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얀데레 주의, 식인 주의, 자세한 묘사는 없지만 민감한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  7대 죄악, 교만 시기 탐욕 분노 폭식 나태 색욕

 

 

 

The Seven Sins,

 Gluttony

written by Esoruen

 

 

3월 5일

선배가 졸업했다. 이제 더 이상 선배는 토오 고교의 학생이 아니게 된다.

이마요시 선배는 지망하던 D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공부를 잘 했던 선배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 말을 듣고 놀라는 농구부원은 아무도 없었다. 스사 선배는 G대로 갔다고 한다. 둘 다 도쿄 내의 대학이었으니까 가끔은 얼굴을 마주 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제 농구부의 주장은 나였다. 원래 선배들이 은퇴한 그 날부터 내가 주장이긴 했지만, 선배들은 졸업하기 그 직전까지도 우리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고 연습을 봐주거나 했기 때문에 그다지 은퇴했다는 느낌이 없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사쿠라이는 두 선배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많이 울었다. 모모이도 섭섭한지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감독은 두 선배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나는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 했다. 빈손이었지만 선배들은 날 본 것만으로도 반가워 해줬다.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 선배랑 사진을 찍었다. 단 둘이 찍은 첫 사진이자 마지막 사진이 될 거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집에 올 때까지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잠이 오지 않는다.

 

3월 14일

선배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대학 근처에 자취방을 잡았으니 놀러오라는 것이었다. 혼자 가기 민망해 거절할까 하다가 승낙했다. 선배가 보고 싶었으니까. 선물은 주스로 사갔다. 방은 좁아도 깨끗했다. 선배가 가끔씩 놀러 와도 된다고 했다.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 또 놀러 올 수 있을까.

 

3월 16일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 한 번 더 선배를 보고 싶어서 선배의 자취방으로 갔다. 선배 대신 모르는 여자가 문을 열었다. 누구냐고 물으니 선배의 애인이라고 했다. 선배는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나중에 선배에게 문자해 여자 친구가 있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클럽에서 만나 사귄지 한 달 정도 된다고 했다. 미리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문자가 왔다. 답장은 하지 않았다.

 

3월 19일

빨리 돌려 받아야해.

 

3월 21일

사쿠라이와 만났다. 비프스튜의 재료를 물어봤다.

소고기 300g. 당근 하나. 양파 하나. 감자 두 개. 샐러리 2개, 토마토 페이스트, 우스터소스, 소금, 후추, 밀가루, 버터

모모이에게 물어보지 않기를 잘했다.

 

3월 22일

재료를 구하러 나왔다. 가방이 무겁다. 옷이 더러워져서 어머니에게 혼났다.

 

3월 23일

냉장고 안에서 자꾸 비명이 들린다. 시끄럽다.

 

3월 24일

오랜만에 선배를 만나러 갔다. 선배는 웃으면서 날 반겨줬다. 나를 앉혀놓곤 농구부를 잘 부탁한다느니 아오미네랑 싸우지 마라느니 여러 충고를 해주셨다. 언제나 내가 걱정을 끼치는 것 같아 미안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고 하기에 직접 만들어 간 비프스튜를 드렸다. 드시곤 맛있다면서 날 칭찬해 줬다. 사쿠라이에게 배웠다니까 모모이에게 배우지 않아 다행이라며 농담도 하셨다. 선배는 스튜를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 난 배가 부르다고 하고 먹지 않았다. 오랜만에 선배와 긴 시간을 보내 기분이 좋았다.

 

3월 28일

선배가 애인에게 차인 거 같다고 한다. 내가 들은 건 아니고 스사선배가 문자로 말해줬다. 나는 그것 참 안됐네요, 라고 답장했다.

