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배소년 총통조 디스티 드림
- 오리주 주의, 제국조 네타 주의
- 제 55회 주제 : 상실
언제나 말하지만 제 디스티 드림은 제국조 네타가 적나라하니 주의해 주세요 ㅠㅠ
여러분 제국조-총통조 팝시다 최고에요 최고
상실
written by Esoruen
“그러고 보니, 중위께서는 뭘 좋아하나요?”
“…네?”
“그러니까, 좋아하는 거 말입니다. 음악이든 취미든 먹을 거든…”
갑자기 저런 것은 왜 묻는 걸까. 셀렌은 수상하다는 눈으로 제 부하를 보았다. 지난 몇 년간, 이 열차에 타고 있으면서 제게 이런 것을 물어오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는데. 아니,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누군가 물어본 걸지도 모르지. 잠깐 고민하던 그녀는 짧은 대답을 내놓았다.
“딱히 없습니다만”
“그러지 말고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네”
아아, 표정만큼 대답도 차갑다. 부하는 냉담한 그녀의 대답에 실망하고 말았다. 그래도 모처럼 친해지기 위해 용기 내어 말을 건 건데, 저런 미지근한 대답만 하고 가버리다니. 얼빠진 표정으로 서있는 부하를 본 코일은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다독여 주었다.
“이봐, 셀렌이 귀찮아서 저러는 건 아니니 상심 마”
“네? 그런가요?”
“그래, 저 녀석은 정말로 호불호가 없거든”
호불호가 없다. 그건 좋은 말로 해선 까다롭지 않다는 뜻도 되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개성이라고는 없다는 의미와 같았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 아니, 동물들조차도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것이 개성인데. 셀렌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그녀는 성격이라는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공장에서 찍어낸 규격품’ 셀렌은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무난하고, 가장 편하게 만들어진 물건. 필요 없는 기능은 과감히 버린, 실속만을 중요시 한 물건. 그녀는 한명의 인간이라기 보단, 우수한 군인이라는 틀로 찍어낸 단백질 덩어리와 같았다.
‘좋아하는 것이라’
분명 제게도 그런 것이 존재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별로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생부에 밑에서 자라기 전, 어머니와 함께 살 때는 그녀도 그저 평범한 인간 중 하나일 뿐이었다. 어머니가 해주는 파이를 제일 좋아하고, 놀이로는 술래잡기를 제일 좋아했던가.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과거가 가물가물한 것은, 모두 그녀가 단순한 물건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서 일어난 오류 때문이었다.
억지로 과거를 생각해 내려고 한 탓일까. 그녀가 의무실에 도착했을 즘엔 지독한 두통 때문에 절로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아아, 이런 표정으로 들어갈 순 없는데. 그는 제 상관이 얼마나 자신의 찡그린 표정을 좋아하는지를 떠올리고 억지로 표정을 폈다.
미소는 아니지만, 흠 잡을 곳 없는 훌륭한 무표정.
셀렌은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군의관”
“아, 늦었네? 히히히, 어디 다쳤어?”
실험대 앞에 서있는 그는 등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셀렌은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저것부터 묻는군. 셀렌은 그의 질문 패턴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새삼스럽게 한숨이 나올 뻔 했다.
“아뇨”
“그거 아쉽군, 정말 아쉬워”
진심으로 한탄하는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으면서 그녀의 말을 믿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차피 다쳤다면 말 하지 않는 쪽이 손해다’ 지극히 당연한 두 가지 사실만 알아도 디스티는 굳이 셀렌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조금 이상한 방향이긴 해도, 그는 이 열차에서 가장 그녀를 믿는 사람이었으니까.
“뭐 하고 계십니까?”
“응? 아아. 제국군이 여전히 뭔가 재밌는 걸 하나 싶어서 말이지, 히히”
그는 손에 쥔 메스를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빙그르르. 가볍게 셀렌 쪽으로 향한 디스티가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왔다. 가운 가득 튄 피. 알코올과 혈액의 불쾌한 냄새.
셀렌은 익숙해진 몰골에 잔소리를 퍼부었다.
“옷이랑 장갑부터 갈아입으시지요”
“됐어, 곧바로 다친 녀석들을 잡아다가 이것저것 뜯어고칠 거니까!”
