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도사변 키노시타 드림
- 오리주 주의, 상해 묘사 주의
처음 쓰는 키노시타 드림이 이런 내용이라니...(죄악감)
늪과 인어
written by Esoruen
어째서 사람들은 인어에 달콤한 로망을 가지는 걸까. 키노시타는 도무지 그것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인어라는 것은, 대부분 추악한 모습을 가진 물의 요괴일 뿐이었다. 사람을 간혹 도와주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결국 요괴. 물에 빠진 사람이 마음에 들면 잡아가거나, 난파선을 노리는 등 질 나쁜 녀석들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런 인어를 마치 물의 요정처럼 묘사하고, 심지어 인어 고기를 먹으면 불사한다는 미신까지 믿는다. 키노시타는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그 이미지들이 싫었다. 옥졸로서 인어란, 그저 지옥의 주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법. 분명, 그런 법인데.
“키노시타, 빨리 건져야지”
사에키는 꽤 다급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를 재촉했지만, 키노시타는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떠오른 에노키의 몸. 고약한 화학약품의 냄새들. 그녀가 빠져있는 폐수는, 제 눈보다 탁한 초록색.
“키노시타!”
“어? 어, 응! 잠시만, 그, 밧줄 같은 거라도 가져 올게!”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어차피 옥졸은 죽지 않는다지만, 저런 곳에 빠져서 기절한 이상 병원으로 이송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일이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데리고 왔을 텐데’ 불안한 표정을 감출 수 없는 키노시타는 버려진 공장 주변을 유령처럼 맴돌며 그녀를 꺼내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았다.
“이건, 안 돼. 이것도 안 돼… 이것도, 이것도…”
쓰레기장을 맨손으로 뒤적이던 그는 조금씩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어느 순간 전기가 나간 기계마냥 완전히 정지해 버렸다.
결코 깨끗하다고 할 수 없는 폐수에 익사한 그녀의 몸. 아니, 죽지 않는 자신들에게 ‘익사’라는 표현은 이상할까. 하지만 오염된 물에 삼켜져 떠오른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시체나 다름없었다. ‘기분 나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겠지. 그런데, 어째서 지금 자신은 그 기분 나쁜 모습이 자꾸 떠오르고, 그걸 떨쳐버리려고 하지 않는 단 말인가.
워낙 볼썽사나운 꼴이니 징그러워서 떠오르는 거야.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린 거겠지. 처음에는 그렇게 단정 지었는데. 어째서, 어째서 그 기분 나쁜 모습이 조금씩 익숙해지는 걸까.
물에 젖어 딱 달라붙은 제복, 더러운 물에 젖어 탁한 광택을 띈 피부와 살짝 벌어진 파란 입술. 죽음과 가까운 그 모습은 분명 제 기준에서는 추한 것이었다.
추한 것. 아름답지는 않은 것. 그렇지?
생각의 동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키노시타는 더 이상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그저, 아직 오염된 물 위에 둥둥 떠다닐 그녀를 보고 싶다는 소망뿐이었다. 빈손으로 돌아온 키노시타는 자신을 바라보는 물색 눈동자에 대답했다.
“미안, 적당한 게 없더라고”
“으음, 어쩌지. 돌아가서 뭔가 가져올 수밖에 없나?”
“아니, 있어봐”
키노시타는 모자를 벗어 사에키에게 건네더니, 망설이지도 않고 폐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키노시타!!”
사에키는 차마 말리러 뛰어 들어가지도 못했다. 만약 여기서 모두 움직일 수 없게 되면, 특무실은 정말로 곤란하게 될 테니까. 현명한 동료의 판단에 키노시타는 미소 지었다. 그래, 사에키는 머리가 좋으니까 그렇게 할 거라고 믿었어. 폐 깊숙한 곳 까지 침범하는 오수(汚水). 안쪽에서부터 썩는 냄새가 진동하지만, 그는 달빛이 보일 수면으로 떠오르고 싶지 않았다.
있는 힘껏 손을 뻗어, 지저분한 초록색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것을 잡아당긴다. 제 손에 비하면 빈약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에노키의 작은 손은 조금만 더 힘을 줘도 부서질 것 같이 가늘었다. 씹어 먹으면, 과자처럼 부서지며 단 맛이 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모두 머리가 맛이 갈 정도로 지독한 화학약품 때문 일 거야. 미끼를 무는 물고기 마냥,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 흰 손가락을 물어본 그는 무언가에 홀린 것 마냥 가느다란 몸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바닥도 모르고 가라앉는 몸.
눈높이를 맞춰 사랑스러운 얼굴을 코앞으로 가져온 키노시타는 숨이 막혀서 어지러워지는 와중에도,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인어 같다’
자신도, 에노키도.
이대로 가라앉아 버리면 그대로 다리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화약약품에 하반신은 모두 흔적도 없이 녹고, 쓰레기로 만들어진 지느러미가 생기고, 이곳은 자신과 그녀만의 바다가 된다. 어째서 이렇게 로맨틱 할까. 현실은 숨 막히고, 악취가 풍기고, 눈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키노시타는 폐에 남아있는 마지막 공기를,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쓰고 말았다.
에노키.
기도와 식도가 타는 듯이 아프다. 따가운 눈은 차라리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이미 기절한 에노키의 평온한 표정은 정말로 인어같이 아름다웠다. 아니, 인어는 아름답지 않지. 인어는 추하다. 추하고 무섭다. 하지만 인어 같은 에노키는 아름답다. 아름답고도 추하고, 추해져도 아름답다. 에노키. 나의 색으로 물든 에노키.
꼬르르륵.
더 이상 내 목에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안 돼. 나는 인어니까. 달콤한 목소리로 너를 꾀어야 하는데. 아, 이미 네가 인어가 되었으니 그럴 필요는 없을까.
이제 내 입에서는 기포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온 몸이 기분 나쁜 초록색으로 가득 차, 숨을 쉬고 싶었다. 에노키, 너의 새하얀 색을 원해. 달빛 밑에서 멀쩡한 사람도 홀려버리는 네 백색을 원해. 에노키, 나의 에노키. 사랑하는 에노키. 내 인어. 발가락 10개와 발꿈치 두 개가 달린 작은 암컷.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은.
숨을 쉬기 위해 주둥이를 뻐끔거리던 나는 손톱을 세워 뺨을 마구 긁었다. 아가미. 아가미가 있다면 숨을 쉴 수 있어. 아냐, 그 전에 이 귀찮은 다리를 잘라버려야 해. 도끼는 왜 물 밖에 있지. 나는 이제 거기 도달할 수 없는데. 어째서. 왜.
더 이상 수면의 빛은 보이지도 않는 바닥에 닿은 나는, 아직 가라앉는 중인 너의 허벅지를 잡았다. 비늘 하나 없는, 깨끗한 살결.
인어를 먹으면 불사한다고 하던가.
으음. 불사라.
음.
사실 죽지 않는 건 전혀 욕심나지 않지만,
역시 너의 백색은 가지고 싶다.
너를 사랑하니까.
원하니까.
에노키.
사랑해.
잘 먹겠습니다.
몇 시간 후, 떠오른 키노시타의 양 뺨에는 흉한 상처가 나있었다. 마치 구멍이라도 뚫으려고 한 것처럼, 심하게 긁어 상처가 생기고 곪아버린 얼굴은 안쓰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흉했다. 하지만 사에키가 놀란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키노시타의 상처 때문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살점이 뜯겨진 다리. 흉한 잇자국.
엉망진창인 다리로 다시 떠오른 에노키의 다리는, 마치 비늘이 뜯겨져 나간 생선의 몸뚱이 같았다.