 

 

 

4월 18일

새 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학교생활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입시 공부가 지긋지긋하다. 일 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사쿠라이는 여전히 사과가 입에 붙었지만 의외로 신입생들을 어떻게든 지도해서 다음 주장은 사쿠라이에게 줘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오미네는 그래도 어느 정도 연습에 나오고 있다. 신입생들은 다 좋은 녀석들뿐이었다. 그래도 허전하다. 스사선배와 이마요시 선배는 가끔 잘 지내냐고 문자가 왔다. 나는 잘 지낸다고 늘 같은 답장을 보냈다. 선배들, 특히 이마요시 선배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일은 주말이니까 이마요시 선배를 보러 자취방에 갈까 하다가 그만뒀다. 대학생도 바쁠 텐데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잠시 얼굴만 보고 와야겠다.

 

4월 19일

자취방 창문으로 선배를 보고 왔다. 안에는 선배 말고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많이 피곤해 보이셨다. 몸이 약해진 것 같아 걱정이다.

 

4월 20일

일요일이라 농구부 연습도 없어서 이참에 쓰던 운동화가 닳아서 새 운동화나 사러 시내로 나왔다. 그런데 선배랑 닮은 사람이 화장이 화려한 여자랑 가고 있었다. 아니다 그건 닮은 사람이 아니라 선배일 것이다. 내가 선배를 못 알아 볼 리 없다. 선배는 그 진한 화장의 여자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누구인지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속이 메슥거린다.

 

4월 23일

결국 궁금해서 선배에게 혹시 지난 일요일에 시내에 있었느냐고 전화로 물었다. 닮은 사람을 봐서 혹시나 싶어 묻는다고 하니 ‘그렇다’고 답이 왔다. 학과 선배가 점심도 사주고 전공 서적을 싸게 파는 곳이 있다고 해서 따라갔다 왔다고 했다. 왜 아는 척을 안 했냐고 선배가 물었지만 그냥 맞는지 아닌지 확신이 안가 그랬다고만 답했다. 선배는 별다른 의심 없이 흘러 넘겼다. ‘선배는 연상의 여자에게도 인기가 많네요’ 라고 슬그머니 내가 떠보니 그런 게 아니라며 웃으셨다. 그냥 오지랖 넓은 여자 선배라며, 가끔 밥 사준다며 연락 오는 것 외엔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통화중 기침소리가 들리기에 감기 걸렸냐고 하니 그렇다고 했다. 조만간 병문안을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4월 24일

대학생 시간표는 학생 마다 달라서 짜증난다. 어차피 밤에는 수업이 없지만.

 

4월 25일

비프스튜 만드는 법

채소와 소고기를 깍둑썰기 한다.

달궈진 팬에 야채를 볶는다.

고기를 볶는다.

버터와 밀가루를 볶는다.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는다. 거기에 고기와 채소 볶은걸 넣는다.

우스터소스를 넣고 푹 끓인다.

 

전에 적어놓은 레시피를 잃어버려 다시 적었다. 실수 하지 않게 레시피를 보면서 요리했다. 다 끓이고 나니 새빨간 스튜가 되어있다. 색이 어쩐지 기분 나빴지만 맛은 좋았다. 내일 선배에게 드려야지. 가기 전에 감기약을 사 가는 것도 까먹지 말아야지.

 

4월 26일

선배의 자취방에 갔다. 선배는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고 있었다. 아직 감기가 다 떨어지지 않은 것인지 인상은 썩 좋지 않았지만 여전히 날 웃으며 반겨주셨다. 약은 먹었냐고 묻자 먹지 않았다고 했다. 사온 약을 드리자 아침도 안 먹어서 나중에 먹겠다고 했다. 내가 만든 비프스튜를 드리자 또 만들어 왔냐며 미안해 하셨다. 하지만 정말 맛있게 드셔서, 뿌듯했다. 사실 사쿠라이만큼 요리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니라 걱정을 많이 했지만 선배에게 드릴 거라고 열심히 만든 보람이 있었다. 재료도 특별히 엄선한 거니 당연히 맛있어야지. 선배는 스튜를 다 먹고 약을 먹고 나와 조금 대화하고, 약기운 때문에 졸리니 자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가기 전 선배가 챙겨줘서 고맙다고 웃었다. 부끄러워져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5월 10일