“혹시 ‘위생관념’ 이라는 말은 아십니까?”
“아아. 알겠어. 알았어! 나중에 갈아입을게. 그 전에~”
싱글벙글. 이가 훤히 보이도록 웃는 디스티가 가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나사와 비슷해 보이는 금속. 새까만 색의 그 부품은 분명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물건이었다.
“그건?”
“저 제국군 녀석 시체에서 나왔어. 저 녀석, 안에 남아있는 게 별로 없더군. 대부분 개조 된 거야”
“제국에 군의관만한 미치광이가 있다는 뜻입니까?”
“설마 나만한 위인이 있겠어? 이 디스티 님이 누군데!”
이 상황에서도 ‘미치광이’에 태클을 걸지는 않는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셀렌은 이 남자에 익숙해 졌다고 자부하면서도 늘 그에게 놀라곤 했다. 이 사람은 뭘 잃어버렸기에 이 지경이 된 걸까. 혹은, 무엇이 그렇게 넘쳐나 이렇게 된 걸까.
성격도 기호도 잃어버린 그녀로서는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아직 ‘그 계획’을 계속하고 있는 거야. 바보 같기는. 이 디스티 님 없이 ‘테슬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결국 저런 실패작을 총알받이로 내보내는 게 고작이면서”
그는 진심으로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 속상한 목소리로 토로했다. 자신의 천재성을 잘 아는 건 좋지만, 이쯤 되면 ‘재수 없다’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 한 것은, 셀렌은 그의 이 으스댐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익숙해서인가, 그것도 아니면 호불호가 사라진 제 문제인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어느 쪽이던 비극에 가까운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럼, 저 시체는 꽝인가요?”
“완~전히! 건질게 아무 것도 없는 재료라니. 생선인 줄 알고 샀더니 모형 물고기를 집어온 기분이라고. 마네킹이 더 쓸모가 있겠어!”
“…그 의미가 아닙니다만. 뭐, 그 정도로 개조 된 인간이면 확실히 군의관이 건질 건 없겠군요”
“그래. 아쉽게도 인간은, 한번 잃어버린 건 두 번 다시 안 돌아오는 것이 많거든”
그건 분명 장기에 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말 같아져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커다란 안경 너머의 눈동자. ‘놀랐어?’ 라고 입술 모양만으로 묻고 있는 얼굴이 훅 눈앞으로 다가왔다.
“뭐어, 대신 새로운 걸 채워 넣는 것은 가능하지. 상실은 곧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 내니까”
알고 있잖아, 중위.
귓가에 속삭인 그는 시체에서 나온 부품을 그녀의 손에 넘기고 떨어졌다.
“그걸 총통에게 전해줘. 프로젝트에 관한 건 말하지 않아도, 똑같은 개조병사가 잔뜩 있다는 사실은 알려줘야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얌전히 그의 말에 답한 셀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의무실을 나섰다. 쾅. 평소보다 시끄럽게 문을 닫고 그대로 멈춰서 벽에 기댄 그녀는 문득, 자신이 왜 저 남자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지를 떠올렸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군인이 된 자신, 그저 명령 받았기에 그의 호위병이자 감시병이 된 자신. 하지만 그에게 ‘불쾌함’과 ‘호기심’ 그리고 이런저런 ‘거부반응’과 ‘원망’ 심지어 약간의 ‘기쁨’까지 느끼게 된 것은 명령이 아닌 오직 디스티와의 교류에서 온 것들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자신에게, 아주 안 좋은 것부터 조금씩 쌓아올려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희미한 과거이긴 하지만, 분명 제국에 있었을 시절의 자신은 이렇지 않았다. 조금 더 표정이 없고, 비꼬는 법도 몰랐으며, 상관에게 잔소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후우”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린 그녀는 오른쪽에서 뛰는 심장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렇게 기계 마냥 뜯어 고치려고 하는 사람이, 자신의 상실한 인간성을 되돌려주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은 그를 따라 온 것이었다.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고 나자, 머리에 남아있던 고통도 깨끗이 사라졌다. 셀렌은 조금 가벼운 걸음으로 총통의 방으로 향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