔은 따뜻한 집밥이 먹고 싶었지만, 본가에 ‘밥을 먹으러’라는 이유만으로 가기는 뭔가 쑥스러워 할 수 없었다.
‘집밥이라…’
따뜻한 쌀밥, 방금 막 만들어 신선한 반찬들 먹지도 못할 거, 생각이라도 하던 미야지의 머릿속에 하야마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지 말고, 저희 집에서 저녁 드시고 가실래요?’
그때 그냥 허락할 걸 그랬나. 엉뚱한 생각이 들어 제 머리를 때릴 뻔 했다. 아무리 집밥이 먹고 싶어도 학생의 집에 담임도 아닌데 뜬금없이 들어가 밥만 먹고 가다니, 그런 일을 했었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분명 교감이 한소리 할 것이 뻔했다.
하아. 한숨을 내쉰 미야지는 먹고 남은 쓰레기를 버리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야마가 다친 날, 병원에서 집으로 데려다주는 그때 일어난 해프닝. 키스할 듯 가까이 다가왔던 하야마는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자동차에서 내려 집으로 달려갔다. 그 이후 미야지의 머릿속에선 하야마가 자꾸 떠올라, 미야지는 업무에도 지장을 받게 될 정도였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여학생 같은 자신의 행동이 미야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마 자신이 정말 하야마를 좋아하게 된 걸까? 그럴 리가 없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입은 떨어지질 않았다.
‘내일 봐요 선생님’
“난 네 얼굴 더 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거든?!”
그것만큼은 진심이었다. 더 이상은 하야마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하야마는 발에 불이 나게 양호실로 올 것이고, 자신이 양호선생인 이상 그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만날수록, 제 마음은 어지러워 질 것이다.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미야지는 이런 심란한 기분을 더 이상 지속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