일요일인데도 연습이 있어 하루 종일 학교에 있었다. 사쿠라이의 퀵 슛의 정확도가 올랐다. 감독은 내가 잘 해주고 있다고 했지만 솔직히 난 모르겠다. 이마요시 선배라면 분명 이것보다 잘 했을까. 자꾸 작년이 그리워진다. 입시 공부를 그만두고 체육 특기생으로 가는게 어떻겠냐는 담임의 제안에 난 부모님과 의논해 보겠다고 말했다. 부모님과 저녁에 전화로 이야기 하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래도 불안했다. 또 다른 누군가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선배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스사선배는 네가 원하는 쪽으로 하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해줬다. 이마요시 선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0번이나 전화해도 받지 않아 이미 주무시는 거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그만뒀다.

 

5월 11일

아침 일찍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 저녁 폰을 잃어버려 전화를 받지 못했다며 무슨 일이냐 물었다. 난 고민을 이야기 했고 선배는 ‘니 정도라면 체육 특기생으로 딱이제’ 라고 말해줬다. 그날 난 담임에게 체육 특기생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저녁에 아까 선배의 말이 신경 쓰여 문자로 ‘그런데 어쩌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거예요?’ 라고 물었다. 선배는 동기의 자취방에 놀러갔다 두고 왔다고 대답했다. 동기가 남자냐 여자가 물었다. 여자라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5월 12일

연습하다가 실수했다. 다리를 다쳤다. 다친 곳이 심하게 부었다. 감독이 당분간 쉬라고 했다.

 

5월 13일

한쪽 발로만 조용히 걷는 것은 힘들다

D대 정문에서 역 방향으로 걸어서 10분,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 5분. H원룸 3층 304호

 

5월 16일

다리는 붓기가 많이 빠져 월요일부터는 연습에 나가기로 했다. 비프스튜를 만들었다. 이번엔 약간 탔다.

 

5월 17일

선배 집 앞에 비프스튜가 든 보온병을 두고 갔다. 쪽지 같은걸 남겨 놓지도 않았지만 저녁에 선배에게 문자로 ‘니가 만든 기제? 맛있드라’ 라고 왔다. 보온병은 다음에 가지러 갈 테니 그냥 두라고 했다. 설거지 해두겠다고 하셨지만 그냥 뚜껑만 잘 닫아놓으라고 했다.

 

5월 18일

선배에게 저녁에 문자가 왔다. 비프스튜의 재료를 물었다. 나는 레시피에 써진 재료를 적어서 답장했다. 소고기중 무슨 부위를 썼냐는 답장이 왔다. 안심을 썼다고 했다. 답장이 끊겼다.

 

5월 23일

며칠 동안 전혀 연락이 없던 선배에게 문자가 왔다. 내일 자취방으로 와서 보온병을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답장했다. 문자는 거기서 끊겼다.

 

5월 24일

선배의 자취방에 갔다. 만나자 마자 선배는 보온병을 내밀었다. 그렇게 설거지 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도 선배는 설거지를 해 놓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선배의 표정이 이상했다. 선배는 보온병의 뚜껑을 열어 안을 보여줬다. 자세히 보니 안에 커다란 손톱이 들어 있었다. 선배가 물었다. ‘이거 니 손톱 아니제. 뭔데. 니 도대체 내한테 뭘 먹인긴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선배가 자꾸 추궁했다. 헛구역질도 했다. 나중엔 내 목을 졸랐다. 나는 보온병으로 선배의 머리를 쳤다. 선배가 조용해졌다.

저녁에 또 스튜를 끓였다. 이번엔 나 혼자 다 먹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데 눈물이 났다.

 

5월 25일

예정과 달리 오늘도 연습을 빠졌다. 목이 가렵다. 선배가 조른 목이 가렵다. 선배가 보고 싶다. 선배랑 같이 있는데도 선배가 보고 싶다. 목을 막 긁었더니 자꾸 피가 난다. 뭔가 잘못되었다. 뭔가가. 뭔가. 뭐가?

뭐가 잘 못 된 걸까?

 

 

  +

 

죄는 이제 막 시작 되었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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